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아트시어터가 ‘짓’의 하모니로 내놓은 구월의 신상품은 석창우 화백과 협업한 홍선미 안무의 『보이지 않는 날개 짓』이다. 구월 둘째 주 금요일, 토요일을 주‘짓’수의 날로 잡아 선보인 공연은 아린 추억을 송두리째 들어내어 정화시키는 경건한 제의였다. 슬픔을 털어내고 희망을 이식하는 작업은 낭만을 대동했는데, 염분이 빠진 눈물들이 영롱하게 피어올랐다.
모두를 행복하게 한 작품은 슬픔을 딛고 일어선 화가의 ‘아내의 일상’에 집중한다. 움직임에서 삶의 생동을 얻는 화가를 조망하는 아내의 살 가운 보살핌은 아픔을 딛고 둥지를 차오르며 비상하는 독수리를 바라보면서 안도하는 모습과 같다. 안무가는 ‘스타 화가의 아내’의 심리적 이면을 채집하고, 그 심오한 내면에서 파생되는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극무용으로 옮긴다.
격정의 빗소리를 타고 계단으로 등장하는 여인, 붉은 티셔츠에 검정 스판 반바지, 열정과 갈등의 순간을 넘어 진 레드패스(Jean Redpath)의 ‘매기의 추억’(Maggie)은 산들바람이 미풍을 실어 나르듯 사랑을 고백하던 시절의 젊은 날을 대변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추억은 짧았다. 아름다운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날들, 계단에 앉아 뒤돌아보는 동작으로 표현된다.
바닥에 놓인 운동화 한 켤레, 선택은 여인의 몫이다. 조명은 무릎아래, 다리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양발로 운동화를 밀기도 하면서 갈등이 묘사된다. 천둥소리에 이은 빗소리, 시월의 고통이 스쳐간다. 운동화 한 켤레 스팟을 받고, 서서 면벽해있던 석창우 화백이 바닥의 빈 화선지로 전진하며 한 바퀴 돈 다음 그림을 그려나간다. 고통 속 천둥소리는 지속된다.
무대에서는 아내 역의 홍선미가 춤을 추고, 플로어에서는 남편 역의 석창우 화백이 그림을 그린다. 무대에서의 움직임은 스냅 그림으로 옮겨지고, 여러 동작이 검정과 주황의 춤으로 옮겨진다. 순간 동작을 포착하는 촌철살인의 기교, 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번 공연에서 주목할 것은 석창우 화백이 진실성이 묻어나는 행위연기자의 연기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터치가 없이도 같은 느낌, 다른 표현으로 공연은 울림을 준다. 서정의 간극을 메우는 친밀한 음악은 상황을 반영한다. 그림은 검정에서 주황으로 바뀌더니, 혼자에서 둘이 되고, 오버랩 된다. 쇼팽(Chopin)의 야상곡(Nocturne)은 거침없이 자유롭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도출한다. 우울의 블루는 사라지고, 그림에 몰두하는 화가, 집중은 몰입을 가져오고 사운드는 탈색된다.
빈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 이어지고 그리그(Griege)의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가 흐른다. 달관에서 오는 여유로움이 번지고 그림에 이어 석창우체의 글이 세로로 쓰여 진다. 지긋이 그 그림을 바라보는 여인, 자신의 동작이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함께 가겠다는 결심을 드러낸다. 발 낙관이 찍히고, 둘은 마주보다가 한 곳을 바라보며 공연은 끝이 난다.
홍선미의 공연은 늘 기대감을 주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작의(作意)나 행위가 타당성을 갖는다. 누구의 마음이 되어서 춤추는 행위는 더욱 가상하다. 내조의 힘을 강조한 춤은 석창우 화백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인본주의를 내세우면서 작은 무대에서 큰 힘을 발휘한 춤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깊은 사고에서 나온 안무적 기교가 출중하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