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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9)]장애인 돕지 않는 핀란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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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9)]장애인 돕지 않는 핀란드인

6월14일, 20주년 맞이한 무민월드


핀란드인의 양면적인 모습을 경험한 하루였다. 조용하고 수줍은 듯 티나지 않는 친절을 베풀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개인주의가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아예 호혜정신의 말살로 가는게 아닌지 우려돼 무섭게도 느껴졌다.

◇투르쿠에서 난탈리 무민월드로, 복잡한 경로

6월14일, 개장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난탈리에 있는 무민월드로 갈 예정. 새벽 네다섯시에 깨어나 부지런히 전날 있었던 일을 써서 뉴시스로 보내고 오메나호텔리를 나섰다. 방에 창이 없어 몰랐는데 도로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이 비가 왔나? 아직 햇빛의 강도는 약하고 해변에 있는 도시라 밤새 생긴 습기에 젖은 것이 아닌가 싶다.

종일 걸어야할 일이 너무 많아서 더 피곤했다. 끌고 다니기 힘든 24인치 캐리어는 투르쿠역 로커에 남겨놓고 온 참이다. 호텔에서 역으로 이동, 나머지 짐들도 로커에 보관하고 신분증과 현금, 카드, 유레일패스 등 중요한 것들과 당장 필요한 물품들만 크로스백에 넣고 마켓광장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각각 걸어서 10~15분 정도씩은 걸리는 거리들인데 익숙지 않은 장소라 그런지 길을 잃지 않으려 신경을 써서인지 더 힘들게 느껴진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쥐어짜내 질문을 하고,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어야하는 것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하고, 한마디로 홀로하는 여행은 모든 일상적인 일들이 몇 배나 힘든 과정이 된다.

마켓광장(카우파토리)에서 아침을 해결하려고 보니 난탈리행 버스 정류소 옆에 인스턴트음식을 파는 커다란 부스가 보인다. 미트볼과 프렌치프라이가 가득 든 1회용 박스를 내준다. 주문을 받는 아가씨는 동양적 생김새로 북쪽 라플란드에서 온 사미족인 것 같은데 영어를 거의 한 마디도 하지 못해 주문에 만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영어로 메뉴 번호인 투엘브(12)라고 말해도 이를 자꾸 13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어제 투르쿠 관광안내소에 들러 나탈리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받아왔는데 (11번, 110번 버스를 타면 되는데 마켓광장 주변으로 정류소가 여러 개라 잘 찾아가야 한다) 숫자는 알아볼 수 있지만 알파벳으로 몇 가지 단서를 달아놓았는데 이건 현지어로만 써져있다. 영어로된 설명서 하나쯤은 준비해놓을만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높은 물가에 비싼 돈을 들여 사먹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허겁지겁 먹다가 체했다. 얼마 먹지도 않아 남은 것이 아까워 점심때 마저 먹으리라 생각하고 비닐봉투에 싸서 가방에 넣어뒀는데 그 냄새가 어마어마하게 역하다. 좀 들고다니다가 무민월드 내 쓰레기통에 그냥 버려버렸는데 이런 종류의 음식점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토할 것 같으니 단단히 체한 것 같다. 음식 선택에 보다 신중을 기하고, 돈 아낀다고 냄새나는 음식물을 싸들고 다니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30여분 만에 난탈리에 도착했다. 역시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운전자는 장거리버스 정류장에 나를 내려놓고 핀란드어와 손짓으로 뭐라뭐라하더니 가버린다. 나 말고도 무민월드로 가는 이들은 젊은 중국인 커플과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백인부부. 어쩔 줄 몰라 서로 바라만 보다가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인근 약국으로 들어가 길을 물어보니 다행히 친절히 가르쳐준다. 관광안내소의 위치도 시외버스정류장과 한참 떨어진 항구변 구 시가지에 있다. 역시 주택가를 한참 걸어 물어물어 가며 공원지대에 이르니 안내소가 나온다. (주소 Kaivaoto 2) 투르쿠에서 이쪽으로 바로 오려면 우코페카 증기선을 타야하는데, 이건 편도 두어 시간이 걸리는 크루즈다.

안내소에서 난탈리 유명 관광지에 대한 몇가지 안내를 받았다. 제대로 이곳을 즐기려면 3일 정도는 묵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파스텔톤의 목조가옥들이 아름다운데 스파호텔도 유명하다고 한다. 투르쿠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오다 보면 당장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멋있는 노란색의 커다란 목조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은 Naantalin Kaivohuone으로 결혼식, 크리스마스 파티 등을 열수 있는 해변 테라스 식당이라고 한다.

◇대통령 별장이 있는 ‘선샤인 타운’

무민월드는 올해는 6월9일~8월26일 개장한다. 북유럽 관광지는 낮이 긴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문을 여는 곳이 대다수다. 진정 반짝이는 여름 한때를 최대한 즐기고 다시 여름이 돌아올 때까지 모든 것이 정지되는 길고 춥고 어두운 겨울을 견디는 셈이다. 하루 입장료는 23 유로.

무민월드는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있지만, 이 다리 근처 부두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또다른 섬에는 바스키 모험섬이라는 놀이공원이 또 있다. 이곳은 6월16일~8월12일 개장한다. 갈 시간도 없지만 이틀 뒤에나 연다니 갈 방도도 없다. 입장료는 19 유로인데 무민월드와 바스키 2곳을 이틀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은 32 유로다. 두 곳 다 3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난탈리는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어 ‘핀란드의 여름수도’라고도 불린다. 핀란드에서 태양빛이 가장 잘 드는 휴양지로 ‘선샤인 타운’이라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안내소 직원은 친절하게도 사무실 밖까지 나와 그 위치를 손으로 가리켜 알려준다. 멀리 보이는 높은 탑이 그곳이라는데 걸어서는 갈 수 없고 버스를 타고 쿨타란타(Kultaranta)라는 다른 쪽 해안 지역으로 가야한다. 14 유로를 내고 오후 1시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가면 오후 2시에 하루 한 번 있는 가이드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안내소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역에서 무민열차를 타니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 앞에서 내려준다. (무민월드 개장시간 동안 소형 무민열차가 무민월드와 구시가지 무민숍, 관광안내소 사이를 10여분 간격으로 이동하는데 무료로 탈 수 있다) 무민월드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멋져서 점심도 먹지 않고 예닐곱 시간을 한 곳도 빼놓지 않고 구경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더니 사진기를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동화 속 무민의 세계를 고스란히, 아주 디테일하게 재현해놓았다.

◇꽃을 건네주던 사내와 장애인에 무심한 이들

체기가 내리지 않아 당최 뭘 먹을 수 없어서 사이다 한 잔과 프로즌 요구르트 하나로 나머지 하루를 버텼다. 오후 5시께 무민월드를 나서는데 너무 힘들어서 욕지기가 날 정도다. 홀로 무민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짙은 금발의 젊은 사내 하나가 자신이 향기를 맡으며 들고 오던 장미 한 송이를 건네준다. 흑심은 없다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휑하니 지나가는데, 무민월드로 들어가는 다리 양쪽으로 빼곡히 정박돼있는 개인 소형 선박들 중 하나의 주인인 것 같다. 진분홍빛 장미 봉오리의 향기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잔뜩 냄새를 맡다가 머리에 하고 있는 헤어밴드에 꽂았다. 길가에서 봉우리 부분만 꺾어온 것 같은데 줄기부분이 짧아 주머니에 꽂을 수는 없었다. ‘머리에 꽃단 미친년’ 모양새가 됐지만 작은 배려에 날아갈 듯 행복해진다.

무민열차가 내려준 구 시가지 무민숍에 들렀다가 오던 길을 반복해 투르쿠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후 9시5분에 로바니에미로 가는 밤차를 탈 예정이다. 길목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려서 밤새 먹을 요구르트 몇 병을 사고 계산대 쪽으로 갔는데, 전동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장애인인 듯한 중년여인이 기다리고 있는 뒤에 아무도 없다.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한쪽 계산대쪽 줄만 길다. 나는 장애인 여성 뒤쪽으로 가 줄을 섰는데 가만 보니 이 여인이 자신이 산 병맥주 팩과 갖가지 음식물을 계산대 위로 올려놓으려고 낑낑대고 있다. 내가 영어로 “도와드리겠다”며 냉큼 이 물건들을 올려주자 “키이토스”(핀란드어로 ‘고맙다’는 뜻)를 반복한다. 그러고보니 다른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이 여인을 못 본 척 하고 있었다. 계산대 직원이 이 여인이 내민 지갑에서 대신 카드를 찾아 계산을 해주고 휠체어에 쇼핑한 물건들을 실어주고 하느라 꽤 시간이 지체됐는데, 그녀 뒤에 서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다른 쪽 계산대에만 몰려 있었던 것이다.

대체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장애인을 돕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그 여인도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도움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핀란드인들은 먼저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 척 한다는 것을 며칠 간의 경험으로 알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저럴 수가 있나, 분개하게 된다. 이 나라에서는 장애인을 좀 도와주자고 캠페인이라도 벌여 인식개선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 국가적 캠페인이라는 것이 너무 한국적, 후진국적 사고라고 폄하할 수도 있어도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무민월드

◇무민월드 20주년, 내 인생 최고의 동화

다시 오늘의 주제인 무민월드 얘기로 돌아가면, 무민은 2014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 토베 얀손이라는 여성 동화작가 겹 삽화가가 창조한 트롤(북유럽 전설속 괴생물체)이다. 토베 얀손은 Klovharu라는 가족 소유의 외딴 섬에서 여성 파트너와 살다가 2001년 6월27일 86세로 타계했다.

내 일생 최고의 동화를 꼽으라면 ‘무민 골짜기의 여름’이다. 70년대말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세계명작 전집 중 ‘즐거운 무우민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을 접하고 쏙 빠져버렸다. 당시만 해도 일본어 중역이 대세였으므로 역시 일본에 소개된 책을 다시 번역했을 것 같은데 이 동화책이 나를 강력하게 핀란드로 이끈 이유 중 하나다. 블로그 검색을 해보면 70년대 초반생인 내 또래들 중에는 이 시리즈의 복간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 신문사에서 내가 맡고 있던 팀의 후배 기자에게 이 현상에 대한 기사를 쓰게 한 적도 있다. http://nnews.mt.co.kr/mtview.php?no=2009081416542885478&vgb=column&code=column91)
나는 이 책을 소재로 엽편소설를 써 내 블로그에 공개하기도 했다.(http://blog.naver.com/tekimmail/20150631305) 초등학교 시절 학급문고에 가져갔다가 분실한 뒤 15년 후 우연히 입원했던 병원에서 이 책을 발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무민월드는 카일로(Kailo) 섬의 지형을 살려 섬 전체를 테마파크로 만든 것인데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6월26일에는 난탈리 시내에서 무민월드 캐릭터들이 퍼레이드를 벌인다고 한다. ‘무민월드 어린이 문화상’이라는 것도 있나보다. 이를 첫번째로 수상한 바 있는 데니스 리브손(Dennis Livson)이 참석한다고 홍보한다. 무민 애니메이션을 TV시리즈와 영화로 만든 프로듀서라고.

무민월드 내 스토크숍에서는 토베 얀손이 그리고 쓴 책들을 파는데 직원은 “토베 얀손이 직접 컬러 삽화를 그린 동화책 뿐만 아니라 무민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전에 이미 직접 만화로 그려 출판한 무민 시리즈도 있다”고 책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무민월드에는 유난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그리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무민 카페가 있을 정도로 인기다. 백인들은 하나같이 어린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단위로 왔는데, (유모차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3세이하는 입장이 무료라서 더 그런 듯하다) 일본인들은 여자끼리 혹은 커플끼리 온 이들이 많다. 재밌는 것은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펼쳐 든 것은 일본인들 밖에 없다. 나도 햇빛이 너무 따가워 붉게 익는 피부 때문에 캐리어 어딘가 박혀있을 모자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긴 했는데, 주 관광객들인 백인들(주로 핀란드인들과 스웨덴인들로 보이는) 중에는 모자를 쓴 이가 한 명도 없다. 매년 흑야를 견뎌야하는 이들에게 햇빛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싶기도 하다.

개중 홀로 온 일본인 남자가 있어 눈에 띄었는데, 세계 무전여행이라도 하고 있는지 머리를 오랫동안 깎지 못한 듯 잔뜩 길어 일본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포비처럼 삐죽삐죽 길어있고 수염도 잔뜩 길렀다. 상의도 팔부분이 길게 찢어진 것을 그냥 입고 다니는데 가까이 가니 씻은 지 오래된 듯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일본 젊은이들은 이런 식의 여행을 꽤 다니는지 해외에 나가보면 시꺼멓게 탄 채로 장기여행을 하는 일본남성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무민월드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무민월드 2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데 4개국어로 ‘환영한다’고 적혀있다. 영어 밑에는 일본어, 나머지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같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많이 온다는 뜻일 게다. 핀란드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스웨덴 쪽에 가까운 서쪽지방에서는 스웨덴의 흔적이 더욱 많이 남아있다. 또 지배계층과 지식계층은 스웨덴어를 주로 사용했고 헬싱키대 김정영 교수의 말로는 지금도 스웨덴어를 쓰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무민 시리즈도 스웨덴어로 쓰여졌다.

◇동화 속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무민월드

꿈의 무민월드,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어서 일일이 카메라에 담다보니 어느새 배터리가 다 닳아버렸다. 아마 무민 마니아라면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듯싶다. 정말 환장할 듯이 좋았다. 토베 얀손이 창조한 세계가 고스란히 재현돼 있는데 얼마나 세심하게 소품까지 하나 하나 신경을 써놓았는지, 일주일쯤 묵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이 섬을 일일이 다 묘사하는데도 책 한권이 부족할 듯. 섬 지형을 그대로 살려 그 둘레에 쭉 설치된 나무로된 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지속적으로 나오는 각종 모형을 만나는 것도 큰 재미다.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해변까지 있어 가족나들이로 더할 나위가 없다.

중심부에 있는 붉은 지붕과 푸른 벽체를 가진 4층 높이의 무민하우스를 중심으로 섬안 빼곡히 동화 속 건축물들을 만들어 놓았는데 실물 크기로 안쪽에도 다 들어가 볼 수 있다. 무민을 주제로한 흥겨운 노래들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무민을 중심으로 무민파파, 스노크 아가씨, 스너프킨, 해물렌, 리틀마이, 그로크, 마녀 등으로 분장하거나 인형탈을 쓴 이들이 곳곳을 살아 돌아다닌다. 아이들은 무민파파가 여행할 때 타고다녔던 배, 스노크의 나는 기계 등을 특히 좋아한다.

매 시간 각종 공연도 펼쳐지는데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로 이뤄져 알아듣기는 힘들다. 오후 2시 에마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이 음악이 있어 현지 언어를 몰라도 즐기기에 좋다. 무민하우스 앞에서는 동화 속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상황극이 종종 펼쳐지는데 무민 시리즈를 숙지하고 있다면 즐기기가 더욱 좋다. 무민우체국에 가서 1.5 유로짜리 엽서를 사소 0.75 유로짜리 우표를 붙이면 세계 어디로나 배달해준다. 나도 한국에 있는 절친한 후배에게 엽서를 썼다.

출구 쪽에는 마지막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무민월드 지도를 전시해놓고 있다. 안 그래도 입구에서 챙긴 지도가 너덜너덜해진 참이다. 지도를 다시 달라고 찾는 이들이 많나보다. 핀란드어, 스웨덴어, 영어 3가지가 있는데 직원이 나에게 스웨덴어로 된 것 주면 되느냐며 지도를 불쑥 내민다. 뒤늦게 든 생각이 나를 스웨덴 한국 입양인 정도로 여긴 것이 아닌가 한다.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편이여서 확실히 키가 작은 일본인 관광객들과는 달라 보였을텐데, 스웨덴에는 한국입양인이 1만명 정도 돼 종종 눈에 띈다고 들었다. 인구 대비 꽤 많은 숫자로 미국 입양인 10만명 다음으로 한국인 입양아가 많은 나라라고 한다.

무민트레인을 타고 구시가지 무민숍에 들러 조그마한 인형이 매달려있는 7 유로짜리 작은 열쇠고리를 샀다. 그동안 나는 여행 간 곳들에서 들고다녔던 지도와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안내자료들은 꼭 들고 돌아왔고, 봉제인형을 수집하고 있어 이를 집안에 장식해놓았다. 이번 장기여행에서는 이런 짐들을 다 가지고 이동할 수 없으므로 짐이 될만한 자료들은 바로바로 버리고 여행안내서도 필요한 부분만 뜯어서 가지고 다니다가 바로 버린다. 수집벽이 있는 나로서는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무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하마처럼 생긴 스노크 아가씨 인형 열쇠고리를 하나 구입해 아쉬움을 달랬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