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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꿈꾸던 ‘그 먼 나라’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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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꿈꾸던 ‘그 먼 나라’를 찾아서

[글로벌이코노믹=홍정수기자]

▲ 왕포마을./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미완의 여로 1 : 부안 변산〉 도입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그 일 번지를 놓고 강진과 부안을 여러 번 저울질하였다. 조용하고 조촐한 가운데 우리에게 무한한 마음의 평온을 안겨다주는 저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준 그 고마움의 뜻을 담은 일 번지의 영광을 그럴 수만 있다면 강진과 부안 모두에게 부여하고 싶었다.”

호남정맥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 우뚝 멈춰 선 변산, 그 산과 맞닿은 고요한 서해, 전나무 숲길이 깊은 그늘을 만드는 단정한 내소사, 울금바위를 병풍 삼아 아늑하게 들어앉은 개암사, 켜켜이 쌓인 해식 단애가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는 격포 채석강, 드넓은 곰소염전과 소박하고 평화로운 갯마을의 서정……. 지금도 부안의 자연은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곳엔 아름다운 자연이 낳은 시인, 신석정(1907~1974)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 석정문학관 전경./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석정을 ‘참여시의 반대편에서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시를 쓴 시문학파 멤버’ 정도로 알고 있었다면, 부안군 선은리에 지난해 건립된 신석정문학관부터 둘러보자. 2층 규모인 문학관 전시실에는 1939년 간행된 첫 번째 시집 《촛불》부터 2007년 탄생 100주년에 맞춰 출간된 유고 시집이자 여섯 번째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까지 석정 문학의 변모 과정을 알기 쉽게 전시해놓았을 뿐 아니라 귀중한 육필 원고와 평소 사용하던 가구, 필기구 등 유품을 한자리에 모아 시인의 삶과 문학을 보다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석정은 1924년 11월 조선일보에 첫 시 〈기우는 해〉를 발표한 이래 한 세기의 절반을 교육자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한 것은 1931년 《시문학》 3호(이자 마지막 호가 된)에 〈선물〉이라는 시를 게재하면서부터다. 이때 한용운, 이광수, 정지용, 김기림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그 해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해 선은리에 집을 짓고, 전주로 이사하기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청구원(靑丘園)’이라고 직접 명명한 이 집은 문학관 맞은편에 복원되었다. 첫 시집 《촛불》(1939)과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1947)가 이 집에서 탄생했다. 석정은 첫 시집을 내면서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름, 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나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집을 사랑했다고 한다. 첫 시집에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를 포함해 당시 석정의 나이와 같은 33편이 실렸다.

그 후 《문장》에 게재될 예정이던 시가 검열에 걸리고 《문장》이 강제 폐간되는 등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던 차에 친일 문학지 《국민문학》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자, 석정은 청탁서를 찢고 창씨개명도 끝까지 거부한 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절필을 선언한다. 이 시기에 쓴 시들은 1947년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통해 발표되었다.

▲ 석정의 방./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석정은 해방 이후 부안, 전주, 김제 등에서 교직에 몸담으며 시집 세 권을 더 냈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청구원 시대를 마감하고 전주로 이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 와중에 5·16군사정변과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해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취조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고혈압으로 쓰러진 지 7개월 만인 1974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석정의 묘소는 문학관에서 10~15분 거리인 행안면 역리에 위치한다. 관광 안내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아 문학관 관계자에게 물으니 내비게이터에 ‘용화사’를 찍고 가면 된단다.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도로변에 이정표가 있고, 묘소로 들어가는 마을 초입 벽에는 데뷔작 〈기우는 해〉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쓴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 시화가 있다.

신석정문학관에서 시작한 부안 문학 기행의 다음 목적지는 매창공원이다. 매창이 누구인가. 석정이 “박연폭포, 황진이, 서경덕이 송도삼절이라면 부안삼절은 직소폭포, 매창, 유희경”이라 했다는 그 기생이자 여류 시인 이매창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로 시작되는 이별가의 절창 〈이화우〉는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며 쓴 시로, 그 시비가 매창공원에 있다. 오랜 세월 깊은 우정을 나눈 허균이 매창의 죽음을 전해 듣고 쓴 애도의 시와 가람 이병기가 매창의 무덤을 찾아 읊었다는 〈매창뜸〉도 시비로 남아 있다.

▲ 채석강./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다음은 시인을 키워낸 부안의 자연을 만날 차례다. 30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고사포해수욕장이 보일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국도를 버리고 해변 도로 표지판을 따라가자.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며 육지와 연결되는 하섬, 해안을 따라 1.5km 정도 이어지는 변산반도국립공원 격포 자연관찰로, 적벽강, 채석강 등이 차례로 이어지고, 유홍준 교수가 환상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라고 칭찬한 ‘격포에서 모항 지나 내소사를 거쳐 곰소로 가는 길’이 펼쳐진다. 모항해변을 지날 때는 차를 세워두고 모항해나루가족호텔 뒤편 산책로를 걸어보자. 나무 데크로 만든 산책로 너머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조개잡이 체험을 할 수 있는 모항갯벌은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다.

길은 왕포마을을 거쳐 내소사, 곰소염전, 개암사로 이어진다. 부안 변산 마실길 3구간이 지나가는 왕포에서는 전형적인 갯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른 아침 바다가 고요하고 평화롭다. 내소사는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 끝에서 단정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드러낸다. 백제 무왕 때(633년) 건립되었으며, 대웅보전의 사방연속무늬 꽃 창살이 무척 아름답다.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천일염 생산지인 곰소염전은 요즘처럼 더울 때는 이른 새벽에 채염 작업을 한다니 소금 거둬들이는 모습을 구경하려면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비가 온 뒤 며칠은 작업도 쉰다.

염전 구경을 마친 뒤엔 길 건너편 곰소쉼터에 들러 9가지 젓갈이 나오는 젓갈정식을 맛보자. 젓갈정식은 백합죽, 백합탕, 백합구이 등 다양한 백합 요리와 함께 부안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손꼽힌다. 곰소를 지나 부안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개암사로 갈 수 있다. 역시 백제 때 지은 절로 대웅보전 뒤를 감싼 울금바위의 자태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