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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타고 한시 짓는 우리 시대의 풍류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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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타고 한시 짓는 우리 시대의 풍류객

바이크는 대자연과의 스킨십

비바람 몰아쳐도 나의 질주 본능은 계속

선비가 말타듯 바이크로 낭만 만끽




한문산문 ‘흡주자금성전’ 최근 발표로 한문학사 100년 연장에 큰 보람




▲ 바이크 타는 고전문학자 김창룡 교수(한성대)는 “대자연과 스킨십을 하며 바이크와 일체가 되어 달리는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며 “바이크를 타고 출퇴근하는 동안 일상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홍정수 기자/jshong204@g-enews.com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我愛騎摩托(바이크 타기만 오로지 한 나를)/衆人笑戱謔(사람들은 웃으면서 재밌어하네)/必警敧危多(여지없이 위태롭다 경계하지만)/未解馬上樂(마상의 유유자적 알 리는 없네)”

‘바이크 타는 고전문학자’로 유명한 김창룡 한성대 교수(58‧학술정보관장)가 지은 한시 「如士之騎馬(여사지기마․선비가 말 타듯)」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선비들이 말을 타듯 바이크를 타고 15년째 출퇴근을 하고 있어 화제다. 서울 도심의 극심한 교통 체증에도 나 홀로 하늘을 날 듯 달리며 시간을 줄이고(축시성), 조그마한 공간만 있어도 주차가 가능하고(접근성), 대자연과 스킨십을 하고(친화성),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달리 톡톡 튀어 보여(전시성) 자신과 학교를 홍보하는데 만점이라고 김 교수는 자랑한다.

그동안 세인들에게 바이크 타는 고전문학자로 유명세를 탔던 그는 또한번 대형 사고(?)를 쳤다. 바로 고려시대 서하 임춘의 「국순전」에서부터 연민 이가원의 「화왕전」에 이르기까지 약 700여 년에 이르는 가전소설(假傳小說) 역사의 명맥를 이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발표한 가전소설 「흡주자금성전」은 1933년 이가원의 「화왕전」 이후 명맥이 끊어진 것으로 평가되던 가전소설의 전통을 이었다는 점에서 한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글로벌이코노믹는 마니아 수준의 바이크 사랑과 선비의 풍류를 되살려낸 김창룡 교수를 만나 우리 시대의 멋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주>



-최근 가전체 소설의 명맥을 잇는 ‘흡주자금성전(翕州子金星傳)’을 발표하셨는데….


“우리 시대 서단에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넘치는 문인화의 원로 거장으로 일사(一史) 구자무(具滋武) 선생이 계세요. 선생이 애장한 여러 벼루 명품 중에 짚신 모양의 흡주연 벼루가 하나 있어요. 일사 선생이 여기에다 연민 이가원, 월전 장우성, 석헌 임재우, 마하 선주선 등 당대 최고의 학자와 서화 대가들의 구기(口氣)와 수적(手迹) 등을 집중시키고 선생 스스로도 회심의 명화를 하나 남겼지요. 각별한 스토리텔링이 되겠다 싶어 그 점에 착안해 지은 것이 ‘흡주자금성전’입니다. 사실 고려시대에 탄생한 가전소설은 조선시대 500년을 거치면서 상당수의 작품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이 끊어진 상태였어요. 지필묵연(紙筆墨硯)을 소재로 선조들의 풍류를 소개하다가 한문학 전공자인 내가 시도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라는 만용에 용기를 내어 일사(一史) 선생이 아끼는 흡주연 벼루를 포인트 잡아서 썼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진장(珍藏) 연보(硯譜) 중에 흡주연 이형(履形)의 한 벼루를 주인공으로 삼고 일사가 이 벼루를 중국에서 구입하게 된 과정(1부), 한국에 들여와 학계와 서단으로부터 시화(詩畵) 작품을 얻어내는 과정(2부), 그리고 일사의 문방(작품활동 하는 방)에서 지필묵이 사람처럼 서로 담론을 나누는 형태(3부)로 꾸몄어요. 말하자면 중국에서 주인공 금성(金星)이 일사 선생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당대 명가들과의 묵연(墨緣), 그리고 문방사우 간의 담화 등을 담아낸 것입니다.”

-그동안 가전소설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나요?


“한문으로 창작하는 일은 1933년 연민 이가원이 모란꽃을 의인화한 「화왕전」에서 중단되었지요. 연민이 열일곱 살 때 지은 이 가전소설 이후 단 한 작품도 나오지 않았어요. 물론 한시는 근근이 유지됐지만, 한문으로 된 산문은 끊어졌기 때문에, 이번 가전소설의 발표로 한문학사를 한 세기 더 연장한다는 의미도 있고, 제 자신이 그러한 영광된 일을 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조상과 소통하는 도구이기도 한 한문학이 왜 단절됐나요?


“한문학이 단절된 이유는 서구문명과 지나치게 영합한데다가 한글만이 우리의 소중한 문자라고 생각하는 편향적인 생각 때문이지요. 한문학은 기원전 17년 유리왕의 「황조가」가 시작인데, 2030년 동안 뿌리를 내려오면서 선조들의 사상과 감정이 담긴 내용을 갑자기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문화풍토 때문에 20세기에 급소외 되었습니다. 한글이 우리 글로서 중요하기도 하지만 한문학도 한글이 존재하는 것처럼 분명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문학자이어서가 아니라 선비의 풍류문화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한문학이 단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필묵연은 선비의 풍류와 밀접한 덕분에 일상생활이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천연기념물을 보호하듯 소중하게 다루어야 했습니다.”

김 교수는 가전문학의 소재가 너무나 다양하다고 말했다. 고양이, 말, 나비 등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김치의 일종인 동치미를 의인화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전소설은 고려말 서하 임춘의 「국순전」이 시초입니다. 8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유지되어 왔는데, 30년 동안 한문학에 천착해온 제가 왜 선조들처럼 창작이 안 되는가에 대한 도전정신에서 시작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한문학 비평이나 평론, 논문을 쓰는 수준일 뿐 창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흡주연금성전」의 창작은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바이크로 출퇴근을 하시는데, 바이크를 타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1998년부터 바이크를 타고 강남 반포의 집을 출발해 한강 다리를 거쳐 삼선동의 한성대를 출퇴근 하고 있어요. 바이크를 타게 된 계기는 출퇴근길에 살인적인 교통체증으로 남산 1호터널에서 승용차 안에서 1시간 30분동안 발이 묶인 적이 있어요. 집에 돌아온 후 너무나 화가 나서 펄펄 뛰니까 집사람이 바이크로 출퇴근하기를 권하는 거예요. 바이크는 ‘과부제조기’라는 별명이 있으니 집사람이 저에 대한 애정이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바이크를 타면서 신세계가 열렸어요. 삼선동에서 반포까지 30분이면 다 해결되니 이젠 제 무의식 속에서 바이크를 놓지를 못해요. 비바람이 불어도 바이크를 탈 정도로 마니아가 다 된 셈이지요. 올해로 15년째입니다.”

김 교수의 바이크는 흑마(黑馬)로 통하는 1800㏄ 골드윙이다. 중형 승용차 한 대 가격을 넘어서기 때문에 그는 대학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10년 간 갚았다고 한다.



-바이크의 어떤 점이 매력이 있어 빠져들었습니까?


“첫째는 시간을 확 줄여주는 축시성이 있어요. 교통체증과는 상관없이 바이크를 타면 시간을 반 내지 1/3로 줄일 수 있어요. 그 다음에는 접근성이 용이합니다. 어디를 가든 어렵지 않게 주차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요. 마지막으로 바이크에는 특화성이 있어요. 자동차는 최고급 자동차가 아니면 세인들이 주목을 하지 않는데, 바이크를 타면 누구나 주목을 합니다. 한성대와 바이크가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한완상 총장께서 계실 때 바이크에 대한 호감이 있어 학교홍보를 위해 바이크를 내세웠지요. 다른 대학에서 바이크를 이슈로 잡은 적이 없으니 홍보효과도 컸어요.”

-주말이면 바이크를 타고 어디로 나가나요?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인터넷 바이크 동호회 ‘반달곰라이더즈’를 이끌었어요. 인터넷으로 논문을 쓰면서 인터넷과 바이크를 연결하면 선전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단히 성공을 거두었지요. 회원만 300~400명에 이르렀고, 가평의 유명산 등으로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지금은 출퇴근만 하고 주말에 서울외곽으로 나들이하는 건 접었어요.”


-바이크를 타면서 변화된 일상이 있다면?



“몸이 괴로워도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면 그 사이에 고통을 잊는다는 게 제일 큰 변화이지요. 편두통을 앓다가도 바이크를 타고 학교로 오는 동안 잊게 되는 진통 효과가 있어요. 신선한 바람을 쐬고, 좋은 산소를 마시는 느낌이랄까요? 바이크는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교통체계가 바이크를 타는데 불편하지 않는가요?



“바이크는 건전한 문화활동인데, 몇몇 폭주족들로 인해 바이크는 난폭하고 위험하다는 이미지가 강해요. 그러다보니 바이크에 대한 인식이 나쁜 나머지 교통체계도 자동차 위주로 되어있을 뿐 바이크 라이더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요. 시간이 가면서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올바른 바이크 문화가 형성되고 사회도 그에 걸맞은 체제를 갖추어 주었으면 합니다.”


-바이크를 탈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동안 나만의 쾌감을 느껴요. 일정한 공간 안에 갇혀서 달리는 자동차는 승차감은 좋겠지만, 바이크는 대자연과의 스킨십을 통해 온몸을 전율케 합니다. 봄가을 바람이 제 몸을 간질이듯 한다면, 겨울의 찬바람은 살을 에는 듯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쾌감을 줍니다. 마치 자기자신과 싸우는 마라톤을 하는 느낌이지요. 특히 자동차가 교통체증에 걸려 꼼짝없이 갇혀있는 동안 혼자 뛰쳐나가는 쾌감은 바이크를 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같아요.”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십니까?



“옛 고구려인들이 남긴 문학들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요. 동명왕을 비롯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등을 원전과 함께 해설하고 연구하고 있지요. 백제의 열녀인 도미처 설화, 신라의 선덕여왕과 김유신 관련 이야기도 학생들과 공부하고 있고요. 이런 연구들을 보다 쉬운 글로 표현해 대중화하는 게 제 마지막 목표입니다.”


-교육자로서 걸어온 길과 철학이 궁금합니다.



“교육의 첫 단계는 교실이란 공간 안에서 문자 지식을 하나하나 챙겨 전달하고 받고 하는 방식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겠지만 처음 가르치는 사람이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학문하는 자세와 삶의 처신을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름 아니라 공부에서 학문의 단계로 가는 길이지요. ‘일자사(一字師)라는 말이 있어요. 잘못 읽은 한 글자를 바로 잡아주는 스승이라는 말인데, 정곡을 짚어주고 핵심을 깨우쳐주는 가르침 쪽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제가 반평생 넘게 사색해 온 고전 명작의 세계를 혼자서만 독락(獨樂)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일반인 그리고 서예계의 많은 지인들과 공유하고픈 욕구를 품고 있어요. 앞으로 그 작업에 최선의 공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또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듯 외부로부터의 지식과 교양, 그리고 자기 삶의 기록 등으로 정신의 건강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상생활 하나하나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노정용 기자/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