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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는 많아도 거문고의 魂 아는 이는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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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는 많아도 거문고의 魂 아는 이는 드물어

“거문고는 하늘‧땅 위로하고 心身 수양하는 악기”

국악 살리려면 우리 음악의 얼과 魂을 가르쳐야
[글로벌이코노믹] 스페셜 인터뷰-이세환 거문고 명인



▲ 일본에서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기 훨씬 이전부터 펜클럽을 거느리고 있는 이세환 거문고 명인. 그는 “거문고는 하늘을 위로하고 땅을 위로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심신을 닦게 해주는 악기 중의 최고 악기”라면서 “거문고가 지닌 얼과 혼을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홍정수 기자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6줄의 거문고는 현악기다. 그러나 거문고는 줄을 튕겨 연주하지 않고 타악기처럼 손에 대나무(술대)를 끼워서 내리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문고에는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거문고의 6줄 가운데 3줄은 괘에 올려져 있으며, 3줄은 안쪽으로 받쳐져 있는데, 제1현은 문현(文絃), 제2현은 유현(遊絃), 제3현은 왕을 상징하는 대현(大絃), 제4현은 하늘인 괘 상청(上淸), 제5현은 땅인 괘 하청(下淸), 제6현은 무현(武絃)이다. 왕에 해당하는 대현이 좌우에 문무백관(文絃과 武絃)을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는 탁한 소리(濁聲)와 맑은 소리(淸聲)가 잘 조화를 이루며 하늘과 땅을 맑게 하며 위로한다. 이 같은 거문고의 여섯 줄에 평생을 걸어온 명인이 있다.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이자 금율악회 대표인 이세환 명인(60)이 그 주인공이다. 국악인생 43년의 길을 걸어온 그는 거문고 이외에도 가야금, 아쟁, 장구 등 대부분의 국악기를 다룰 줄 아는 명인이기도 하다. 양평읍 양근리 자택 앞에 있는 양평군립미술관에서 거문고 이세환 명인과 인터뷰했다.

-거문고는 어느 분에게 사사하셨습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6년제)에 다녔어요. 그곳에서 지금은 작고한 인간문화재 성경린 선생과 경북대를 정년퇴임한 구윤국 선생에게서 거문고 정악(궁중음악)을 배웠고, 거문고 산조는 한갑득 선생(인간문화재)과 원영재 선생에게서 배웠어요. 그리고 나서는 신쾌동 선생을 만나 궁중음악 전반을 배웠지요. 아쟁은 윤윤석 선생에게서, 장구는 김태섭 선생에게서 배우는 등 국악 전반을 익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악사 양성소를 졸업하고 국립국악원에 들어왔으니 벌써 국립국악원에서 생활한 게 33년이나 되었습니다.”

-국립국악원에서 정악단 정악 집박을 맡고 계신데….

“국악원에서 집박을 맡은 지는 10년이 됐어요. 그러나 아무나 집박을 하는 게 아니고, 국악 전체를 알아야 하고 궁중무용과 국악기 일체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박은 서양음악에서 오페라를 지휘하는 음악지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고 불리는 거문고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거문고는 일설에 의하면 고구려의 왕산악이 중국의 칠현금을 개조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설(說)일 뿐, 그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거문고가 등장하고, 왕산악이 100여 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이죠. ‘현금(玄琴)’이라고 불리는 거문고는 하늘의 악기라고 할 수 있어요. 맑은 소리와 탁한 소리가 만나 기(氣)를 이루고, 무엇보다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는 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거문고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악기인 셈이지요.”

-거문고와 가야금은 어떻게 다릅니까.

“먼저 6줄의 거문고가 선비의 악기라면, 12줄의 가야금은 여성 악기입니다. 또 역사적으로 거문고가 가야금보다 400년 이상 먼저 만들어졌고, 거문고가 국가정책으로 만들어졌다면, 가야금은 사람이 즐기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가야금 12줄은 1년 열두 달을 상징하고, 거문고 6줄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또 거문고는 무릎 앞에 세워 놓고 손에 술대를 끼워서 연주한다면, 가야금은 무릎에 놓고 줄을 타서 연주합니다. 특히 거문고는 왕을 상징하는 대현(大絃)을 중심으로 문무백관인 문현(文絃)과 무현(武絃)이 있으며, 괘 상청은 하늘, 괘 하청은 땅을 상징하는 등 거문고 자체가 우주입니다. 거문고는 연주를 통해 땅과 하늘을 맑게 하고, 몸과 정신을 올바르게 하며,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심신을 수양하는 악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명인은 한국 음악은 모두 거문고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음악이론서인 ‘악학궤범’을 보면, 애당초 악보는 거문고 악보밖에 없다고 한다.

-거문고 이외에도 못 다루는 악기가 없다고 하시던데….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요. 예전에는 거문고 한 가지만으로는 밥 먹고 살기에도 벅찼어요. 선비음악인 거문고는 궁중음악이 아니면 연주할 자리가 없었지요. 민속음악에는 거문고를 거의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속음악의 대가들을 만나 다양한 악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이야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을 구분하는 사람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정악을 하는 사람은 민속음악을 천(賤)하다며 거리를 멀리했다고 한다. 궁중음악은 의식과 예법을 위한 음악인데 반해, 민속음악은 그야말로 우리 민중이 살아가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교류하기 전 북한의 ‘출강(出鋼)’을 연주하셔서 곤욕을 치르기도 하셨지요.

“북한에서는 거문고를 ‘주체 악기’로 선정할 정도로 최고 악기 대접을 했으나, 악기 개량사업을 펼치면서 역설적으로 거문고가 사라졌어요. 다른 국악기는 개량해 나름대로 성공했지만, 거문고는 개량하는데 실패한데다가 연주가 어렵다보니 연주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당시 북한에는 쇠가 많이 나왔고, 이를 김영실 씨가 ‘출강’이라는 멋진 창작곡으로 내놓았어요. 저는 재일교포를 통해 악보를 입수해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가 혼쭐이 났지요. 제가 북한을 찬양해서가 아니라 남북한의 음악을 비교하기 위해 연주했을 뿐인데…. ‘출강’은 보통의 거문고 곡과는 다르게 굉장히 빨리 색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본과 유럽에 이세환 명인을 따르는 극성팬들이 많다면서요.

“많은 사람들이 거문고를 연주하지는 못하더라도 듣고 즐길 수 있도록 22년 전부터 ‘금율악회’를 만들어 운영해 왔어요. 제가 한국에서 공연하면 금율악회 일본지부, 코리안캣츠, 일본거문고회 등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는 거문고 연주를 감상하고 관광투어를 해요. 특히 1999년 9월에 서울의 호암아트홀과 부산의 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가졌는데, 일본사람들이 거문고에 맞춰 춤을 추는 거예요. 사실 거문고를 알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소리만 들으려고 하지만, 일본이나 독일의 팬들은 소리는 물론, 거문고에 담긴 철학을 알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저를 후원하는 일본 거문고회가 1984년에 결성되어, 주한 일본대사를 비롯해 기업인과 일본 의원 등이 참가하고 있으니 제가 한류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이나 독일인은 거문고의 열성팬은 될 수 있어도 죽었다 깨어나도 연주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거문고는 한쪽 다리를 오그리고 다른 쪽 다리를 그 위에 포개고 앉는 책상다리를 한 다음에 악기를 세워서 연주해야 하는데, 그들은 책상다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거문고 감상문화가 우리보다 훨씬 발달해 10여개 모임에서 동시에 인터넷을 통해 이세환 명인의 거문고 연주를 듣는다고 한다.

-거문고 연주는 일종의 수양(修養)이라고 하셨습니다. 45년의 거문고 인생에서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거문고 연주자를 보면 하나같이 날씬합니다. 그걸 보면 거문고 연주를 수양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고, 외적으로는 호흡을 통해 단전에 기(氣)를 모으는 것이지요. 거문고 연주자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판소리 명창들입니다. 판소리 명창들도 거문고 연주자처럼 단전호흡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일맥상통해서인지 거문고 연주자와 판소리 명창이 부부를 이룬 경우가 많아요. 제가 43년 동안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조화를 이룰 때 기(氣)가 운용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하늘의 도(道)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쩌면 거문고는 21세기 초스피드 시대와는 잘 맞지 않는다. 한 번 연주하면 1곡이 1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세종대왕이 만든 ‘여민락’의 경우 1시간 40분을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한다. 그것도 음(音) 하나 하나를 음미하듯 아주 느린 장단으로 연주한다. 게다가 한 자리에 앉아 거문고를 타는 일은 노동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거문고가 우리에게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음악인 국악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서양 음악에 익숙하다보니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외부의 침략을 숱하게 받으며 많은 걸 빼앗겼어요. 그렇지만 소리와 춤은 빼앗기지 않고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지요. 빼앗고 싶어도 악기는 빼앗을망정 소리는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만 해도 해외에 나갈 때는 반드시 우리의 소리와 춤이 문화사절단으로 먼저 나갔는데, 요즘은 문화선진국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문화가 우물 안에 갇혀 있어요. 정부는 우리 문화를 널리 알려야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200개 가까운 4년제 대학이 있음에도 국악과는 14개뿐이고, 그것도 연주기능은 가르쳐도 그 안에 담긴 철학은 가르치지 않아요. 그것이 서양음악에 비해 국악을 멀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국악기를 통해 단순히 국악연주만 가르치지 말고 거기에 담긴 한국의 얼과 혼을 가르쳐야 합니다.”

-국악의 미래는 밝습니까?

“조금 전에 이야기 했다시피 국악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어요. 장충동 국악고가 설립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가 있어요. 바로 ‘국악은 우리의 얼이다’는 문구이지요. 얼은 우리 자체의 본질이자 얼굴입니다. 앞으로 다음 세대를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에 저도 올해 정년을 하고 나면 양평에서 대학을 안가도 거문고에 대해서는 최고의 명인이 되도록 제대로 가르치려고 합니다. 거문고의 본질을 알면 소리 내는 건 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