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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스파이칩’과 Y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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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스파이칩’과 Y2K

이재구 정보과학기술부장
이재구 정보과학기술부장
[글로벌이코노믹 이재구 기자] # 지난 2014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이른바 ‘스파이칩’ 서버가 전 세계 IT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사태는 지난 4일 중국산 서버 주기판에서 쌀알보다 작은 해킹용 스파이칩이 나왔다는 블룸버그 보도로 시작됐다. 미 수사당국이 스파이칩을 인지했을 즈음 아마존과 애플도 발견했다고 했다. 문제의 서버 속 주기판들은 미국 슈퍼마이크로사가 중국 공장에서 하청 생산한 제품이었다. 생산 과정에 중국정부 관계자가 개입해 스파이칩을 탑재하라고 뇌물을 주거나, 그도 안되면 공장폐쇄 협박까지 했다고도 했다. 아마존과 애플은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미연방수사국(FBI)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10일 근거없는 유언비어라며 사과를 요구하자 즉각 미국 US텔레콤에서도 스파이칩이 발견됐다는 보도로 반박했다.

#슈퍼마이크로가 전 세계 서버시장의 간판업체라는 점, 그리고 보도대로라면 스파이칩 서버는 기업·기관·연구소 데이터센터를 이용할 때마다 핵심 정보를 줄줄 새게 할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사실일 경우 왜 미국은 지난 2014년부터 중국의 스파이칩에 대해 인지하고도 그동안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일까. 음모론 같은 몇 가지 그럴 듯한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정부는 그동안 소리없이 미국 IT업체들에 스파이칩 서버 침투 사실을 밝히고 교체 작업을 유도해 온 것은 아닐까? 자고로 도둑은 뒤로 잡는다고 했으니까.
두 회사가 의문 속 스파이칩에 대해 부인한 것은 의혹과 무관하게 설득력 있는 반응이랄 수 있다. 모두 자사의 거의 모든 제품들을 만드는 중국기업이나 정부의 눈밖에 나봤자 득될 일이 없겠기에.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타이완의 서버업체들은 이미 이번 의혹 보도 전후로 중국 내 서버 및 주기판 공장을 타이완, 또는 멕시코와 동유럽 공장으로 옮기거나 생산량을 재조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음모론이 힘을 얻을 만한 요건은 충분하다.

# 어쨌거나 문제는 우리나라다. 최근 국회 국감장에서는 의원들이 과기정통부 산하 기관에서만 무려 731대의 슈퍼마이크로사 서버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밝히며 대책을 요구했다. 사실 수많은 기업·국가연구기관·은행·방송사에 슈퍼마이크로 서버가 공급된 것은 상식에 속한다. 문제는 스파이칩 의혹이 드러난 이들 서버를 새삼스레 전수 조사해 안전한지 확인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국감에서 대책을 요구받자 민원기 과기정통부 2차관이 “공식적으로 포털 사업자와 통신사업자의 조사를 시작했고 필요하다면 유통망을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느긋한 표정이다. 다른 나라는 가만히 있는데 왜 우리만 너무 야단법석을 떠느냐는 듯.

# 이 대목에서 지난 2000년까지의 이른바 ‘Y2K(Year 2000)(컴퓨터 연도표기 인식 오류) 사태를 떠올리게 된다. 30·40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2000년 1월1일 전 세계가 컴퓨터시스템 작동 중단을 걱정해 새벽잠을 설쳐가며 상황을 지켜봤던 일 말이다. 외신 보도가 사실이라면 지금 전 세계는 Y2K사태보다도 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주장처럼 거짓뉴스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확인해 본다면 깔끔하지 않을까. 유영민 과기정보통신부 장관은 IT업계 출신으로 당시 Y2K 사태도 지켜본 것은 물론 초연결시대의 보안 심각성도 너무도 잘아는 분이기에 더욱더 철저한 대책을 기대해 본다. 이 모든 것이 해프닝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재구=정보과학기술부장>


이재구 기자 jk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