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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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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44) 공자의 탄식과 예수의 탄식

강정민(변호사·소설가)
강정민(변호사·소설가)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과 삼일 째 되는 날 부활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 예수가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탄식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탄식을 한 것일까요?
십자가 죽음의 극심한 고통 때문에 탄식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전날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했던 예수입니다. 그런 그가 죽음의 고통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자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사탄의 사망권세를 멸하고, 인류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온 예수가 죽음의 고통 때문에 탄식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탄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의 탄식을 잠깐 뒤로하고 공자의 탄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논어 선진편 8장을 보면 제자 안연이 죽자 공자가 “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고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연은 공자의 제자들 중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습니다. 공자는 안연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안연이 요절하고 말았으니 공자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9장에는 “안연을 위해 통곡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 통곡한단 말이냐”며 통곡하는 공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1년 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죽었을 때 공자의 탄식이 더해지니다. 위나라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는 강직한 성격을 가진 자로의 죽음을 예견합니다. 그리고 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하늘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 하늘이 나를 끊어 버리는구나”하며 탄식합니다.

노쇠한 공자는 제자들을 통해 세상에 천명(天命)을 펼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던 제자들이 먼저 세상을 등져버렸으니 공자의 상심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는 공자의 탄식을 통해 예수가 탄식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 12명의 제자들을 키우는데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3년 동안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 연약하기만 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에게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앞으로 당할 고난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한복음 16장 2절)”. 실제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사도 바울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사도들 모두 예외없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최후의 만찬 이후 예수는 제자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장 11절)”.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장 15절)”.

십자가 고난을 앞둔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고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돌아오니 제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두고 먼저 떠나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요? 강정민(변호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