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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본이 돌아왔다-박헌용 더나은IT세상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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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본이 돌아왔다-박헌용 더나은IT세상포럼 의장

박헌용 더나은IT세상 포럼 의장
박헌용 더나은IT세상 포럼 의장
뜬금없이 일본이 돌아왔다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야기냐고? NO. 아니다.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하기 위해 2013년에 처음수립되고 2017년까지 4차례 수정을 거친 일본재흥전략(日本再興戰略)의 영문명칭이 'JAPAN is BACK(일본이 돌아왔다)'이다.

일본재흥전략은 일본이 나가야 할 경제, 산업, 외교, 인구, 사회, 복지, 교육, 노동분야의 모든 변혁방향을 총망라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산업전략이 핵심이다. 일본의 4차 산업혁명과 소사이어티(Society)5.0, 로봇신산업전략도 일본재흥전략의 일부이다. 그 후 일본재흥전략은 미래투자전략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를 정도로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이 어떻게 돌아온 것일까.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일색이었다. 1989년의 옛 소련 연방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 등 공산권의 몰락은 자유주의와자본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합리적인 인간들이 참여하는 시장은 신성하며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전세계를 지배했으며 이를 주도한 미국과 영국은 '글로벌 스탠더드(GlobalStandard)'가 됐다. 서방 세계는 번영을 구가했고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영국의감세, 민영화, 무역 자유화, 자본시장 개방조치를 흉내 내기 바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뒤집는 결정적 사건이 신자유주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터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미국의 대형 금융사들이 연이어 도산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즉각 1930년대 대공황을떠올렸다. 1929년 뉴욕 증시 급락으로 촉발된 대공황이나 2008년의 글로벌금융위기 둘 다 금융에서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이 대공황 때의 힘겨운 삶과 뒤이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내로라하는 거대기업들이 속절없이 스러지자 각국 정부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흔히 양적완화라고 표현하는 대규모 통화 공급과 금리인하, 무역적자 감축을 위한 관세부과와 수입제한, 재정투자 확대와 조세인하, 부실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화폐가치 조정유도, 전략산업 육성,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을 서둘러 했다.

일본은 서둘러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일본은 한때 세계를 제패한 메모리반도체, 가전, 조선, 철강, 석유화학산업도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용 로봇, 센서 등 신산업분야를 발굴하며 때마침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을 활용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기술개발 등 산업여건을 개선하는 작업도 빼놓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은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미·중이 취한 양적완화, 무역제재, 외환과 환율방어, 자본시장 활용방법 등은일본의 아베노믹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을 가져왔다. 인간의 탐욕이 날뛰는 시장에 모든 운명을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는각성이다. 그러면 시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해야 하는가. 이는 금융위기를 이겨낸 미국이 충분히 보여줬다. 세계 각국은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훨씬 강화돼야 함을 보았고 정부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많이 알게 됐다. 미국의 조치 중에서는 시장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나 다른 나라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위기극복을 위한 것이라면 용인됐다. 이러한 흐름은 전 세계에 확산됐으며 이는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신산업질서(New Normal)'라고 이름 붙여졌다.

신자유주의와 신산업질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역할에서 가장 큰 차이가있다. 신산업질서는 정부가 먼저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과 국민에게 협조를구하는 형태를 띠나 신자유주의는 기업이나 개인의 활동에 개입하지 않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사실상 겪지 않았기때문에 그 과정에서 취해진 신산업질서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머물러 있다. 즉 정부와 국민, 기업이 협력해 나라의 힘을 모으는 방법이나 수출제한, 경제보복, 제재, 관세부과 같이 나라의 힘을 쓰는 방법에 있어 다른 나라보다 10년 늦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취약한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의 허점을 찔렀다. 우리가다시는 이런 일을 안당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번 기회에 우리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열을 다시 짜야 한다. 우리의 모든 힘을모두 모아 꼭 필요한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지위를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힘의 집중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국가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나라와 기업, 개인의 모든 역량을 총결집시켜야 한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누가 뭐래도 이는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의 이런 의지들은 정책으로 구체화된다. 산업정책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돼 있으며 그 실행은 오로지 정부와 기업들의 협력여부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산업정책은 정부가 기업, 국민과 의사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번에 우리가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산업정책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월 세계 4대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제조업 르네상스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다행스럽긴 하나 벌써 일본이라는 중대 여건변화가 생겼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수많은 대책들이 쏟아질 테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처럼 우리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일회성 계획이나 단발적인 대책으로는 힘을 모을 수 없다. 새로운 상황변화에 맞춰 우리의 산업정책을 전면 재편해야 한다. 산업정책 그 자체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정책에 따라 정부의 모든 정책들을 재구성해야 한다. 새로운 산업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를 짚어 보자.

첫째, 주력산업 외에 새로운 전략산업분야를 찾아야 한다. 정답도없고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하기 힘들다면 민간의 힘을 빌려서라도 해야 한다. 어떤 산업의 시장 크기가향후 어찌될 지를 예측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일일이 따져본 후 버려야 할 분야와 키워야 할 분야를 골라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총알이 100발 있을 때, 과연 어떤 싸움터에서 언제, 몇 발을 쏴야 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각 기업들이 알아서 해왔지만 요행히도 결과가 좋았다. 외환위기 이후 인터넷/IT/휴대폰/메모리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2차전지/조선/유화산업으로 국가 위기도 넘기고 우리 살림살이도 많이 키워왔다. 그러나 그 다음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바이오든 로직 칩이든 새로운 전략산업분야를 찾고 우리의 미래를 다시 한 번 굳건히 해야 한다.

둘째, 전략산업 육성 시에는 산업생태계 전체를 골고루 고려해야 한다. 산업생태계에서는 최종산물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중소·벤처들과의 장기 공생관계가 중요하다. 이번에 우리는 부품·소재산업의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부품·소재산업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 분야가 없으면 최종산물이 있을 수 없고, 이 분야에서 혁신이 없으면 최종산물에서도 혁신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전략산업을 육성할 때에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해당 대기업들이 납품가격뿐만 아니라 향후 기술혁신이나 안정된 공급여부와 공급선 다변화가능성 등을 장기 측면에서 종합으로 고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전략산업이 지속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관의 협력과 산학연(産學硏) 간의 역할분담도 고려해야 하고 이런 생각들이 산업정책에도 충분히 담겨있어야 한다.

셋째, 산업정책이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원들이 적절한 때에 원활히 투입되고 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자원은 크게자금, 인력, 기술, 정보로 나눌 수 있다. 자금은 정부의 재정에서도 투입돼야 하나 산업정책에서 제시된 방향에 따라 민간의 집중 투자를 유도하고 필요하면 정부가 외자 도입이나 세제상의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도 전략산업분야에 집중적인 재정투입을 위해서는 투자 우선순위를 더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 인력이 필요한 분야에 적절히 공급되기 위해서는 교육, 인구·이민, 복지, 노동정책 등에서 다양한 정책조합들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과 독일은 고용의 안정성이 약간 낮아진 대신 고용의 양이많이 늘면서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제 일본에서는 종신고용과 연공급이란말도 거의 사라졌다. 제철기술이 청동기시대를 무너뜨리고 철기시대를 열었듯 기술은 인류역사의 향배를 가른다. 우리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라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연구개발이 국가전략과 정렬성을가지는지는 의문이다. 최근에 대형 국책과제가 눈에 띄지 않는데 정부의 연구개발 방향도 제시돼야 한다.

정보와 데이터는 의사결정의 질을 좌우하거니와 그 자체로도 빅 데이터나 인공지능(AI) 등 유망산업의 하나이다. 현재 전 국민이 하루 몇 차례 스팸 전화를 받을 정도로 불법 개인정보가 널려 있으나정작 데이터를 유용하게 쓸 길은 막혀 있다. 데이터를 가지고 누구는 범죄를저지르지만 누구는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데이터를 악용할 여지는 막고 유익하게 사용할 길은 열어줘야 한다.

넷째, 경제·산업정책을 원활히 수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기능조정도 불가피하다. 정부에서 앞을 보는 기능과 뒤를 보는 기능을 분리해 경제정책 전담부처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현 정부 중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앞을 보는 역할은 어느 부처가 하는지 불분명하다. 기획재정부는 맡은 분야가 너무 많고 일상에 너무 치인다. 따라서 나라의 현재와 과거를 챙기는세제와 국고, 외환, 관세 등의 재무 관련 기능을 재무부로 분리시키고 나라의미래를 챙기는 경제정책, 예산, 정책조정 기능을 전담하는 부처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 일본의 수상 직속 일본경제재생장관처럼 더 선명한 구심점을 만들어 산업정책에 전념토록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된 재정경제부 시절에 외환위기를 맞은쓰라린 교훈이 있지 않은가. 나아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5년이라는 근시안의 타임라인에 갇히지 않고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국가운영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도 재검토해야 한다.

다섯째, 무엇보다도 지속해서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체제(시스템)를 갖춰야 한다. 산업정책은 한 번 발표하거나 예산을 배정하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한 산업을 키우는 것은 끊임없이 손이 가는 일이다. 산업정책이단순한 전망이나 계획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작동하도록 만드려면 끊임없이 우리가 보유한 역량 중에 부족한 것과 남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는지를 살피고 때맞춰 수정·보완해야 한다. 일본재흥전략 중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거창한 계획 그 자체가 아니었다. '각 정책영역에서핵심목표를 설정해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만일 정책들이 당초 예상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재검토해 다른 정책들을 추가하겠다'는 부분이었다. 우리도 산업정책의 진행상황을 수시 또는 정기로 점검해 수정·보완하고 필요한 세부 계획들도 가다듬어 우리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켜 나갈 수있는 체제를 이번에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미·중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 낀 비슷한 처지의 두 나라가 이처럼 첨예하게 맞서는 게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들이 먼저 시작했기에 우리도 물러설 수 없다. '경적필패( )'라 했거늘 그들이 자만했으므로 허점도 많아 보인다. 이번 일로 우리는 모처럼 경제와 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이제 실력을 키워 이기면 된다. 그러려면 우리가 일본보다훨씬 더 독하고 더 치밀하고 더 잘해야 한다. 이미 본격 전쟁은 산업정책에서 시작했다. 이 전쟁의 결말은 더 치열한 산업정책과 그 치열함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