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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24)] 씩씩한 미녀 “루돌프는 암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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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24)] 씩씩한 미녀 “루돌프는 암컷”

6월28일, 트롬쇠 대학 박물관

6월28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이마 정가운데는 알타에서 물린 모기자국이 부풀어 혹처럼 나있고 컨디션이 안좋을 시기도 왔고 초콜릿을 배가 고플 때마다 먹어대서인지 코옆에는 뾰루지가 창궐했다.

오락가락 급변하는 노르웨이 날씨처럼 내 기분도 널뛰듯 한다. 집을 떠나온지 이십여일이 넘었다. 타국에서의 끊임없는 이동이 좀 염증이 날 때도 됐다. 외로움을 잘 안탄다고 생각했었는데, 따뜻한 미소를 지닌 이들을 만나곤 하지만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너무 멀리왔다는 걸 절감한다. 그리고 춥다. 따뜻한 남쪽나라가 그립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트롬쇠의 차가운 첫 인상 때문일까, 별로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다. 호텔방에 처박혀 원고를 쓰다가, 여기까지 와서 원고부담에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청바지나 살까 하고 나섰다. 비싼 옷은 아니더라도 홍콩에서 ‘공수’해온 아끼던 청바지라 한국에서도 한번 기워서 입고 다녔는데, 왼쪽 엉덩이 밑부분이 완전히 찢어졌다. 내복을 받쳐입고 새옷 사입고 바로 버리리라하고 나섰는데, 원 이건 허리부분이 배를 덥는데다가 초슬림형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키가 크지 않아도 다리들이 쫙 곧긴했다. 나는 도저히 못입을 것 같은데 몸매들이 좋으면 저렇게 타이트해도 다 소화가 되나보다.

금발에 푸른 눈, 큰 키에 늘씬한 몸매의 북구 스타일 미남미녀는 어쩌다가나 볼 수 있다. 호텔 리셉션이나 외곽 주거지역에나 가야 있다. 다 예쁜 얼굴도 아니고, 심술궂어 보이는 인상도 많다. 슈퍼모델처럼 보이는 마네킹같은 외모를 가진 이들은 10대들인데 이때가 미모의 절정이 아닌가 싶다. 북쪽 지역인지라 사미족, 그들의 피가 섞인 이도 많은데 확실히 동양적이다.

청소부나 웨이트리스도 다들 난민 출신들이 많은듯 싶다.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감하고 쾌활하다. 아침을 먹으러 가 반갑게 인사를 하길래 얘기를 나누게된 활달한 웨이트리스는 보스니아에서 왔다고 한다. 아마도 영어를 잘하는 외국 출신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교육수준이 높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민을 거의 받지 않는 이 나라에는 내전이나 정치적 분쟁 등을 피해 온 난민이나 망명객들은 많이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들은 시민권을 가질 때까지 거주의 자유가 없다. 배치해주는 지역에 가서 살아야한다.

중심거리는 다양한 인종들이 점령하고 있고 내가 백인 종족들을 잘 구별하지 못해서 그렇지 관광객이 다수일 것이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애나 흑인 남자애를 입양해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이고, 골목골목 종이컵을 들고 구걸 다니는 짙은 피부의 사람들도 흔하다. 이들은 관광 한철을 노리고 온 집시들인 듯싶다.
◇수선비를 받지 않은 중동인 수선공

노르웨이의 다른 대도시를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여기만 해도 북극권의 ‘촌’인지, 본래 그렇다고 듣긴했는데 나름 중심가 쇼핑거리라는데 비싼 브랜드는 하나도 없다. 미국산 리바이스만 가격이 좀 비쌌고, 현지 제품들의 가격들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스웨덴 브랜드 H&M이 보였는데, 다 그 정도 가격. 베네통, 베네통 내 시슬리, 일본의 무지 정도만 내가 아는 브랜드다. 세일기간이라 3만~4만원이면 한벌 사입을 수도 있는데 도저히 내 스타일을 찾을 수가 없어서 트롬쇠에 머무는 동안 바지를 수선해입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물어봐 찾아간 곳은 맞춤 양복점. 수선은 8월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해서 다른데를 좀 알려 달라했더니 퍼스펙티베트 박물관(Perspektivet Museum) 앞의 트롬쇠 스케데렌(Tromsø Skredderen)이라는 수선집을 알려준다. 중년의 중동인 남자가 재봉틀 앞에 앉아있다. 수선가격을 물어보니 무려 400크로네(약 8만원) 그냥 하나 새로 사는게 더 싸겠다.

쿠웨이트에서 온지 15년 됐다는 이 남자는 노르웨이는 모든게 무척 비싸다면서 천을 덧대 박음질하는 건 손이 많이 간다고 하면서 재봉틀로 몇 번 박아주겠다고만 한다. 내가 그냥 하나 사는게 더 싸겠다며 손을 내저으니,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나는 한국인을 좋아하고, 너는 관광객이기 때문에 내가 그냥 무료로 해줄게. 하지만 얼마 오래가지 않을 거야. 속에 뭘 받쳐입어야지 곧 찢어질걸” 한다.

고마워서 가지고 다니던 한국에서 가져온 관광기념품 복주머니에 1000원짜리 한장을 넣어서 줬다. 돈은 극구 안받겠다는 걸 1 달러도 안되는 돈이니 부담갖지 말고 기념으로 가지라고 했다. 이 주머니는 어떤 때 쓰는 것이냐고 해서 “한국에선 설날에 아이들이 어른에게 큰절하면, 이렇게 복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거야”라고 얘기해줬다.


◇루돌프가 여자! 금발미녀 이야기

다음편을 통해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트롬쇠에서 정말 못당할 꼴을 많이 당했다. 물론 개인차가 크고, 여기서도 밝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세계 최고의 불친절 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대도시처럼 아예 프로페셔널한 이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시골처럼 인심이 좋은 것도 아닌지라 더 그런 것 같다.

트롬쇠에는 6월30일 열리는 백야마라톤을 취재하기 위해서 왔는데, 사무소가 시청건물에 있다고 해서 시청 리셉션으로 갔다. 이 대회는 시와 연계해서 도로를 막고 벌이는 나름 국제적인 대회다. 경주 감독 닐스 I 해타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사무소는 이곳에 없다며 직접 전화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좀 큰 소리를 냈다. “난 한국에서 백야마라톤 취재하러 여기까지 와서 그를 찾는 거고, 지금 로밍폰 밖에 없는데 내가 국제전화까지 해야겠니? 전화 한번 못해줘?” 하니 전화를 걸어준다. 웬 여자를 바꿔주는데 “사무소는 길 건너편에 있는데 내일 정오에 시청으로 옮겨가니, 그때 와” 한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고, 화도 좀 난다.

트롬쇠에 와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계속 지쳐간다. 좀 순수하면서도 스마트하면서도 재치있고 지적인 대화를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럴땐 대학 캠퍼스가 최고다. 트롬쇠 여름 행사안내를 보니 6월15일~9월15일 매일 낮 12시~오후 4시에 트롬쇠 대학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무료로 뗏장을 올린 사미족 오두막에서 화롯불을 피워놓고 무료로 커피를 주는 행사가 있다.

오후 3시가 넘어선 시각, 37번 버스가 중심가에서 그곳으로 가는데 아슬아슬하게 한 대 놓쳤다. 다음 버스는 한 30분이 지나서야 왔다. 여기는 모든 게 여유롭게 돌아간다. 마음이 급해져 버스에 내려 뛰어가니 3시50분이 넘어가있다. 다행히 불을 지피고 있는 금발의 건강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한껏 여유를 부려주는 덕분에 한참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내가 무어 하나라도 질문을 할라치면 그녀는 기대이상의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늘어놨다.

트롬쇠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베로니카는 밀리터리룩 바지에 노르웨이지언 패턴이 새겨진 스웨터를 입고 방문객 접대를 했다. “카라쇼크에 있는 사프미파크에 가니 거기서는 아예 사미족 전통의상을 입고 있더라”며 “오늘도 독일 등지를 비롯한 터키 관광객까지 다녀갔는데, 어린아이들이나 입는 스웨터지만 노르웨이식 스웨터를 입고 있노라”며 쑥스러워했다.

노르웨이인들은 추위에 강한줄 알았더니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며 나름 여름인데도 두꺼운 옷들을 입고 있더라고 하니 자신은 베르겐 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남쪽 지방 출신이라며, 이곳이 정말 춥다는데 동의했다. “3주 전인 5월에도 눈이 왔고 몇년 전에는 6월중순에 눈이 온 적도 있다”며 “처음 여기왔을 때 영상 10도도 안되는데 미니스커트들을 입고 다녀서 깜짝 놀랐다”면서.

이 오두막은 1970년대부터 지어놓고 외부에 공개를 하는데 본래 입구는 열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훨씬 작고, 연기가 빠져 나가도록 해놓은 천장 구멍은 나무문을 달아 비가 올 때는 닫아놓을 수 있게 해놨다며 직접 쇠꼬챙이로 닫아 보여주기도 했다. 매트리스처럼 완충작용을 하기 위해 바닥에 깔려있는 나뭇가지들은 매년 갈아주며, 순록 가죽 중 귀처럼 보이는 것이 달려있는 것은 본래 다리 부분이라고도 설명해줬다.

순록뿔을 집 외벽에 걸어놓는 것은 자기가 얼마나 큰 놈을 잡았는지 자랑하는 거라는 얘기도 재밌었다. 1년마다 뿔의 가지가 하나씩 자란다는 것도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됐다. 심지어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가 여자라는 것도! “그거 아니, 루돌프는 뿔이 없어. 그건 암컷이라는 뜻이야. 어린 새끼라도 수컷은 뿔 자국이 있거든.” 하하.

사진을 찍으려 하니까 “피해줄까” 한다. 그래서 “난 블론드 미녀가 있는게 더 좋아 포즈 좀 잡아줘” 하니 쉽게 사진을 찍으라고 허락해준다. 관광객들이 오면 매번 포즈를 잡아준다면서. 오두막 바깥에 좀 서보라고 하니 씩씩한 사내아이처럼 뻣뻣한 차렷자세를 취한다. 좀 예쁘게 포즈좀 취해봐, 하려다가 이게 웬 ‘성차별적’ 발언인가 싶어 입을 닫았다. 역시나 나의 고정관념을 탓하면서.


◇사미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남자 가이드

트롬쇠 박물관으로 옮겨갔는데 전시물은 간단하지만 굉장히 학문적으로 명료하게 정리가 잘돼있어 이해가 쉬운 장점이 있다. 멀찍이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동양계 남자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키가 작고 얼굴 생김새를 보니 전형적인 일본인이다. “난 한국서 왔는데, 넌 일본인이 분명하네” 했더니 “트롬쇠 대학에서 사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이 박물관에서 동양계 관람객이 오면 안내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한다.

그에게 인터뷰를 좀 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오후 5시30분에 돌아오겠다고 한다. 같은 극동아시아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왠지 반갑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해외에 나가면 아무래도 정서적 동질감이 큰 일본인들과 주로 어울리게 된다. 해외 파견 나가면 일본 특파원들과 정보공유도 하고 도움도 받게 된다는 선배들의 얘기도 생각났다.

7년 전 이곳 트롬쇠대학으로 유학와 이것저것 공부했다는 그는 현재는 사미언어에 흥미를 가지고 이를 공부하고 있단다. (나중에 한국교포로부터 들은 바로는 그는 이곳에 와서 처음엔 음악을 공부하고 길거리 연주도 하곤 했단다) 상당히 자유인인 듯했다. “너 참 부러운 삶을 산다. 부자인가 보다” 했더니 웃음으로 부인한다.

놀랍게 그는 한글로 자기 이름을 써서 보여줬다, ‘쿠라게’. 이곳에서 쓰는 자기 닉네임이라면서 사진을 찍는 것도 나이를 알려주는 것도 거절했다. 뜻은 모르지만 한글을 읽을 줄은 안단다. 그의 관심도 놀라웠지만 한글이 참 과학적이라는 글자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발음에 따른 구강구조 모양에 바탕을 둔 한글을 두어시간이면 익히는 외국인도 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국에도 안가본 곳이 없었다. 경주부터 시작해 청학동, 하회마을 등 한국 지명들이 줄줄이 나온다. 꽤나 떠돌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왔나보다.

이 먼 트롬쇠까지 온 이유를 물으니 “자연에 반했고 너도 서울의 삶을 겪어봤다시피, 그와 같은 일본의 빡빡한 삶이 싫어서 이곳의 여유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 짧은 순간 우리에게는 깊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자연이 좋아도 이곳의 겨울은 너무 춥지 않느냐고 하니, 한국의 겨울보다 전혀 춥지 않다고 한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바지만, 시베리아 한랭전선이 내려오는 한국의 겨울은 진짜 춥다.

‘한이 서린다’, ‘한이 맺힌다’는 건 이런 추위에서나 가능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추위! 이곳에서 만난 한국동포도 역시 같은 얘기를 했다. 헬싱키대에서 만났던 한국학 박사과정의 영국인도 헬싱키의 겨울이 한국보다 안춥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들 지역에서는 흑야가 한동안 지속되는데도 불구하고, 대체 한국의 겨울은 얼마나 추운건지.

쿠라게는 트롬쇠에는 필리핀, 홍콩, 베트남, 타이완 등 각국에서 온 아시아인들이 다 있다며 한국인 2명의 정보를 알려줬다. 텔레메디신을 공부하고 있다는 L씨와 오르간을 전공한다는 문희주씨. 텔레메디신이란 인구밀도가 떨어지는 노르웨이에서 전화 등의 상담을 통해 지속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원격진료시스템을 일컫는 것이라고.

나중에 이곳 한인으로부터 독일에서 공부한 문희주씨가 이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오르가니스트로 방송과 신문에도 종종 등장한다는 것을 들었다. 쿠라게가 찾아가보라며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나무로 만든 현존 유일 성당으로 유명한 트롬쇠 성당에서 오후마다 연주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관광안내책에도 나와있는 여름콘서트였나보다. 너무 늦게 알게돼서 결국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다.

즐거운 대화 끝이었지만 내 마음에 파고든 공허감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내복과 오리털파카까지 챙겨입은 쌀쌀한 날씨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트롬쇠는 지난 겨울 내린 눈이 여전히 흰 머리를 드러내고 있는 설산들로 쭉 둘러싸여 있다. 그때문에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트롬쇠 박물관 인근에 있는 포케파켄(Folkeparken) 야외박물관에 들러봤다. 6월24일~8월19일 일요일 오후에만 잠깐 공개되는 옛 농가다. 물론 이런 농가 하나 세워놓고 잘 보이는 안내판이 있을 리 만무다. 그저 외부만 좀 구경하고 멀리 보이는 선착장 쪽으로 가봤다. 산그림자가 바다에 비춰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아래 멀리 타월 하나만 감은 젊은 남자와 젊은 여인이 보인다. 이 추운날씨에 저기서 수영이라도 했나. 가서 그들의 무드를 방해하며 물어볼 것도 아니라서 버스 정류소를 찾아 나왔다.

정류장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어 사람들이 종종 차에서 내려서 숲쪽으로 들어간다. 마침 키작고 못생긴 동남아 중년 여인네 하나가 차에서 내리길래 “여긴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니 “아이 돈 노”하고는 가버린다. 영어를 못한다는 뜻일까, 정말 모른다는 뜻일까, 아니면 나랑 얘기하기 싫다는 뜻일까. 기분이 또 상한다.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동남아 여자애에게도 느낀 건데 이곳 동남아인 혹은 남방계 중국인 같이 생긴 여자들은 동아시아인들을 확실히 싫어하는 것 같다. 동아시아 여인들이 더 키크고 피부가 밝고 인물이 좋아서 콤플렉스 때문에 그럴거라고 우겨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고 쌀쌀한 날씨는 뚫고 숙소로 돌아왔다. 외롭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