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조리는 五感을 사용하고 느끼는 고귀한 종합예술"

공유
0

"조리는 五感을 사용하고 느끼는 고귀한 종합예술"

[한국의 맛-강재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총주방장]

철갑상어·머드크랩 등 희귀한 '6성호텔' 나만의 요리


제주부터 전라까지 '五味 맛기행' 통해 만든 메뉴 선봬


특1급호텔 주방장 모임 '셰프 테이블'의 최연소 멤버


"천재보단 노력을, 노력보단 즐겨라…" 조리 10戒 실천

▲강재현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총주방장
▲강재현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총주방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의사와 조리사가 입는 하얀 유니폼은 ‘생명’을 상징한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하얀 유니폼에 반해 조리사의 길에 들어 선 사람이 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강재현 총주방장(40)이 그 주인공이다.

강 총주방장은 국내 특1급호텔 총주방장의 모임인 셰프 테이블의 막내다. 마흔 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총주방장에 오른 그는 혈기가 왕성한 셰프답게 캐주얼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호텔도 부담없이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손님과 얼굴을 맞대는 공간분위기와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희귀 식재료를 활용한 그만의 요리를 선보인다.

철갑상어 메뉴세트와 제주‧전라의 오미(五味)를 내놓아 손님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강재현 총주방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하셨는지요?

“1993년도에 경희호텔 경영대학 조리과에 입학했어요.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조리과를 지원한 이유는 일식당 주방장이셨던 이모부님의 멋진 주방 유니폼과 얼음을 채 치시는 모습, 살을 발라낸 생선을 수족관에서 헤엄치게 하시는 놀라운 솜씨가 어린 제 마음을 조리사의 길로 이끌었어요. 이후에 군사령관 조리병으로 복무한 후 1996년도에 리츠칼튼 서울에서 전문조리사로 첫 출발했고, 2003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리츠칼튼 하프문베이에서 근무했어요. 2005년에 파크 하얏트 서울의 오프닝 멤버로, 2009년에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오프닝 멤버로 현재까지 일하고 있어요.”

-강 총주방장에게 조리란 무엇입니까?
“조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五感)을 사용하고 느끼는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아주 고귀한 예술이지요. 의사는 질병이 생긴 뒤에 치료하지만 조리사는 음식으로 질병을 미리 예방합니다. 의사나 조리사의 가운이 모두 흰색인 이유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조리는 아주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요리스타일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화려한 기교를 부리기 보다는 단순히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이끌어내는데 주력합니다. 맛을 첨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나 소스를 사용하기 보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식재료로 단시간에 조리하는 걸 선호합니다. 훌륭한 음식은 좋은 식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좋은 한우를 구하기 위해 경북 안동에 있는 한우마을에 가 직접 사육과 가공 공정을 점검해서 구매하기도 하고, 해산물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제주도나 전라도 지역을 돌며 산지에서 직접 구입해서 요리에 사용합니다. 되도록 구하기 어렵거나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식재료 사용을 즐기는 편이지요. 한 예로 아시안 레스토랑인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Granum Dining Lounge)의 칠리&페퍼 크랩 메뉴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머드크랩을 사용해서 현지의 맛과 거의 흡사하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철갑상어를 이용한 요리를 개발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많은 추억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캘리포니아에서 일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캘리포니아에서 요리를 할 수 있었다는 건 저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좋은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채소와 과일의 맛이 뛰어나고 바다가 인접해 있어서 해산물도 풍부했어요. 항상 다양하고 신선한 제철 재료들을 찾아 헤매는 요리사들에게 캘리포니아는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 간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사비에르 살로몽이라는 프렌치 마스터 셰프와의 만남이 제게 요리에 대한 눈을 뜨게 하는 동시에 요리를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어요. 당시 리츠 칼튼 하프문베이의 총주방장이던 사비에르 셰프는 낯설기만한 미국 요리사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요리 시범을 보여주었고, 주방장의 역할과 요리의 철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요리를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물론이죠. 대학에 강의를 나갈 때면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흰 조리복을 입는 순간 너희에게 앞으로는 빨간 날(휴일)은 없다. 나도 20년 동안 조리사 생활을 하면서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어린이날, 어버이날, 심지어는 일요일에도 쉬지 못했다. 남들 쉴 때 일해야 하고, 하루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내야 한다. 그러니 이것에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다면 조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 저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가족들 얼굴 보기가 힘들고 간신히 잠만 자고 나올 때가 많아 아내와 딸에게 항상 미안하고 조리사라는 직업을 이해해주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2005년에 부총주방장으로서 파크 하얏트 서울을 오픈할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 됩니다. 운이 좋게도 서른두 살의 어린 나이에 부서장이 되었지만 경험과 경력이 미천해서 각종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업장을 꾸려 나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모자라는 실력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으로 대체했어요. 오픈 후 2년 동안 하루 16시간씩 주 6일간 일했어요. 당시 육체적으로는 피곤했어도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는 그에 비례해서 크게 성장했지요.”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견해는?

“전통 한식과 한국 고유의 식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서양인들의 입맛과 기호에 맞는 현지화 된 맛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식은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우수한 음식이지만 자극적인 맛과 향은 서양인들에게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게 현실입니다. 따라서 한식에서 서양인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를 테면 외국인들의 시선을 끌만한 메뉴를 선정하고 개발하는 것이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특히 한식의 발효문화는 조금만 더 수정·보완한다면 서양인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합니다.”

-반얀트리 조리부에는 10계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호텔에는 직원들이 숙지하고 실천해야 할 서비스 목표가 있어요. 여기에 착안해서 조리부에 적용할 수 있는 세분화된 목표를 설정해서 작업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에 따르면 조리부 10계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둘째, 고객과 동료들의 비판을 과감히 수용하라. 셋째, 최고의 목표를 세우고 최고의 사람들과 일하라. 넷째, 식품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서비스 전에 맛과 간을 체크하라. 다섯째, 신선한 재료와 적절한 구매를 하라. 여섯째, 하루에 세 개씩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라. 일곱째, 팀워크를 중요시하라. 여덟째, 모든 직원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홉째, 자신의 주방과 기물을 제것처럼 아껴라. 열째, 좋은 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하자.

-반얀트리 총주방장으로서 특히 역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유러피언 퀴진을 선보이고 있는 페스타 비스트로 앤 바(Festa Bistro & Bar)를 업그레이드 해 단순하지만 감각적인 메뉴 구성과 독특한 구조의 오픈 키친에서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볼거리를 연출해서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활기 넘치게 하려고 합니다. 환상적인 서울의 조망과 다이닝 문화의 트렌드 센터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식도락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소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도 합니다.”

-조리사의 길을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하얀 그릇 위에 각종 색깔과 맛을 낸 담음새로 손님 앞에 내놓았을 때 성취감이 느껴져요. 호텔에는 VIP손님이 거의 매일 오는데, 그들을 위해 특별한 맞춤 메뉴를 짜서 내놓을 때도 진짜 흥분이 됩니다.”

-요즘 식품첨가제를 사용하지 않는 ‘착한 식당’이 유행입니다.

“양식요리사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 대신에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요. 식재료가 요리 맛의 70~80%를 차지하기 때문이지요. 혹시 손님들은 보기에 화려한 노랗고 파랗고 빨간 소스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고기에 가장 어울리는 소스는 소금이에요.”

-특별하게 추구하는 조리 방향이 있다면?

“정보가 너무 발달해 누구나 벤치마킹을 할 수 있어서 다른 관점에서 요리에 접근을 해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알려진 보편적인 요리보다는 남이 하지 않는 식재료를 구해 특별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어요. 여기에 요리를 하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고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철갑상어의 알인 캐비어만 사용했지 철갑상어 자체를 요리에 접목시킨 경우가 없어요. 살이 탄력이 있고 철분과 칼슘의 함량이 높으며 고단백질인 철갑상어를 활용해 양식 세트 메뉴를 만들어 철갑상어 프로모션을 진행했어요. 상어지느러미를 이용한 샥스핀 요리는 지금 호텔에 보편화 되어 있지만 철갑상어 세트 메뉴는 반얀트리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강 총주방장은 지난 2월부터 제주 맛기행을 시작했다. 호텔 셰프 4명을 제주도로 보내 제주특산물이나 제주 맛집의 메뉴를 맛본 뒤 메뉴를 구현하게 했다. 이어 맛의 고향으로 유명한 목포, 광주, 전주 등 전라 3곳의 맛집을 탐방해서 멍게죽과 떡갈비를 메뉴로 내놓았다.

“앞으로는 지역을 넓혀 팔도 음식으로 확대할 생각이에요. 만일 남북한 관계가 개선된다면 현대그룹에 속한 호텔이라는 이점을 살려 북한의 음식도 내놓을 계획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를 위해 요리를 하는 셰프들이 현지의 맛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도록 분기마다 동남아에 보내고 있고 페스타 비스트로 앤 바를 위해서는 올 여름에 프랑스로 셰프들의 연수를 보낼 작정이에요.”

-호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호텔은 분위기가 차분하고 조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에요. 그러나 저는 파인 아트 같은 분위기보다는 약간 캐주얼하면서도 살아있는 분위기를 선호해요. 고급스럽고 비싼 중세유럽풍 대신에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에 조리를 하는 셰프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레스토랑에 가면 셰프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셰프 테이블을 만들어서 셰프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진짜 먹고 싶은 요리를 먹을 수 있다면 진짜 괜찮은 호텔 아닌가요?”

-셰프로서 꿈은 이루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장 큰 목표는 이루었어요. 처음 요리 시작할 때 부총주방장(Sous Chef)이 되는 걸 목표로 삼았는데, 지금 총주방장(Executive Chef)이 되었으니까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오히려 요리를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지기 때문에 해마다 한 나라를 방문해 요리와 함께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싶어요.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다보면 호텔 총주방장을 넘어 호텔 총지배인이 될 수 있는 폭넓은 시야와 식견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