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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채근담]제가끔인 생명과 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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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채근담]제가끔인 생명과 소셜

제가끔인 생명과 소셜


髮落齒疎 任幻形之彫謝

鳥吟花咲 識自性之眞如

- <菜根譚> 後集51 / 洪自誠

머리칼 잎새 지고 치아 듬성해지는 그것이 살면서 헛보인 몸이 물러나는 형국이라면, / 새 우짖고 꽃 벙그는 데서 타고난 성품대로의 참이 바로 그 같음을 안다.

세상은 생산하는 자와 인용하는 자로 나뉜다. 인용은 확대재생산이며, 생산 곧 창조가 없다면 그 존재 근거조차 사라지게 된다. 창조가 흔하고 손쉽다면 그 창조는 재생산될 가치마저 이미 결여한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건 그것이 순수한 창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의 눈을 사람들은 보다 자주 드려다 보려하고, 찾아가는 것조차 성가셔 담장 안에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꺾어 머리맡에 둔다. 그러한 과정은 꽃만이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서 공장이 생기고 판박이처럼 찍어내게 된 것이다.

함에도 여전히 부족한 건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참으로 시킬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자연의 성품은 아무리 땅에 심겨두어도 하늘을 품으려 한다. 아무리 낮게 엎드린 풀이라도 바람에 흔들리고자 하며 달을 따라 지고 다시 펴오른다.

베끼면서 부끄럽지 않은 건 오로지 사람뿐이다. 유행은 한시적 획일화이고 따라 만든 것은 그다지도 수명이 짧다. 생명 아닌 것은 자생력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증이 생기고 허기가 차올라도 무엇 때문에 그러한지 알 수 없다. 까닭은 사람 제 마음도 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자연이라서다, 그 역시 바람대론 걸 대신 할 인용구를 찾느라 골몰하기 때문이다.

사람게 다 있고도 순수 창작일 수밖에 없는 마음. 인용으론 마저 다 드러내지 못한 자기만의 무엇이 뭉클 울컥 차오른다. 몸의 유전자는 대를 물려 베낄 수 있지만, 마음은 ‘똑같이’ 찍어낼 공장이 없다. 그래서 창작은 외로우며 크리스탈 같다. 아낄수록 아름다우니, 제 마음의 꽃 피는 얼굴들이 제가끔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비추어 보면 현대의 소셜은 閉鎖空洞(폐쇄공동)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애초 흐르고자 함이 없는 확대재생산이며, 그래서 ‘찍어낸’ 것들로 채우려고만 드는 것이다. 만약 서구의 역사가 과학에 있다면, 그 대부분은 인용구로 점철된 ‘논(앵무새)’문에 의존한다. 그 조금의 예외, 맨 처음을 쉬지 않고 생겨낼 자만이 흐르며 이끈다.

/장은조 번역·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