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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 용산문화(龍山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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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 용산문화(龍山文化)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88)]

중국 산동 임기 기수현에서 출토된 춘추시대 새모양 청동항아리, 산동박물관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산동 임기 기수현에서 출토된 춘추시대 새모양 청동항아리, 산동박물관
‘용산’이라는 이름은 1928년 산둥성 룽산에서 처음으로 유적이 발굴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용산 문화는 중원 용산문화(허난 용산문화와 샨시 용산문화) 및 산둥 용산문화로 나뉘어 있다. 산둥 용산문화는 황하 하류를 중심으로 존재한 다원커우 문화에 이어 나타나며, 허난 용산문화는 황하 중류에 존재한 양사오 문화에 이어 등장하고 있다.

용산 문화는 황하 유역의 다른 문화가 발전했던 지역에까지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장강 유역 등 이후 한족의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용산 문화는 산둥성 동부의 장추 시 룽산진에 있는 청즈아이(城子崖)에서 1928년에 유적이 출토되어 1930년 이후 본격적으로 발굴되었다. 용산 문화의 특징은 고온으로 구운 회도, 흑도를 중심으로 한 높은 도기 기술에 있으며, 그릇이 얇고 균일하여 녹로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란각도(卵殻陶)로 불리는 것은 그릇을 알의 껍질처럼 얇게(0.5~1㎜) 만든 흑도의 도기로, 한층 더 연마해 검은 윤기를 내고 세밀한 문양을 조각한 것이다.

이것은 황하 유역뿐만 아니라 장강 유역이나 중국의 남부 해안 부근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용산 문화의 확산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으로 장강 중류 지역의 취자링 문화도 회도, 흑도를 특징으로 하는 문화로 허난성 부근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어 용산 문화가 장강 부근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도기 생산 효율의 상승은 출토하는 도기의 수나 종류가 전대 문화에 비해 대폭 증대되었던 것에서도 볼 수 있어 솥이나 격(鬲, 삼족 솥), 규(鬹, 세발달린 가마솥), 높은 자루 잔(高柄杯) 등 조리기나 식기로 사용된 다양한 흑도, 회도의 도기가 출토되었다.

도기뿐 아니라 돌칼(石包丁) 등 석기나 골기 등의 무기나 도구, 비취 등의 구슬도 출토되었다. 용산 문화 후기에는 청동기도 출현하였고, 은대, 주대(또눈 은나라 이전의 하나라)의 청동기 시대로 가는 과도기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용산 문화의 사회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도시의 출현이다. 초기의 주거 형태는 수혈식 주거였지만, 곧 기둥이나 벽을 세운 가옥이 출현했다.
또 흙을 다져 만든 성벽이나 굴이 출토되고 있어, 특히 샨시성 샹펀 현 타오스 향(陶寺郷)의 남쪽에서 발견된 샨시 용산문화의 유적, 타오시 유적(陶寺遺跡, 기원 전 2500년~기원 전 1900년)은 용산 문화의 도시 유적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