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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비판하고 벌할 권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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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비판하고 벌할 권리가 있나?"

[세계문학기행(18)]톨스토이즘과 (하)

'부활'로 국가에 대한 비판 예술적으로 승화


리얼리티 결여불구 새 러시아 예언서로 격상


작가의 인도주의적 정신에서 작품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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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김용만 소설가] 톨스토이가 53세 때인 1881년은 그의 생애에서 분수령과도 같은 대전환을 맞이한 해였다. 그전의 생이 옛 귀족가문에 속한 삶이었다면 그 후는 종교적으로 거듭나야 했던 전 인류에 대한 애정과 배려의 삶이었다. 이전의 생애가 목가적 신화적 개인적이었다면 이후의 생애는 이성적 합리적 박애주의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그는 개인의 구원을 부정하고 복음서들의 도덕적 가르침에 따랐다.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포함하여 그전의 작품들은 모두 본능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여겼으며 미적쾌락을 부정했다. 종교도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를 위한 행복추구였으며, 진정한 예술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연대감에 영향을 끼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동을 주되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형태로 수용되는 영향은 배격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작품을 써야 했다. 교화적 논문집인 『참회록』을 비롯하여 『나의 신앙』『인생론』『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썼고, 숭고한 정신세계를 담은 대작 『부활』을 쓰게 되는데, 『부활』은 국가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장 예술적으로 형상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쓰게 된 것은 1880년대 말에 우연히 코니라는 법률가로부터 형사피의사건을 듣고부터다. 핀란드의 어느 별장지기 딸인 로잘리아(16세)라는 소녀가 그곳 지주의 아들로 대학을 갓 나온 청년의 유혹을 받고 몸을 더럽혀서 주인집을 쫓겨났는데, 그녀는 매춘부로 타락하고 각가지 전락의 길을 밟는 동안에 살인모의와 절도혐의까지 받고 감옥에 갇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톨스토이 자신의 경험과도 유사했다. 언젠가 톨스토이는 제자인 비류코프에게 그가 대학시절과 페테르부르크 시절의 방종한 생활과 결혼 전에 저지른 두 가지 죄를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 하나는 영지의 농민의 딸과 관계한 일로 소설 『악마』에 암시되었고 다른 하나는 숙모 집의 마샤라는 순진한 하녀와 관계한 일로 그녀는 타락하여 인생을 망치게 되었다. 톨스토이가 마샤에게 어떤 속죄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부활』에서의 네흘류도프가 톨스토이의 상징적인 인물이랄 수 있겠다.

톨스토이는 로잘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소설을 쓰려 했으나 그가 소설 창작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때라 포기하고 말았지만 1895년 카프카스 지방에 ‘두호보르 교주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출간을 서두르게 된다. 두호보르는 18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에 발생한 종파로서 원시기독교의 교의를 엄수하고, 철저한 무저항주의와 동포주의를 실천하는 한편, 신의 왕국만을 인정하며 국가, 법률, 병역의무 등 지상의 모든 권위와 법규를 부정하려는 종교적 집단이었다. 톨스토이즘의 교의를 그대로 실천하려는 그들에게 정부는 모진 박해를 가했고, 1895년에는 카자흐 병을 시켜 1000여 명을 학살했다. 그래도 굽히지 않자 국외 추방령을 내렸고, 톨스토이는 그들의 캐나다 이주비를 대주기 위해 『부활』을 썼던 것이다. 이처럼 『부활』집필에는 톨스토이의 인도적 정신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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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부활』에서 사회 밑바닥에 숨어 있는 무서운 비리와 죄악들을 파헤쳐 그 원인이 불완전한 사회조직과 불합리한 비판제도에 있다고 보고, 권력자와 부자에게 유리한 법률과 경제조직, 허위의식적인 종교와 도덕관이 얼마나 건실한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모든 인간사회에 편재해 있는 그 병폐의 치유책으로 ‘인간이 인간을 비판하고 벌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로망 롤랑이 “이 작품은 시대 양심의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고 말한 것도 그런 화두를 전제한 경구라 하겠다.

배심원으로 법정에 나온 네흘류도프 공작은 살인과 절도 피의자로 재판을 받는 카추샤(마슬로바)를 만난다. 청년시절에 자기가 정욕의 대상으로 유린한 순결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고모네 저택 하녀였던 것이다. 젖먹이 때부터 고모가 귀엽게 키운 여자라 하녀이면서 아씨 대접도 받을 만큼 정숙하게 자랄 수 있었다. 카추샤가 16세일 때 대학생이던 부유한 네흘류도프 공작이 고모네를 찾아왔다가 그녀를 보게 되고, 그 후 2년이 지나 공작이 전쟁터로 나가기 전 나흘 동안 그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때 그녀를 유혹했던 것이며, 떠난 후로는 그녀를 잊어왔던 것이다. 네흘류도프와 헤어지고 5개월이 지나서야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카추샤는 고모네 저택을 나와 거친 세파에 시달리게 된다. 이집 저집을 전전하다가 종국에는 창녀생활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러다가 손님의 돈을 훔치고 죽였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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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는 뒤늦게야 자기 때문에 참혹한 수형의 길을 걷게 된 카추샤를 위해 귀족생활마저 포기하고 우선 그녀를 석방시키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 또 카추샤를 면회하러 감옥에 다니며 실정을 알게 된 다른 죄수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려고 유력자들을 찾아다니지만, 부패하고 경박한 귀족사회와 관료주의의 행패를 보면서 차츰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의식화되어간다. 헐벗은 농노들의 고역으로 호의호식하면서도 그들을 무시하는 귀족들의 위선에 혐오감이 느껴지고 토지사유제에 회의를 품게 되자 카추샤에 대한 죄의식은 더욱 깊어만 간다. 네흘류도프는 그 죄의식을 탕감받기 위해 카추샤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술에 취해 일부러 위악적인 태도를 보인다. 네흘류도프의 자비에 부담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토록 보고 싶고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막상 퇴락의 정점에서 베푸는 그 자비를 결혼이란 형식으로 일상화 시킬 수는 없었다.

드디어 그녀는 같은 죄수로 유형지까지 합류해온 혁명가 이바노비치에게 마음을 할애한다. 이바노비치는 카추샤와 동일한 죄수 입장에서 그녀의 진실된 현재 모습만을 그대로 사랑한 남자이며, 죄의식 때문에 카추샤를 동행한 네흘류도프의 도덕적인 의무항과는 다른 애정이었다. 카추샤를 임신시켜 타락의 길을 걷게 하고 결국에는 죄수로 전락시킨 그 죄의식 때문에 시베리아 유형지까지 동행한 네흘류도프의 참회와는 순수성부터가 달랐다.

『부활』에도 작법상의 미흡이 있는 건 사실이다. 70세의 작가가 30대 중반의 젊은 인물을 묘사하자니 객관적인 리얼리티가 결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설의 종결부분을 복음서의 나열로 처리한 것이 형태미를 훼손시킨 것이다. 하지만 『부활』은 인간 고뇌와 톨스토이 정신이 가장 숙성된 작품이다. 톨스토이에게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로망 롤랑도 『부활』에서 ‘유독 톨스토이의 가장 맑고,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날카롭고 엷은 회색의 눈동자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영혼 속에 신을 보는 눈길을 느끼게 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톨스토이는 그런 하자에 대해 “긴 인생을 살아온 나 같은 노인이 작품을 쓰면서 사람들이 잊어온 복음서의 구절을 한번 회상시켜주고 싶지 않았겠는가?”라고 변명한다. 사실 그는 그의 이상세계인 지상낙원(신의 왕국) 건설의 해답을 작품 에필로그를 장식한 마태복음 5장과 18장 중에서 찾았으며 어떤 악이라도 거기에 항거하지 말라는 산상설교를 철저히 믿음으로써 그의 중심사상인 ‘무저항주의’의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있었다.

『부활』에서 양심이 마비된 재판관, 부패한 관리, 허식에 빠진 상류귀족사회의 리얼한 묘사, 그리고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망각한 채 정부의 추악한 주구로 타락한 정교회에 대한 풍자야 말로 『부활』을 새로운 러시아를 예언하는 예언서로 격상시켰다. 톨스토이는 레닌의 말처럼 농노 소유자들에 의해 짓밟힌 러시아에서 혁명이 준비되고 있던 시기를 천재적으로 조명해냈다. 다음은 톨스토이가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한 후 밝힌 회신이다.

“나는 정신으로서, 사랑으로서, 만물의 근원으로서 이해되는 신을 믿는다. 나는 신이 내 속에 있으며, 또 내가 신 속에 있다고 믿는다. 나는 신의 의지가 인간 예수의 가르침 속에 알기 쉽게 명백히 표현되고 있다고 믿으며, 예수를 신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기도드리는 것을 가장 큰 모독으로 여긴다. 나는 인간의 참된 행복은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데에 있으며, 신의 의지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남을 자기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