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정소현 기자] 미국 상장회사 대상의 ‘분쟁지역 광물규제 의무보고법’이 오는 5월31일 첫 시행을 앞둔 가운데 이들 회사에 납품하는 국내 업체들이 원산지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분쟁지 10곳에서 생산되는 텅스텐, 탄탈륨, 주석, 금 등을 분쟁광물로 규정해 미국 상장사들의 경우 광물의 원산지를 보고해야 한다. 분쟁광물 사용시 해당기업 상장이 폐지될 수도 있어 관련 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작 시행을 앞두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우리 정부는 아직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다.
규제 대응반은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주재 간담회에서 법안 시행시 영향이 예상되는 전자, 자동차부품, 기계, 비철금속 등 산업별 대표단체와 광물공사, 무역협회, KOTRA 등 지원기관들로 구성됐다. 앞서 2010년7월 미국 정부는 금융 관련 규제법 ‘도드-프랭크 금융규제개혁법안’(Dodd-Frank Wall Street Reform Consumer Protection Act) 제1502조를 근거로 아프리카 분쟁지역 등에서 생산된 분쟁광물의 지난해 사용 여부를 의무보고하게 했다.
한국무역협회(KITA) 관계자는 “지난 8일 통상산업포럼 전체 분과회의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논의했고 올 1월부터 3개월간 업종별 분과회의를 통해 제1과제인 원산지 현황 파악 및 사용 실태에 대한 조사 논의가 이뤄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고시한이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늦장 대처 아니냐’는 지적에는 “워낙 큰 사안이라 NAM(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전미제조사협회) 등이 규제 반대소송을 내는 등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커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2012년말 실태 파악을 시작해 곧 원산지 현황을 파악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규제대응반을 조직할 당시 KITA는 국내 중소기업들에 대한 분쟁광물 규제 관련 정보 제공 및 교육 등을 담당했다.
미국 등 현지 주요국 정부․업계의 분쟁광물규제 관련 대응 동향 파악 업무를 맡았던 KOTRA의 경우 “팀 내에서 자료가 공유되지 않은 상태이며 담당자가 해외 출장 중이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워낙 규모가 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구나 중소기업들은 손 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협력사들이 분쟁광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공지하고 정기적으로 전화 확인을 하는 등 미국전자산업시민연대(EICC)의 관련 절차에 따라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질적 증거 자료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협력사가 제출하는 EICC 문서가 있다’는 말로 일관했다.
하지만 EICC의 규정은 협력사들이 분쟁광물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자료 제출을 강제하지 않고 있어 그 실효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이 높다.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연말 관련 프로세스 및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재 분쟁광물 제련소 추적시스템 구축으로 전산 테스트를 가동 중이고, 전자산업시민연대와 협력해 구성된 실사단이 제련소마다 4대 광물의 원산지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제련소 현황 파악에만 1년이 걸려 앞으로 남은 제련소들의 현황 파악에 얼마나 걸릴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대한 상장사들의 보고 시한인 5월까지 관련 자료 제출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기업들도 현황 파악에 1년 이상 걸리는 상황에 중소기업들은 분쟁광물에 대한 개념 파악도 하지 못해 대응책 마련이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 대응반에서 전자통신 분야를 담당했던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에는 중소사업자들이 ‘분쟁광물 추적 방법’이나 ‘EICC 작성 요령’부터 심지어 ‘분쟁광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KEA 측은 “분쟁광물 규제로 대미 수출 대기업만 영향받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견·중소기업에게는 더 큰 부담”이라며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