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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임수정 춤의 정형을 보여준 춤의 향연…2019 임수정 전통춤판 '춤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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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임수정 춤의 정형을 보여준 춤의 향연…2019 임수정 전통춤판 '춤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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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풀이춤'
2019년 10월 17일(목) 저녁 일곱 시 반,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임수정(국립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 교수, 무용학박사)이 예술감독을 맡고, 한국전통춤예술원 주최・주관으로 펼쳐진 춤의 향연 2019 임수정 전통춤판 <춤푸리> 공연이 있었다. ‘해원(解冤)의 몸짓, 신명의 춤’이라고 명명한 춤은 ‘승무’, ‘축원비나리’, ‘제석춤’, ‘고풀이춤’, ‘살풀이춤’, ‘설장구’, ‘진도북춤’, 까탁댄스로 진열되어 있었다. 비교적 덜 알려진 ‘제석춤’, ‘고풀이춤’은 더욱 관심을 모았다. 임수정은 늘 학구적 춤의 현란한 몸짓(사위와 디딤, 표정연기)과 다채로운 진법을 구사한다.

<춤푸리>의 구체적 구성은 판열음(승무), 축원의장(축원 비나리, 제석춤), 해원의 장(고풀이춤, 살풀이춤), 신명의 장(설장구, 까탁 댄스, 진도북춤)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 임수정은 독무로 ‘승무’・‘제석춤’・‘살풀이춤’, 군무로 ‘진도북춤’을 연행했다. 특이점은 북인도 춤 ‘까탁댄스’(Kathak Dance)를 자신의 춤판에 초대하여 임수정 춤의 외연을 확장한 점이다. 그녀는 “이 시대에 전통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삶은 뼈를 깎는 아픔 속에 숨겨져 있는 밝은 빛을 밖으로 드러내는 거룩한 일”이라고 한다. 춤에 ‘올인’한 그녀는 전통춤의 사자(使者)가 되어 있다.
임수정의 전통춤판은 열여덟 개의 나이테를 갖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면서 인성(人城)을 쌓아왔다. 성 안에는 신실(信實)로 엮은 악・가・무 동지들이 동거한다. 내일을 여는 그녀의 춤은 감각을 넘은 현장성을 소지하기 때문에 진정성을 인정받고 존중받는다. 현장의 느낌 없이 책상에서 단어와 사건의 의미를 조립하며 쓰는 시는 시가 아니듯 그녀는 춤의 의미와 장단을 찾아 전국을 답사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내공으로 단련된 그녀는 춤으로 꽃을 피워 내며, 천둥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눈을 내리기도 해왔다.

동 시대의 여걸인 그녀의 춤 연보는 이 날 공연의 춤이 시작되기 전 영상(‘길에서 길을 묻다’)으로 증거한다. 이번 공연을 통해 임수정 뿐만 아니라 후학들의 무던함과 성실성으로 임수정 춤 집단에 대한 신뢰감이 증폭되었다. <춤푸리>는 축원・해원・신명에 걸친 구성의 묘를 보여줌으로써 전통춤이 단조롭고, 극적 구성이 어렵다는 막연한 오해를 씻어내 주었다. 정지되고 정제된 임수정의 기교적 전통춤은 순식간에 관객들을 황홀로 몰아 거부할 수 없는 전통춤 옹호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의 춤은 춤푸리로서 엄숙한 제의의 연례(年禮)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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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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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춤'

임수정은 수많은 국내・외의 전통춤 공연을 통해 우리 춤의 미학을 연구해오고 있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악・가・무에 정통한 학자적 춤 연행자로서 들뜸의 춤을 지양하고, 예본(藝本) 춤을 지향한다, 올해의 전통 춤판 <춤푸리>는 살풀이춤의 원형과 모태인 진도씻김굿의 의식무와 음악을 살풀이춤과 함께 공연함으로써 ‘풀이’에 내재된 예술정신을 탐색한다. 씻김굿에서 추는 ‘제석춤’과 ‘승무’를 통해 민속춤에 내재된 불교사상을 들추어낸다. 한국의 대표적 전통춤 형성의 모태가 되는 연희와 함께 춤에 내재된 예혼과 신묘의 춤 세계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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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승무’; 승무는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로써 품위와 격조가 높은 춤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는 유려하게 흐르는 춤의 조형적 선,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忍辱)의 세계를 그려낸 춤이다. 이매방류 승무는 힘과 신명이 뛰어난 춤으로 굽히고 돌리는 연풍대와 호화로운 장삼놀음, 춤의 경건함을 밟아가는 듯 매서운 발디딤세, 가슴을 울리고 영혼마저 뒤엎어 버릴 듯 세차고 풍요하면서도 멋들어진 북가락은 예(藝)의 경지를 보여준다. 임수정 독무의 승무는 심오한 철학의 문학적 감흥을 자아낸다. (출연: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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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축원비나리’; 축원 소리로써 여러 액을 물리치기 위한 액풀이, 명과 복을 빌며 순조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간절히 소망하는 바를 기원하는 축원덕담 등으로 이루어진다.(츨연:박성훈) ‘제석춤’;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중 ‘제석거리’에서 추는 굿거리춤과 지전춤을 바탕으로 구성된 춤으로써 살아있는 이들에게 복과 명을 빌어주기 위한 축원무(祝願舞)로 경건하면서도 우아한 춤사위로 구성된 의식무(儀式舞)이다. 진양, 굿거리, 엇모리, 자진모리, 흘림 등 다채로운 장단에 맞추어 축원의 춤들이 펼쳐진다. (출연: 임수정, 반주: 박병천가무악보존회)

‘고풀이춤’; 이승에서의 망자의 한을 풀어 극락으로 인도하는 해원의식, 맺힌 고를 하나하나씩 풀어가며 염원하며 추는 춤이다. 박병천 선생의 고풀이 소리는 해원의 경건함을 소지한다.(출연: 한국전통춤예술원, 반주: 박병천가무악보존회) ‘살풀이춤’;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정적미의 단아한 멋과 정한의 비장미가 스며들어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닌 신비의 춤이다. 이 춤은 분명한 대삼소삼의 구분, 손끝에서 발끝까지 기로 표출되는 사위들, 자연스런 움직임과 강약의 흐름 속에서 맺고 푸는 춤의 품격이 있다.(출연: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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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장구'

‘설장구’; 농악의 판굿에서 장구재비가 발림을 하며 장구가락으로 솜씨를 보이는 것으로 화려한 가락과 뛰어난 발림, 흥을 내포한 공연이다.(출연:유인상) ‘진도북춤’; 마무리 춤으로 쓰인 박병천류 진도북춤은 화려한 북장단과 춤사위에 두 손에 북채를 들고 신명을 부르며 추는 춤이다. 커다란 독수리가 허공을 노니는 듯, 천길 낭떠러지로 물줄기가 내리꽂히는 듯 웅장하고도 멋스런 춤사위는 신명의 경지에 빠져들게 한다. 강렬한 북가락과 유연한 장구가락이 남성적 힘과 여성적 섬세함이 어우러져 흥과 멋을 함축한다.(출연: 임수정 외 한국전통춤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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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딱댄스'

‘까탁댄스’; 남성 독무로 선보인 까탁춤은 흔히 힌두교 사원에서 추는 북인도 전통춤으로서 가장 빠른 형태의 춤이다. 인도 신화에서의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 또는 인도의 대표신 중 하나인 끄리쉬나의 이야기에 맞춰 추는 춤 이름이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까탁은 크게 자이푸르 지역의 탄다프(Tandav)와 럭나우 지역의 라스야(Lasya) 스타일이다. 탄다프는 강렬한 몸동작과 함께 보다 기술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라스야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동작과 얼굴 표정에 초점을 맞춘다. 무용수 아미트 킨치(Amit Khinchi)는 탄다프를 선보였다.

무용가 임수정은 “전통춤은 외면적 예술미 못지않게 내면을 담을 수 있는 정신세계가 중요하다.”, "전통춤은 춤사위 뿐 만아니라 조상들의 정신문화를 이해해야만 감흥과 신명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라고 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작업으로써 임수정은 수많은 예인들을 찾아다니며 전통춤을 사사 받았으며, 전통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장단과 음악의 중요성을 깨닫고 '장구교본'과 '한국의 무속장단'을 정리했다. 또한 발품을 팔아 전국 각지를 돌며 '한국의 교방검무'를 출간하는 등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춤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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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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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북춤'

임수정, 1995년 제1회 개인공연을 시작으로 해마다 수많은 전통춤 무대를 만들어온 담대한 춤 작가이다. 춤집단 한국전통춤예술원을 주축으로 무락가미(舞樂歌美)의 신화를 써 내려가는 양상이 범상치 않다. 기성세대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며 새로운 문화원형을 창조해가는 작업은 숭고하다. 그녀의 학구적 체취가 촘촘히 스며든 ‘살아있는 몸짓, 혼이 실린 춤’은 정제된 거대한 움직임의 정신세계와 선비적 지조를 대변한다. 대부분의 서양예술가들이 기성세대를 힐난하거나 부정하면서 새로운 예술을 주창해왔다. 임수정이 이끄는 춤 집단은 전통을 온전히 껴안고 있으면서도 새로움을 창조한다. 경이로운 일이다.

◯ 임수정 예술감독

국립경상대학교 교수, 무용학 박사

한국전통춤예술원 대표

박병천류 전통춤보존회 초대 회장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

제15회 한밭국악전국대회 명무부 대통령상 수상

2018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전통부문)’수상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