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9)]세계 10대 아트 컬렉터 일라이&에디스 브로드 부부

기사입력 : 2012-11-01 16:57 (최종수정 2017-03-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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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9)]-일라이 & 에디스 브로드 부부

“美대통령 없어도 되지만 일라이 없으면 안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하는 세계 10대 아트 컬렉터

최연소 공인회계사로 부동산·보험 사업 잇따라 성공시켜

거주지 LA를 문화타운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진행

브로드 아트재단 설립해 485개 뮤지엄 등에 작품 대여



▲ 일라이 & 에디스 브로드 부부

[글로벌이코노믹=김민희 예술기획가]“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하며 많이 맡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가진자가 도덕적 의무를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이롭게 하고, 위급한 상황일 때 앞장서는 정신은 유럽 사회를 지탱해오고 발전시켜왔던 원동력이었다. 이 정신의 높은 가치는 지금까지도 칭송받고 있지만 많이 받은 것을 많이 내어 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사람이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욕구가 끝없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소개할 미국의 일라이 & 에디스 브로드(Eli & Edythe Broad) 부부가 매우 모범적으로 활동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들은 사업가이자 박애주의자며 세계 10위 안에 드는 아트 컬렉터다.

사실 필자가 브로드 부부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작년이다. 뉴욕에서 알고 지내던 구겐하임 뮤지엄의 아시안 아트 디렉터였던 김민정 씨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올해 11월에 문을 여는 미시간 주립대학교 브로드 현대미술관의 부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자하 하디드의 설계로 최근 완공 되었고, 무엇보다 미시간 대학생의 창조적 사고를 돕고 자극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자랑스런 한국인이 미국 미술관의 부관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고, 그 미술관의 창립자인 미국의 부동산 갑부 브로드 부부의 업적을 살펴보니 참으로 대단했다.

▲ Jeff Koons_Balloon Dog일라이 브로드(Eli Broad·1933~, 이하 일라이)는 뉴욕 브롱스에서 리투아니계 유대인 이민자 부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도장공이었던 아버지와 양재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된 일을 하고 엄한 교육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모든 것은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에 품고 성장했다. 여섯 살 때 그의 가족은 디트로이트로 이사하였다. 그는 그의 부인과 같은 디트로이트 공립학교에 다녔다. 일라이는 미시간 대학에 진학하여 회계학을 공부하였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함과 동시에 미국역사상 가장 어린 공인회계사(CPA)가 되었다. 스물한 살의 나이로 18세의 에디스(Edythe Lawson)와 결혼했다. 회계사로 2년간 일하는 중에 가만히 보니 주택 건설업을 하는 그의 고객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고심 끝에 장인에게 2만5000달러를 빌려 처 사촌과 함께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아이를 갖게 된 것이 그에게 가장으로서 큰 책임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자녀로 인해 더욱 정신을 차리고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건축이 용이한 신개념의 집을 지어 판매했는데 3년의 긴장된 시간이 지나고 결국 대박을 터트리며 성공했다. 두 번째 사업으로 보험회사를 사들였고, 운이 좋게 베이비 붐 때 태어난 사람들이 노후를 걱정하게 되면서 그의 보험사업이 성공의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 운을 이어 선아메리카라(SunAmerica)라는 보험회사를 탄생시켰다.

500개의 회사를 설립한 후 브로드 부부는 이제는 다른 삶을 살고자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자선 사업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 The Broad Museum in Los Angeles1960년 가족 재단인 브로드 파운데이션(The Broad Foundation)을 창설하여 그들이 기부하고자 하는 분야들을 유심히 살펴 후원하기 시작했다. 210억 달러의 자본금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재단에서 후원하고 있는 분야는 기본적으로는 사회 공공 이익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구체적으로 나누면 교육, 과학, 예술분야다.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그들은 특히 거주지인 LA의 교육과 문화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LA다운타운을 문화지구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점진적으로 후원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1979년 미국 도시 중 유일하게 뮤지엄을 갖고 있지 않았던 LA에 시장과 협력하여 LA현대미술관(MOCA)을 창립한 것이었다. 후에 지원금이 급감하여 폐관위기에 놓여있었을 때에도 다시 구원의 손길을 펼쳐 미술관이 계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도왔다. 2008년에는 MOCA에 혁신적인 새로운 디렉터로 뉴욕의 젊고 실험적인 아티스트들의 화상(Art Dealer)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를 임명하게 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여 미술계에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브로드 부부는 샌터모니카 칼리지 퍼포밍 아트센터의 ‘브로드 스테이지’를 비롯해 LA카운티미술관에도 계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1996년에 LA시장과 함께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건축을 위한 펀드레이징 캠페인을 벌였다. LA오페라가 바그너의 대작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일라이의 600만 달러의 기금 덕분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지 산타모니카 칼리지 신축 퍼포밍 아트센터의 개관식 때 아티스틱 디렉터로 취임한 더스틴 호프만이 “미국에 대통령은 없어도 일라이가 없으면 안 되니 내 사진 좀 그만 찍고 일라이만 찍어달라”고 했을 정도다.

▲ Van Gogh_ _Cabanes a Saintes-Maries브로드 부부는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컬렉팅하고 있다. 대가들의 작품을 사봤자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현재 작품을 만들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작가에 대한 지원이 사회의 예술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브로드 부부가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73년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처음 컬렉팅했던 작품은 반 고흐의 드로잉 작품 「Cabanes a Saintes-Maries」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아트 컬렉터가 된 것은 또 다른 컬렉터인 타프트 스크리버(Taft Schreiber)에게 멘토링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유명 작가 미로, 피카소, 마티스 등의 작품을 좋아해 구입했으나 컬렉션의 주제를 명확히 하고 싶어졌고 차츰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페인팅 작품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는 새로운 작품을 사기 위해 이 전에 구입했던 것을 팔곤 했다.

조직적인 컬렉팅을 시도하기 위해 조안 하일러라는 큐레이터를 고용해 그와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컬렉션에 반영했다. 동시대 작가로 시간이 흐른 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만한 작품들을 선별하여 신중하게 결정했다. 그들이 눈여겨봤던 신디 셔먼의 작품을 100점 이상 소유하고 있다. 부부는 로이 리히켄스타인의 진기한 작품 「Rouen Cathedral」을 구입하기 위해 로이 리히켄스타인 재단과 거래를 하며 2년간 기다리기도 했다. 인내할 줄도 알고, 늘 새로움을 찾는 일라이를 작가 제프 쿤스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대하는 태도와 신념에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라고 평한다. 미국의 가장 유명한 딜러 중 한 명인 레리 가고시안이 컬렉팅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집에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어지자 부부는 브로드 아트 재단을 만들었다. 재단의 미션은 주목 받는 컨템포러리 작품을 살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작은 뮤지엄에 대여해주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485개의 뮤지엄, 학교, 갤러리 등 7800건이 넘도록 적극적인 대여를 해주고 있다.

▲ jeff-koons- Michael Jackson and Bubbles일라이는 미술을 처음 접하고 아티스트들을 만났을 때 숫자를 빠르게 이해하는 자신의 능력이나, 비즈니스맨들과 만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미술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브로드 부부에게 컬렉팅은 단순히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육의 장이었다. 일라이는 그 과정이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고백했다. 만약에 평생을 비즈니스맨들이나 은행가, 변호사들과 보내야 했다면 너무나 재미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로드 부부가 아티스트들과 보낸 시간들 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장-미셸 바스키아가 브로드 부부의 집을 방문했을 때 화장실에 있는 담배 파이프를 가지고 간 것을 알게 되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집을 방문했을 때 조지 세갈의 조각품이 그가 예전에 데이트했던 여인인 것을 발견하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는 이야기, 싸이 톰블리가 주최했던 저녁만찬에 술에 만취한 로버트 라우젠버그가 30분 이상 쉴새없이 떠들어대자 일라이가 일어나 그만하라고 외친 사건도 있다. 그 때 몇몇 사람들은 잘했다며 동조했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위대한 아티스트에게 그럴 수가 있냐며 경악했다고 한다. 예술과 함께 하면 생각지도 못한 해프닝이 많이 일어난다. 예술이 지닌 재미있고 풍부한 세계를 경험하면 헤쳐나올 수가 없게 된다.

일리아는 제프 쿤스와 친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제프 쿤스는 아티스트가 되기 이전에 월 스트리트에서 브로커 일을 했었으나 둘이 만나면 절대 금융 마켓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들은 쿤스의 작품이나 가족,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쿤스의 초기 작품부터 현재까지 33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브로드 컬렉션의 가장 값비싼 작품들 중 하나가 되어 톡톡히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 Rouen Cathedral_Roy Lichtenstein브로드 부부는 두 개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 500여 점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개인 컬렉션과 1500여 점의 모던·컨템포러리 작품을 가지고 있는 브로드 재단의 컬렉션이다. 그들이 세운 뮤지엄에 이 작품들을 전시하여 대중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올해도 두 개의 큰 미술관이 문을 연다. 그 중 하나가 LA다운타운에 위치한 브로드 현대미술관이다. 2억 달러의 기증으로 완성된 벌집모양의 독특한 건축은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의 작품으로 자연광을 이용한 구조와 건물 외관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것이 특색이다. 부지는 시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았고, 건축과 운영비를 브로드 부부가 제공했다. 49년 동안 거주한 LA에서 받았던 축복을 돌려줄 때라고 밝히며 기부의 취지를 말했다. LA뿐만 아니라 뉴욕과 보스턴, 미시건 지역에서도 그의 후원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뉴욕의 링컨센터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도 그들의 후원은 늘 최고다.

어렸을 적부터 뛰어난 감각으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낸 것처럼 기부도 일리아 만의 방식, 즉 회사를 경영하듯 효율을 따져 후원하고 있다.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의 그는 돈만 주고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라 모든 일을 파악하고 장악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때로는 가혹하게 몰아치는 사람이다. 자선 사업에도 목표를 정해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며 평가한다. 자신이 가진 돈을 다 사용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브로드 부부는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그의 세심하고 정확한 면 때문에 후원하고 있는 기관의 이사진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결국엔 좋은 결과로 돌아오니 그를 신임할 수밖에 없다.

10년 이상 브로드 부부는 해마다 2억 달러(약 2200억 원)정도를 기부했다. 그보다 더 많은 액수를 기부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만큼 꾸준하지는 못하다고 한다. 우리가 사회를 위해 기부하고 누군가를 후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친구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크고 적음을 떠나서 진실한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김민희 예술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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