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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책을 수면제로 만드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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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책을 수면제로 만드는 사람들에게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
흉중을 헤아린다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Read Between the lines”이다. 상사든 고객이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재빨리, 깊숙이 파악하는 능력은 비즈니스맨의 기본이다. 훌륭한 낚시꾼은 물고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노련한 투우사는 소가 되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상대의 입장에 선다는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자기 잘난 맛에 툭 하면 주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게 인간의 생리다. 그렇다고 도를 닦는다거나 경청한다고 해결 될 문제도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 걸까?

지난해 가을 여행에서 한 천재화가의 가난과 그리움, 절망을 목도했다. 제주도의 이중섭 전시관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을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곳은 1년 남짓 그가 살던 집이었다. 한 때 그는 서귀포의 1.4평 작은 방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가족을 아내의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을 끌어안고 얼굴을 맞대고 있는 작품들은 이 때 그린 그림들이다. 좁은 방에서 맨살을 맞대며 살았던 가족의 감촉과 체취의 기억이 절절했으리라. 한 사람이 눕기에도 버거운 방 앞에서 말년에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작품을 남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에도 어느 한 작품전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사진과 마주쳤다. 불현듯 고흐의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런 감정의 내색 없는 눈동자로 관객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고흐의 모습이었다. 이중섭의 사진과 고흐의 초상화는 묘하게 닮아 있었는데 마치 그들의 진면목을 몰라본 당대의 사람들에게 ‘언젠간 알게 되리라’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천재들의 가난과 고독이 담긴 작품에서 절박감이 주는 집중력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추체험을 통해 만고풍상의 인생사를 경험한 자가 갖는 권리다. 그래서 누구나 경험이 최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시간과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인문의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 세상의 모든 사상과 정신은 인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축적되고 전수됐다. 고흐는 해바라기와 까마귀와 별을 통해 그의 절대 고독을 남겼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철인 정신을 전했다. 바흐의 음악이나 박찬욱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인문은 생각의 전시장인 것이다. 요약컨대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기 위해선 인문을 통해 인생사의 다양한 경우의 수를 확보해 놓으라는 것이다. 춘향전이든 위대한 갯츠비든 사랑의 고통이 담긴 작품을 맛본 자가 첫사랑이나 실연에 빠진 자의 고민 상담도 들어주고 위로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독서는 타인의 생각을 접수해 둘 효과적인 방법인데 여기에 조언해 줄 것이 있다.

비즈니스맨의 독서법은 언제 활용될 지 모르는 자료를 축적하는 성격이라서 다독, 다상량의 효율적 독법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과 씨름하는 사람이 있다. 쓴 돈이 아까워 책을 수면제로 만드는 경우다. 말했듯이 책의 활자는 작가의 생각이다. 지루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다 하품이 나온 경험을 기억하는가? 그런 자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듯 독서도 마찬가지다. 그 책은 지금 당신과 맞지 않는 책이다. 빨리 다른 책을 뽑아 들어야 한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다른 생각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실 책 한 권에 좋은 관점 몇 개만 얻어도 책값은 이미 뽑은 것이다. 화장은 하는 것 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광고 카피가 있다. 글쎄, 비즈니스맨의 독서법은 반대가 아닐는지.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책을 고르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생각을 읽기 위해 생각의 옥석을 가리는 시간에 투자하라. 이것이 내가 책방에서 두리번거리고 멈칫거리는 이유다.


글·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