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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만찬을…'남극 팥빙수' 드셔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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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만찬을…'남극 팥빙수' 드셔보실래요?"

수경재배 한 신선한 야채 곁들인 돼지 삼겹살


된장찌개, 자반고등어 등 ‘가정식’ 백반이 최고


남극장보고기지 2014년 완성되면 다시 도전할 터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요리사 강경갑 조리장

서울에서 1만7240㎞ 떨어진 남극세종과학기지(남위 62도 13분, 서경 58도 47분).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 다시 산티아고와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세종기지에 닿을 수 있다. 꼬박 하루 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하는 먼 거리다. 그 동안 간간이 세종과학기지의 생활이 소개되기는 했으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이 세종기지에서 대원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까, 하는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글로벌이코노믹]는 지난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23차 세종기지 월동대원으로 참가해, 대원 18명의 식사를 담당한 강경갑(38) 조리장을 특별 인터뷰했다. 남극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처럼 향수가 느껴진다는 강 조리장은 오는 2014년 완공될 또 하나의 극지연구소인 남극장보고과학기지의 대원으로 참가하고 싶다는 포부와 함께 한식세계화의 꿈을 밝혔다. <편집자 주>



-남극 세종과학기지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세종과학기지는 남극 킹조지 섬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입니다. 우리나라는 1988년 2월 17일에 기지를 준공하여 극지환경과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하고 있지요. 남극 진입의 관문으로 불리는 킹조지 섬은 남극대륙에 비해 접근하기 쉽고 비교적 기후조건이 좋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을 포함해 아르헨티나, 러시아, 칠레, 폴란드, 브라질, 우루과이, 중국, 페루, 미국, 독일, 체코 등 12개국의 13개 상주기지가 건설돼 있어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에는 거의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계(11월~3월) 때 주로 연구를 하고, 동계에는 하계 연구를 위한 전초기지로서 세종기지의 지킴이 역할을 합니다. 연구대원들은 주로 저층대기의 공기와 땅속 지질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고층대기의 천문을 관측하고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일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편한 삶을 추구합니다. 물론 극지를 탐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극지의 삶을 택한 동기가 있습니까?

“96년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한 저는 98년에 같은 호텔에 근무하던 선배님들이 이야기하는 세종기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세종기지는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인데, 저와 청심월드에서 같이 근무했던 백영식 실장님이 제4차 월동연구대로 다녀오셔서 저에게 적극 추천해 주셨어요. 당시에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다가 남극이라는 호기심에 자극을 받아 과감하게 극지로 떠나기로 결심을 했지요. 알고 보면 남극 생활이 다람쥐 쳇 바퀴 돌 듯 단순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세종기지를 1년 동안 지키고 왔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세종기지에 가기 전 어떤 훈련을 받았나요?

“세종기지 주변에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컨대 크레바스에 빠져 얼음에 갇힐 수도 있는데, 이러한 사고가 났을 경우 탈출 요령이라든가, 추운 곳에서 견디는 법 등 생존전문훈련을 산악전문가로부터 극기훈련을 함께 받으며 준비를 했어요.”

-세종기지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월동대원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저는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조리담당이었어요. 날씨가 너무 추운 관계로 고단백 육류 요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한국요리를 대원들에게 해주었습니다.”

-눈이나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요리재료를 구하긴 힘들지 않았나요?

“세종기지에 들어갈 때 기본적으로 1년 동안 사용할 생활물품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저는 조리장으로서 한국에서 단체급식의 메뉴를 짜듯이 다양한 메뉴를 만듭니다. 가까운 칠레에서 가끔 야채를 공급받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냉동식품으로 식단을 차릴 수밖에 없어요. 현지에서 환경문제로 바이러스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땅에 채소를 심는 것이 남극협약에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수경재배는 환경오염에 저촉되지 않아 허락하고 있는데, 농업진흥청에서 세종기지에 식물공장을 지어 준 덕분에 상추 등의 신선한 야채를 약간씩 맛볼 수 있었어요. 푸른 채소는 남극에서 흔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귀족음식입니다.”

-대원들은 주로 어떤 음식을 먹나요?

“한국에서 먹듯이 돼지 삼겹살과 두루치기, 자반고등어,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을 먹습니다. 물론 대원들이 생일을 맞게 되면 조리장으로서 나름대로 모든 재료를 다 동원해 시루떡이나 약과를 이용한 케이크와 푸짐한(?) 생일상을 차려줍니다. 대원들이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서러운데, 생일날 서운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해야지요.”

-대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대원들은 돼지 삼겹살을 가장 좋아했어요. 거기에 귀한 푸른 채소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이고요. 가정식 백반처럼 엄마가 해주셨던 것과 같은 한국 음식들을 특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특별음식을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한두 번 먹고 나면 대원들 대부분은 가정에서 먹는 음식으로 해달라고 주문해요. 가끔씩 스테이크를 굽기도 하고, 빵을 찌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는 맛이 달라요. 무엇보다 만년설로 만든 ‘남극표’ 팥빙수는 한국에서 먹는 팥빙수와는 맛이 다르지만, 남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맛입니다. 현장 분위기라든가, 만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신선함, 그리고 얼음 속에 응축된 공기방울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맛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하얀 눈과 얼음이 덮인 세종기지에서 팥빙수를 먹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입안에 군침이 돌고 너무나 낭만적이지 않아요?”

-1년간의 남극 생활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사람이 약간 철학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단조롭고 따분한 생활은 역설적으로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지요. 우리가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가면 처음에는 무료하거나 멍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며칠 동안 시골에 있다가 도시로 돌아오면 무엇인가 수양하고 왔다는 느낌이 들지요. 남극 생활도 그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식자재가 한정되어 있고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까 서로 배려하는 문화를 알게 되고 남다른 동료의식을 갖게 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어떤 이는 국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면을 좋아하는 등 입맛도 제각각입니다. 남극처럼 제한되고 극한 상황이 되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나지요. 이런 점이 제게는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제부터 요리에 취미를 가지셨는지요?


“96년부터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로 요리를 했는데, 요리를 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제가 한 요리를 남에게 대접하는 게 너무나 좋았어요. 처음엔 양식으로 시작했지만, 요리를 해나가면서 한식의 매력에 푹 빠져 지금은 궁중요리에 해당하는 한정식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식과 한정식은 다른가요?


“한정식이 한식에 포함되긴 하지만 한정식은 주로 궁중요리를 말하고, 한식은 곰탕, 갈비, 생선 등 일품요리를 말합니다. 저는 다른 요리보다도 갈비찜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요. 코스요리인 한정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계절메뉴를 고객에게 대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요리는 예술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


“우리 음식과 서양음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식이 발효음식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비롯한 장(醬) 문화와 김치로 대표되는 발효음식은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스탄에서 한식을 선보였는데, K-pop을 중심으로 한 한류 덕분인지 반응이 좋았습니다. 저는 이런 훌륭한 한식을 보다 과학화함으로써 외국에 나가 힘을 한번 보여주고 싶어요. 무턱대고 한식의 세계화를 주장하기 보다는 한식을 치밀하게 과학화하여 세계화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과학화된 한식을 가지고 외국인에게 한식의 우수성을 직접 강의하는 일이 제가 나중에 가장 하고 싶은 일입니다.”


강 조리장은 미국의 유명요리학교에서 김치를 가르치고 있는 강사가 중국인이라는데 놀랐다고 한다. 한국인 요리사는 언어가 부족해서 요리학교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다른 나라 사람이 한식을 강의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영어로 한식을 강의하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 그는 최근 박사과정에 도전하고 있다.


-요리 철학이 궁금합니다.


“요리 철학이라기보다는 소박한 꿈이 있어요.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요리를 해서 고객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고객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먹고난 후 ‘엄마처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네’, ‘집에서 먹던 식같네’라고 한다면 저는 대만족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오는 2014년까지 남극장보고기지가 만들어집니다. 세종기지를 가보았으니 장보고기지가 완성되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세종기지를 다녀온 지 1년이 흘렀는데 가끔 향수에 젖곤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덮을 듯한 하얀 눈과 얼음…. 자연의 위대함고 경이로움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 강경갑의 갈비찜 레시피


갈비 1㎏, 쑥조청 100g, 간장 70g, 후추 20g, 흑설탕 20g, 백설탕 10g, 소주 15g, 배 30g, 사과 30g, 양파 20g, 대파 20g, 무 30g, 생강 5g, 마늘 30g, 파인애플 20g, 단호박 30g, 산더덕 10g, 전복 5마리

■ 강경갑의 갈비찜 조리법


1. 갈비를 끊는 물에 생강과 함께 살짝 데쳐 내고 기름기를 제거 해둔다.

2. 배, 사과, 양파, 대파, 무, 생강, 마늘, 파인애플, 산더덕(5g)을 간장에 갈아둔다.

3. 단호박은 씨를 빼고 쪄둔다.

4. 전복도 깨끗이 씻어서 살짝 쪄 둔다.

5. 불량의 물을 냄비에 끊이다가 손질한 고기를 놓고 2의 재료와 함께 녹각, 흑설탕, 백설탕, 소주, 쑥조청, 참기름, 후추를 넣고 15분 정도 센 불에 끊이다가 중불에서 50분 정도 은은하게 끊인다.

6. 불을 꺼기 5분 전에 찐 단호박과 전복을 넣고 같이 끊여준다.

7. 용기에 담고 은행, 황백 지단 같은 우리 고유의 고명으로 고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