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가 눈치채지 못하게 급습하려 심야를 선택했습니다. 산은 고요했고, 달빛은 한적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사명대사는 물길을 막는 바위가 나타나면 아예 뗏목을 공중에 부양시키며, 계속 산 위로 떠서 날아갔습니다.
어느덧 뗏목에서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냥 날아 갈수도 있었지만 물길도 없는데 뗏목을 타고 가면 너무 멋을 부리는 것 같아서 뗏목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스님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인사를 건넸습니다.
“사명대사가 아니시온지요?”
“아,네. 그렇소만...댁은 뉘시오?”
스님은 낭아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서산대사를 모시고 있는 시봉입니다. 서산대사께서 이곳에 오면 사명대사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명대사는 기가 막혔습니다. 서산대사는 자기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서산대사는 뗏목에서 내리려고 결심한 그 시각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명대사는 속으로 신음을 했지만 이 정도로 기가 죽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준비한 승부수가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명대사는 시봉스님의 안내로 서산대사가 기거하는 암자에 도달했습니다. 서산대사는 막 방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사명대사가 외쳤습니다.
“서산대사! 대사님의 신통력에 감복했습니다. 대사님께서는 미래를 잘 안다고 소문이 나 있던데 맞습니까?”
서산대사는 인자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공연한 헛소문일 것입니다. 하긴 미래를 조금 알기는 합니다.”
“허, 그러세요.”
사명대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느닷없이 다음 질문을 쏟아내었습니다.
“대사! 지금 제 손에는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이 새가 죽겠습니까? 살겠습니까?”
사명대사의 의도는 뻔했습니다. 만일 서산대사가 새는 살 것이라고 하면 새를 죽일 것이고, 새가 죽을 것이라고 하면 날려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서산대사도 물었습니다.
“사명대사! 나는 지금 한 발을 마루에 내딛었습니다. 내가 밖으로 나가겠습니까? 다시 안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서산대사의 의도도 뻔했습니다. 사명대사는 일이 잘 풀려간다고 생각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재차 반문하였습니다.
“대사! 질문은 제가 먼저 하였습니다. 먼저 대답을 해 주시지요!”
이에 서산대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사명대사! 당신은 스님입니다. 한낱 미래 맞추기 시합을 위해서 살생을 하겠습니까? 스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새는 살아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명대사는 또 한 방 맞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새를 날려 보냈습니다. 서산대사가 질문했습니다.
“대사께서도 제 질문에 대답하시지요. 내가 나오겠습니까? 들어가겠습니까?”
이에 사명대사는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면서 대답했습니다.
“대사께서는 밖으로 나오실 것입니다. 손님이 와 있지 않습니까.”
“허허 대사는 세상의 이치에 밝군요. 마침 달빛이 좋으니 마루에 앉읍시다.”
서산대사는 사명대사를 기꺼이 맞이했고, 그 신승들은 맘이 새도록 담론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분 신승의 대화에는 심오한 이치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우주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잠시 이야기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