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에리 북유럽80일(17)] 버스 아가씨 시간개념 ‘꽝’

공유
0

[김에리 북유럽80일(17)] 버스 아가씨 시간개념 ‘꽝’

6월 21~22일, 호닝스보그에서 유럽 최북단 노르카프로


6월21일. 역시 하루에 한대뿐인 노르카프가 종점인 버스를 어제 내렸던 시간에 다시 타야 한다. 숙소에서 짐을 싸들고 비를 맞으며 버스가 정차하는 리카호텔 앞으로 일찌감치 와서 기다렸다. 근데 비를 피할 곳이 없다. 이쪽 지역 가옥들은 뾰족지붕의 경사가 높은데 처마가 짧다. 겨울에 눈이 지붕에 쌓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처마가 짧으니 비를 쫄딱 다 맞아야한다.

다행히 수년전 현장 취재 갔다가 얻어온 1회용 비닐우비를 하나 챙겨온 것이 있어 뒤집어쓰고 있으니 그나마 좀 낫다. 가방들은 방수덮개를 씌워 놨다. 일찌감치 장만해둔 24인치 캐리어 덮개는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오는 동안 좀 찢어지긴 했지만 쓸만했고, 등에 맨 배낭 덮개도 인천공항에서 호주 백패커 제품인지라 좀 비싼 가격이었지만 사가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트북 컴퓨터가 든 배낭이라 소중하다.

호텔 안을 들여다보니 어제의 키 작은 금발 꽃미남 총각이 역시나 리셉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제 동네를 둘러보다 다시 들러서 리카호텔에서 운영하는 스토가멘(Storgammen)에 대해서 물어보고 너무 말을 많이 시킨지라 괜히 쑥스러워서 못들어가겠다. 덕분에 이 사미족 전통음식 식당이 6월10일~8월10일 여름철 딱 두 달간만 문을 연다는 걸 알겠됐지만….

근데 버스시간표에 나와있는 오후 5시55분이 됐는데도 버스가 안온다. 뭔가 스케줄 변화가 있는건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버스시간표를 잘 챙겨야하는게 매년 달라지고 하절기에만 다니는 노선이 많으며, 요일별로도 다르니 스케줄이 나름 복잡하다. 이게 안 오면 오늘 예약해놓은 숙소는 어쩌며, 앞으로의 여행계획이 어그러질텐데 어쩌나, 아찔하다. 호텔 로비로 뛰어들어가 그 총각보다 선배인 듯한 금발미녀 여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는데, 급하니까 영어가 잘 안나온다. 내가 말하면서도 상대방이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호텔리어 아가씨 왈, 여기 오후 5시55분 버스가 오는지 자기는 모르겠고 자기가 아는 한은 노르카프행은 오후 1시쯤 떠나는게 다라면서 프린트물을 보여주는데 노르웨이 지역버스 스케줄인 듯 하다. “나 어제 이 시간에 그 핀란드 버스 타고 여기서 내렸어, 매일 오는 거 아니었어?” 하니 고맙게도 라핀 린야트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어 알아봐주겠단다. 근데 그 순간 호텔 창밖으로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형언할 수 없이 반가워서 미친듯이 뛰어나갔다. 저 버스를 놓치면 끝장이다. 버스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탈 사람이 안 보이면 버스는 그냥 떠나버린다.


◇시간개념없는 핀란드 버스기사 아가씨

운전사는 말괄량이 얼굴을 한 핀란드인 아가씨. 반가워서 마구 횡설수설했다. “버스 안 오는 줄 알고 얼마나 겁나고 걱정했는줄 알아? 비와서 늦었니? 비 많이 오는데 운전 조심해야해. 너 진짜 사랑해”라고 온갖 호들갑을 떨며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했다. 근데 버스가 출발하고 놀랐던 가슴이 진정되니 쟤가 늦어서 내가 십년감수했는데 왜 좋아했지, 화가 슬슬 나기도 한다. 비바람은 치는데 버스 승객은 나 딱 한 사람. 카라쇼크에서 내리는 이도 없었으니 거기까지는 빈 버스로 온 것이다.
가만보니 이 아가씨 성격좋고 낙천적인데 버스시간을 잘 안 맞추고 대충 운전한다. 운전 내내 몇시간을 휴대폰으로 어디에 전화질인건지 질리지도 않고 수다를 떠는데, 운전이 잘될까 걱정될 정도다. 얼마나 시간개념이 없는지 버스는 카라쇼크에서 출발, 락셀브를 거쳐 올더피요르드에서 오후 8시15분까지 30분간 정차하는데 거기서 정시출발하면 됐지 쓸데없이 미적거리다가 4분 늦게 출발하는 건 또 뭐람.

성격 나름인거다. 이나리에서 카라쇼크로 올 때 탄 버스기사 아저씨가 얼마나 딱딱 맞춰 정시운행을 하는지, 본래 그런건줄 알았는데 이러느라고 버스도 연착된 거다. 대신 그 아저씨는 숙소위치를 물어봐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나 몰라” 하는 빡빡한 성격인데, 이 아가씨는 내가 묵는 유스호스텔 예약서를 보여주니 “나 여기 어딘줄 알아! 가다가 여기에 내려줄게”하고 활달하게 말한다. 핀란드인 치고 영어는 거의 못하는 편인데,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안 했나봐. 하지만 노르카프 DVD 틀어줄게, 하며 어찌나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구는지 사랑스럽다.

게다가 창밖 풍경은 절경이다.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기에 버스 안에서 안대를 끼고 눈이나 좀 붙이고 있으려고 했는데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노르웨이 해안, 그 유명한 피요르드 지대로 들어서는 것이다. 빙하가 얼었다 녹고 하면서 땅을 찢어놓듯 만들어놓은 해안가를 따라 버스가 달리는 것이다. 왼쪽에는 지난 겨울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군데군데 하얀얼룩이 있는 툰드라 산들이, 오른쪽에는 갖가지 바위절벽들이 어우러진 바다가 펼쳐진다. 양, 말, 순록 등등도 종종 나타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 잘 나올지도 알 수 없지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

게다가 바위굴을 파놓은 터널을 몇 개나 지나는데,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이렇게 긴 터널은 난생 첨이다. 길고 짧은 터널 다섯개 정도를 지나왔나, 버스가 안 오는 줄 알고 놀라 뛰던 가슴에 멋진 풍경이 끊임없이 나오니 나도 모르게 흥분상태가 되서 이리 저리 양쪽 창밖을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노르웨이인들의 땅굴 파는 실력 세계 최고, 인정!

근데 나는 그때까지 여행안내서에서 본 해저터널이 내가 오늘밤 묵는 호닝스보그에서 노르카프로 가는 길에 있는 줄 알았다. 다음날 아침 호스텔 부엌에서 만난 영국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어제 지나온게 해저터널이야, 몰랐니? 여러 개중 가장 긴거거든. 교통표지판에 써있어서 ‘우와, 바다밑을 지나간다’ 이러면서 왔는데” 하면서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Nordkapptunnelen(노르카프 터널) 6875m, 해수면 밑 212m’라고 노르웨이어로 써있다. 이런 낭패가 있을 수 있나. 호스텔 로비에서 입수한 지도를 보니 호닝스보그는 이미 이 터널을 지나 마게뢰야(Magerøy) 섬에 있는 거다. 잘 생각해보니 이 섬으로 통하는 길은 이거 하나, 나갈 때도 다시 거치게 되니 그때 잘 봐놔야겠다.

사실 21일 이곳에 도착하도록 스케줄을 잡은 것은 하지에 유럽 최북단 노르카프 곶에서 자정에 뜨는 해(미드나이트 선)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름의 ‘하지 기념’이랄까. 하지만 버스스케줄과 호스텔 리셉션 오픈시간을 따지니 달력상 하지일인 21일에 여기에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타고온 버스시간표에 따르면 오후 9시35분 호닝스보그를 거쳐 오후 10시20분 노르카프에 도착한다. 이후 내려오는 버스는 자정 넘어 있으므로 내일을 기약하고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아침을 먹으며 이 ‘잉글리시맨’에게 “영국인들은 하지일에 스톤헨지에 가서 이를 기념한다며?”라고 물으니, “맞긴한데 영국에서는 아침까지 깜깜하니 하지가 의미가 있지, 여기서는 의미가 없잖니”한다. 하긴 그렇다. 흰 수염이 섞여 있는 수염이 많이 자란 아저씨는 사이클을 타고 지난 5월 영국 요크셔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는데 백인 노인네들도 자전거로 웬만한 산까지 오르내리며 관광을 온다. 기운들도 좋다, 진짜. 말이 거의 없는 조용한 이 영국인은 호스텔 부엌 벽에 붙은 세계지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곤 했는데, 누가 하나 자전거여행에 대해 물어보면 끝도없이 말이 나온다. “세계지도를 바라보면서 다음번에는 어디로 사이클여행을 할까 영감을 얻는다”면서 지도를 가리키며 자기가 갔던 나라들 얘기를 줄줄 읊는데, 요크셔 액선트 알아듣기 너무 힘들어서 리스닝의 한계를 느끼며 마구 피곤해진다. 괜히 “바람 엄청 부는데 자전거 균형은 어떻게 맞추니?”하고 물어봤나보다. 이번엔 자전거 종류와 운전방법에 대해 뭐라뭐라 신나게 얘기한다. 맞장구 좀 쳐주다가 자리를 떴다.

◇버스놓치면 끝장, 스케줄 노이로제

핀란드 헬싱키에서 도미터리에 묵은 후 내내 독방을 쓰다가 오랫만에 다시 공동숙소를 쓰게 됐다. 공동숙소가 있는 곳은 그만큼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6명이 같이 쓰는 방에 독일인 할머니 한 명과 처녀 한명이 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북쪽지대는 2차대전때 나치군이 퇴각하면서 완전 초토화시키고 간지라 독일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데, 뭣하러 꾸역꾸역들 올라오는지. 게다가 곰돌이 인형을 안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 할머니는 상냥한 편인데, 독일인 처녀는 내가 인사를 해도 본척만척. 여전히 유색인종 싫어하는 독일인들이 많은 건지 기분 확 잡친다.

내가 묵는 호스텔, 노르카프 반드라르헴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다음 기착지로 이동하는 버스 스케줄이었다. 버스 놓칠까봐 마음 졸인 걸 생각하면 노이로제 걸릴 거 같다. 리셉션에 물어보니 호닝스버그 마을중심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가야 확실히 알 수 있단다. 리셉션 아줌마는 로컬버스가 있긴 하지만 자기도 그 버스시간표를 이해 못하겠다며 자기는 매일 걸어다니는데 자기 걸음으로는 40분정도 걸린다며 길을 알려준다.

다음날 오전 원고를 하나 보내고 슬슬 관광안내소를 향해 걸었다. 어제 오면서 이 지대 풍경에 감탄할만큼 감탄한지라, 날도 흐리고 하니 이제 좀 덤덤해졌다. 아마 여기 사는 이들도 매일 보는 일상적 풍경에 그럴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림같이 알록달록 예쁜 집들도 자세히 보면 바닷바람에 낡고 삭아있다. 출발 전 한국에서 개봉한 노르웨이 영화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를 보고 왔는데, 알마도 이런 외진 어촌에 살면서 자신이 사는 마을 표지판에 손가락 ‘퍽큐’를 날리며 지긋지긋해한다. 알마가 친구들과 놀던 한적한 버스정류장과 비슷한 정거장을 보니, 여기사는 애들도 역시 그렇겠지 싶어 웃음이 난다. 길 군데군데 있는 순록 배설물을 피하며 언덕을 타고 다니는 순록 사진도 찍고, 꽃다발을 꺾은 금발 모자 사진도 찍고 하면서 어슬렁거리면서 왔는데도 30분이면 도착한다.

관광안내소 아가씨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23일 토요일 여기서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버스시간. 내가 찾아 프린트해온 것은 오전 11시15분에 출발하는 것 딱 한대인데 자세히 보니 업데이트되기 전인 작년 것이었다. 2012년도 것은 오후 1시에 출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묵는 호스텔 옆에도 정거장이 있느냐고 하니, 거기 도로옆에 서서 손 흔들면 세워줄거라고 동작 시범까지 보인다. 버스 스케줄부터 챙겨보길 정말 잘했다. 버스 시간 못맞췄음 길바닥에서 정말 어쩌랴.

노르카프 곶으로 올라가는 버스도 이 관광안내소 앞에서 출발한다. 노르웨이버스 보레알(Boreal)이 호닝스보그에서 노르카프를 하루 4차례 왕복한다. 국내발간 여행안내서는 베올리아(Veolia)라고 돼있는데 보레알로 사명이 바뀌었다. 이곳에 관광객들이 점점 늘면서 점점 증편이 돼 작년보다도 버스 횟수가 늘었다. 왕복 475 크로네(약 9만2000원) 45분 거리에 있는데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 버스비를 내려고 보니 노르웨이에서 3일째인데 벌써 찾아온 근 50만원 돈을 거의 다 써서 돈이 모자란다. 버스기사가 현급지급기가 몇m만 가면 있다길래 갔다올게 기다리라고 하고 가니 못찾겠다. 오후 1시30분 출발에 맞춰 허겁지겁 돌아와서 카드로 지불했다. 나 말고는 나이든 백인 부부가 탔는데, 버스기사와 영어로 “노르웨이 전에도 왔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름다운 나라야” 어쩌고 대화하길래 “너무 비싼 나라이기도 해, 나 3일째인데 벌써 돈 다 썼어” 하고 끼어드니, 할머니가 막 째려보다가 얼굴을 확 돌린다. 역시 독일인인가? 유색인종 싫어하는 백인들이 여전히 많은가봐. ‘투덜이 스머프’ 기질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

노르웨이 주요관광지를 하루, 이틀씩 머무르려고 스케줄을 짜다보니 이 나라에 한 달이나 있게 됐다. 4개국을 도는 스케줄을 이미 짜놓았으니 변경하려면 너무 복잡하고 엄청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돈 나갈거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에라, 일생 한번인데 그냥 저지르자는 기분으로 왔는데 막상 닥치니 현기증이 난다.

노르카프홀에 도착해서야 475 크로네에 노르카프 통행료 겸 입장료가 포함돼있다는 걸 알았다. 파노라마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 있길래 티켓을 사야하느냐고 물어보니, 버스티켓 있으면 된다고 한다. 왕복 버스값만은 240 크로네였다.

버스 스케줄표에는 관람후 호닝스보그로 내려가는 버스는 오후 7시45분, 밤 12시30분에 있다. 안내데스크에 물어 보니 오후 6시15분에도 한대 더 있다는데 날씨가 흐려 자정의 태양을 보기는 그른 것 같다. ‘버스 노이로제’에 스마트폰 타이머를 맞춰놓고 구경을 했다. 버스 놓칠까봐 신경이 계속 곤두선다.


오후 2시15분에 여기 도착하니 노르카프 곶 끝부분 지구본 조형물 하나 보고 다음 버스시간까지 뭐하나, 여기보다 진짜 최북단인 크니브스셸로덴(Knivsekjelodden 북위 71도11분8초, 노르카프는 북위 71도10분21초)까지 한번 걸어가봐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커피 한잔 시켜놓고 쉬다가 널직한 노르카프홀을 꼼꼼히 돌아보다 보면 몇 시간은 후딱 간다. 게다가 바람이 태풍수준이다. 초속 22㎞로 부는데 바람에 밀려 앞으로 나가기도 힘들고 카메라를 든 손도 흔들릴 정도다. 크니브스셸로덴까지 도보로 왕복 5시간 정도라는데, 이 바람을 뚫고 걸어가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온도상으로는 10도에 가까운데, 위아래로 내복을 두겹씩 껴입고 오늘을 위해 준비한 오리털파카와 목도리, 장갑에 방수재킷 두개까지 또 걸쳤는데도 춥다. 올라오는 길 양옆 산에 아직도 지난 겨울 눈이 녹지도 않았는데 오죽하랴.

버스도 실내온도 22도 정도로 따뜻하게 운영하고 노르카프홀 실내도 얼마나 단열을 튼실하게 했는지 안의 직원들은 검은 반팔 티셔츠 제복을 입고 근무한다. 하여간 튼튼한 북구 건물 내에서는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노르카프홀을 샅샅이 둘러보고 난 후 자정까지 기다려야하나 말아야하나 싶어 직원들에게 “오늘 밤 태양을 볼 수 있을까” 물어봤다. 여기 직원들은 일도 그리 없는데 엄청 바쁜 척을 해서 뭐 물어보기가 힘든데 한 총각이 적극적으로 대답을 한다. 팔이 약간 불편한 장애가 있는 이 청년은 알고보니 핀란드인으로 리카호텔 소속이다. 노르웨이 최대 호텔체인인 리카호텔은 온갖 관광지 경영에도 다 참여하고 있다. 장거리 버스들도 리카호텔을 중심으로 서고, 노르카프홀도 운영하고 있단다. 그 청년 왈 “해가 날 수도 있어. 날씨가 하도 급변해서 확신할 순 없는데, 3일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구름끼고 비와서 바로 저기 보이는 북위 71도11분8초 방향을 알리는 돌 있잖니, 그것도 안보였어. 날씨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라며 “나는 핀란드인이고 여기에 핀란드인 직원도 6명이나 되고, 친구 하나도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고 얘기를 늘어놓는다.

피곤하긴 한데 오후 7시45분 버스를 탈까, 핀란드인 직원과 얘기나 좀 더 나눠보자고 하며 기다릴까, 계속 망설이다가 버스를 놓칠 뻔했다. 내가 올라타니 버스는 43분에 그냥 출발해버린다. 놓쳤음 어쩌지, 이게 막차도 아닌데도 괜히 아찔해지면서 모골까지 송연해지고 오금도 저렸다가 간담도 서늘해지는 듯하다. 기운이 쫙 빠져서 그냥 버스 좌석에 늘어졌다. 게다가 기운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덩치만 큰 허약체질이라 여기선 튼튼하게 만들어놓은 문짝 하나도 더 무겁고, 안전벨트도 뻑뻑하고 벨트 잠그고 끼우는데도 잘 안껴지고 힘도 무지 든다. 결국 꼬불꼬불한 산길을 내려오는데도 안전벨트 매는 걸 수십번 시도하다가 바보처럼 포기했다. 카드키 사용방법만 해도 핀란드에서는 꽉 끼워넣은 채로 문을 열어야한다는 걸 몰라서 문을 못열어 한참 고생하기도 했고, 수돗물 트는거나 변기 물내리는 방법까지 나라마다 다르니 뭣 하나 매 순간 자연스러운게 없다.

버스 놓쳤을까봐 흥분, 다시 올까 싶은 마음에 눈알 빠지게 구경하고 눈 부릅뜨고 영어 안내판 해석하고, 안 되는 영어로 대화하고, 원고 쓰고, 게다가 해가 지지 않으니 빛에 지친 눈이 더 피곤한 것 같다. 23일 새벽 깨보니 눈에 핏발이 서있다. 게다가 사진까지 잘 찍어보겠다고 이리저리 신경쓰고, 녹다운이다. 카메라를 좀 더 좋은 것으로 장만해오지 못한 게 후회가 되긴 하지만 사진까지 더 신경쓰다가는 정말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여행이 몸에 밴 듯하다. 관광하고 옮겨다니기에 바빠 날짜 가는 것도 몰랐는데 서울을 떠나온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이젠 숙소가 불편한 것도 모르겠고 여기가 먼 타향 같다는 기분도 별로 들지 않는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