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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 前대통령 "밑반찬 5개만 밥상에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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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 前대통령 "밑반찬 5개만 밥상에 올려라"

“청와대 조리사는 국가관‧사명감이 더 중요”

"난 현역 최고령 한식 조리사에 도전한다"

“조리사 빼고 한식 세계화 가능한가” 정부에 뼈 있는 한마디 충고




■ 세 대통령 모신 청와대 조리사-손 성 실 한국음식연구위원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등 세 분의 대통령을 모시며 10여 년간 청와대 밥상을 책임진 손성실 한국음식연구위원(67). 칠순을 앞에 둔 손 위원은 ‘청와대 조리사’를 지냈다는 강한 자부심으로 영원한 현역으로서 한식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60년대 말부터 80년 초까지 청와대 밥상의 기초를 다진 그는 당시에는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기라 요즘의 풍족한 시대와는 환경이 달랐다고 회고한다. 비록 청와대 밥상이라 할지라도 반찬 5가지 이상을 상 위에 올릴 수 없었고, 쌀과 보리를 섞어 밥을 짓는 혼분식을 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인간미가 넘쳤던 시절이라며 인터뷰 도중 대통령들과의 과거 추억 속으로 잠기곤 했다. <편집자 주>


-‘대통령의 요리사’로서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등 세 분을 모셨는데요.

“60년대 말부터 80년 초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지요. 주로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많이 모셨고, 최규하 대통령은 8개월, 전두환 대통령은 잠시 모셨습니다. 전 청와대 경호실에서부터 시작을 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오래 근무한 셈이지요. 당시는 식당 시설이 열악한데다가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이라 요즘과 같은 식기도 없었고, 식단도 단출했어요. 전 국민에게 혼분식(混粉食)을 장려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가끔 식당에 직접 내려오셔서 짬밥통을 열어보며 청와대에서 모범적으로 혼분식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기도 했어요. 그분은 그 정도로 매사에 철두철미했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대통령의 조리사’는 뭔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대통령의 조리사’가 되었는지요?

“특별 추천을 받거나 스카우트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됩니다. 대통령의 조리사는 음식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국가기밀이 모이는 청와대의 특성상 조리 실력이외에도 국가관이나 사명감이 투철해야 하고, 자기희생 정신이 있어야 하지요. 외부와 일절 단절되기 때문에 혼자 돋보이기보다는 은둔자처럼 잡음 없이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청와대에서 요리하셨나요?

“대통령께서 주로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식단을 짰습니다. 국내외에서 진상품이 올라오긴 하지만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영양사나 주치의와 상의하여 일주일 전에 식단을 준비하지요. 특히 박 대통령께서는 지방 출장이나 기자회견 등이 잦으셔서 아침 6시에 아침을 드셨어요. 참으로 부지런하신 분으로 기억됩니다. 일반인은 청와대 밥상하면 대부분 화려한 반찬을 떠올리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시골생활을 오래하신 탓인지 박 대통령의 경우 된장찌개, 비듬나물, 보리밥, 쌈 등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민적인 식단을 좋아하셨어요. 별미로 드신 음식이라고 해봐야 우거지갈비탕이나 곰탕 정도이지요. 학자답게 과묵한 편이셨던 최규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생활하지 않으시고 자택에서 출퇴근을 하신 탓에 주로 점심 때 콩자반, 국수, 꽁치구이를 드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두환 대통령은 특히 고기를 즐겨 드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역대 대통령 세 분과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박 대통령을 오래 모시다 보니까 에피소드도 그 분과 관련된 게 많아요. 7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됩니다. 대통령께서 상추쌈을 드시는데, 달팽이 한 마리가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거예요. 음식을 조사하는 관리인 검식관이 저를 불러 ‘어떻게 음식을 관리하고 요리하길래 달팽이가 나오느냐’며 혼쭐을 내셨지요. 이 때 대통령께서 허허 웃으시며 친환경 유기농산물이니 달팽이가 나오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검식관을 나무라더군요. 이게 그 유명한 ‘달팽이 사건’입니다.”

손 조리장은 박 대통령과의 추억을 다시 꺼냈다. “그분은 막걸리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대로 솔향이 나는 시바스 리갈(일명 ‘박통술’로 불림)을 좋아하셨지요. 막걸리를 드시면서 ‘우리 같이 한 잔 할래, 나 보신탕(1년에 한 번 정도 드셨다고 한다) 먹고 싶다. 끓여줄 수 있느냐’고 하셨지요. 특히 막걸리를 드실 때에는 사이다와 섞어서 톡 쏘는 맛을 즐기셨어요. 뿐만 아니라 막걸리를 그릇에 따라 드리면 바가지를 가져오라고 해서 바가지채로 드시면서 ‘이게 술 마시는 맛이다’고 하셨지요.”

▲ 사진=홍정수 기자
-청와대의 밥상이 궁금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서민들이 먹는 밥상과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오늘날 중산층에서 식사하는 밥상이 예전의 청와대 밥상 보다 더 화려하다고 할 수 있지요. 혼분식을 권장할 정도로 식량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에서조차 잡곡을 섞어 밥상을 차렸고, 그 덕분에 국가차원에서 보릿고개를 빨리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주일에 세 번은 잡곡, 세 번은 국수가 식단으로 차려졌는데,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갈 때도 ‘대통령의 조리사’로서 동행하시나요?

“저희 조리사는 비공식 수행원으로 동행합니다. 국내에서 식재료를 공수하기도 하고, 순방국의 현지에서 구입해 요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후 10일간 비상사태였어요. 저희 조리사들도 바짝 긴장한 채 장례를 치렀지요. 그때 수고했다고 대통령께서 하사하신 선물이 동태 한 짝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동태 한 짝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증표였어요.”

-가장 잘 하시는 요리는?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께 거의 매일 해드렸던 된장찌개와 된장국이 제가 가장 잘하는 요리입니다. 그 다음으로 자신 있는 게 일명 ‘청와대 곰탕’으로 불리는 곰탕이지요. 된장찌개는 잘 삭은 된장(공장에서 나온 된장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이 가장 중요하고, 양파, 풋고추, 감자, 두부, 냉이 등의 야채 그리고 쌀뜨물과 멸치로 뺀 육수가 맛을 내는 생명이지요.”

-지금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요?

“아직도 칼을 잡고 요리를 하고 있지요. 53년째 한식조리를 하고 있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제야 음식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조리실에서 한식을 만들며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 게 제 꿈입니다. 그리고 틈틈이 한국음식조리인연합회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한편, ‘한식의 날(10월 10일)’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들은 한식을 매일 먹다보니까 발효음식으로서 지상 최고의 음식인 한식에 관심이 없어요. 한식의 날 제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한식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제가 할 수 있는 한식 요리로 매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 개인적인 계획보다는 한식의 다변화와 체계화를 통해 세계화를 시키는 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한식재단은 저희 조리사를 배제한 채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조리사가 없는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냐는 말이지요. 이처럼 한식은 너무나 푸대접을 받고 있어요. 음식 명장으로 선정된 사람만 봐도 양식은 5명, 일식은 2명이나 있는데, 한식은 명장이 한 명도 없어요. 국내에서 한식을 이렇게 푸대접하면서 해외로 나가 한식을 세계화 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어요.”

손 조리장의 지적대로 한식의 하부구조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류호텔일수록 양식당, 일식당, 중식당은 있어도 한식당은 없다. 한식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경제 원리에 따른 것으로, 중요한 건 우리 음식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외형만 화려하게 꾸미며 내세우는 한식의 세계화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한식이 세계인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전략으로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