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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술 對日독립선언'의 씁쓸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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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술 對日독립선언'의 씁쓸한 자화상

산업2부 오은서 기자.
산업2부 오은서 기자.
지난 달 서울 종로에 있는 쥬얼리 종합상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주로 목걸이, 팔찌, 시계 등 국내산, 수입산 귀금속 제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를 둘러본 뒤 인터넷에서 검색한 유명 도매상을 찾아가 최근 쥬얼리 제품의 시세 정보 등을 물어보았다.

가업을 이어 2대째 사업을 하고 있다는 50대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뜻밖의 내용을 전해 들었다. 본인 점포뿐 아니라 귀금속 사업자들이 취급하는 귀금속의 금은, 진주 등 원석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들여오지만, 원석 가공과 제조, 심지어 포장에 필요한 기계와 기구들이 대부분 일본산이라는 사실이었다.
원석을 자르고, 깎는 기계는 워낙 일본산이 우수해 그렇다치더라도 쥬얼리제품을 싸는 포장지를 붙이는 테이프, 자르는 가위까지 일본제품이라는 얘기였다.

사장님은 "마음은 국산 제품을 쓰고 싶지만, 국산 테이프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쉽게 떨어지고, 양면테이프를 자를 경우 국산은 들러붙지만 일제는 붙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다"고 사정을 털어놓았다.

한참 일본 아베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핵심소재부품을 한국에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제조치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 부품소재산업의 국산화가 화두로 떠오른 시기인지라 기자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일본의 수입규제 조치에 맞서 국내의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국산기술 개발을 위해 수 조원의 지원 정책을 발표하는 등 '일본기술 따라잡기'를 천명했다.

그러나, 쥬얼리 점포의 한낱 테이프와 가위에서 보듯 대한민국 산업현장 곳곳에 스며든 '일본 의존병'은 단순히 소재·부품·장비 차원의 투자로는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모든 제품을 100% 국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유무역시대에도 역행한다. 그러나 '소재부품 핵심산업의 국산화'라는 요란한 구호 속에서 '30년이 지났는데도 샤프심, 면도날, 가위 등 생활용품조차 아직까지 일본제품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한 소상공인의 탄식은 왠지 대한민국 산업의 이율배반적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오은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estar@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