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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선생 주역강의(18)] 운명은 시간 속을 사는 생물과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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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선생 주역강의(18)] 운명은 시간 속을 사는 생물과도 같아




[글로벌이코노믹=초운 김승호 주역연구가]옛 말에 살얼음을 밟듯이, 높은 절벽 위에 선 듯이 하라는 것은 운명에 대한 조심성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운명이란 그 전개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위태위태하다고 보아야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생활상에서 운명을 대하는 훌륭한 태도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소강절은 젊어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신부와 첫날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는데, 소강절이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소강절은 앞으로 낳을 그 자식이 다시 자식을 낳을 것을 알았습니다. 소강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또 그 자식이 자식을 낳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4대까지 추적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소강절의 4대손이 나라에 죄를 짓고 사형을 당한다는 것 까지 알아냈습니다. 소강절은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구할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한참 고민 끝에 소강절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 첫날을 보낸 신부에게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고, 어떤 글을 써 놓았습니다. 이 글은 소강절의 유언에 따라 후손에게 차례로 전해졌습니다. 이 글은 결국 4대손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그것은 개봉되지 않고 철저히 비밀리에 전달된 것입니다.



그런데 4대손은 어느날 우연히 죄를 짓고 관가에 체포되어 끌려갔습니다. 판결은 사형이었습니다. 소강절의 예측대로 된 것이지요.
가족들은 어쩔 줄 모르고 고민하다가 4대조 할아버지가 남긴 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소강절 할아버지의 유언은 4대손에 이르러 가정에 큰 우환이 있을 것인즉, 그 때 이 글을 관청에 갖다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그 글을 관청으로 가져갔습니다. 형이 막 집행되기 직전이었는데, 관리는 죄수의 할아버지가 글을 남겼고, 그 글을 가져온다는 것을 듣고 예의를 갖추어 문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소강절은 죽은 지 수 백 년이 지나서도 존경받았던 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자의 글을 방에 앉아서 받는 것이 무례라고 생각한 관리는 정중하게 문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작스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관리가 앉아있던 건물의 천정이 무너지면서 건물전체가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관리가 몇 초만 더 그 곳에 앉아 있었으면 깔려 죽을 뻔 했던 것입니다. 그 위기의 순간, 마침 소강절의 글이 도착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관리는 뒤를 돌아보며 놀랬지만 소강절의 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관리는 무릎을 꿇고 문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급히 개봉해서 읽었는데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목숨을 살려 주었으니, 당신도 나의 자손을 살려주시오....”



관리가 글을 보니 내용은 분명했습니다. 소강절 선생은 백 년도 전에 관청 건물이 내려 앉을 것을 알았고, 또한 어떤 관리가 담당 관리인지 건물 붕괴시간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알고 서신을 보냈던 것입니다. 관리는 경건함과 함께 전율을 느꼈습니다.



죄수는 당연히 방면되었습니다. 관리는 그 이후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인생을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갔다고 합니다. 소강절 선생은 참으로 대단했던 분인 것 같습니다.



공자는 자신이 죽고 나서 1000년이나 지나 진시황이 모든 책을 불사를 것을 알고 자신의 저서를 생가 벽에 보존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 잘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에언가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래를 아는 분들은 동서고금을 통해 상당히 알려져 있습니다. 미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자연계의 현상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지구는 지난 40억년 동안 태양을 돌고 있는데, 일 년에 일 초도 틀리지 않게 정확히 공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수 십억년 동안 계속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미시적인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도 않고, 결정되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태어날 당시부터 이순신 장군이 태어날 것이 예정되어 있었을까요?

오늘 비가 정확히 몇 방울 떨어지고, 한국인이 금년에 먹을 쌀이 정확히 몇 알인지 정해져 있을까요? 오늘 바람에 의해 날리는 저 먼지는 정확히 몇 개나 되는지, 지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을까요?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결정해 놓기를 좋아하는 신이 있다고 하여도 모든 것을 정할 수도 없고, 정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자연현상을 딱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을 방법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신이 어떤 여자가 7월 3일에 얼굴을 약간 찡그리는 것까지 계획하여 결정해 놓았을까요?

미래를 너무 결정적으로 보면 안됩니다. 오늘날 월드컵 축구 추첨의 결과가 이미 5천 년 전에 정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대자연은 자유롭게 우연히 그 때 그때 사건이 일어날 뿐입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미래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미래는 분명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역의 명제이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차분히 그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생에 있어 아직 작은 일, 예컨대 평생 몇 발국 걷느냐 같은 문제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혼을 한다거나 부자가 된다거나 (이것도 정확히 1원단위까지 알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 정도는 개연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주역은 인생의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역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므로 인생에 막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라고 예언적 단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평생 몇 번 화를 내고 몇 번 실패를 하느냐하는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원래 자세히 알려고 할 땐 오히려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뜻밖에도 알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제 운명이란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의미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운명에 대해서 먼저 말할 것은 운명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운명이 137억 만년 전(우주 탄생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운명은 운명마다 그 만들어진 시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부가 결혼하고 다시 이혼을 했다면 그 운이 단군 할아버지 당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떤 운명은 오래 전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만, 어떤 운명은 최근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운명이 오래 되었고, 어떤 운명이 방금 전에 만들어졌는지는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운명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운명은 언젠가 과거에 만들어지고, 미래에는 그것이 실현됩니다. 운명은 시간 속을 사는 생물과도 같아서 탄생의 시기가 있고, 소멸의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처럼 운명이란 언젠가 그 작용을 끝마치게 되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어느 때 찾아오는지 참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두렵기까지 한 것이지요. 운명이 아주 좋게 전개된다면 이는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불행한 사람이 많은데, 그들 중에는 운명적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명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공자는 군자의 3가지 두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운명을 첫 번째에 두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성취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운명이 그렇게 되어있지 않고, 오히려 불행과 실패로 되어있다면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성인인 공자도 운명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