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오렌지, 레드, 옐로’(1961) 작품은 201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11억 원에 낙찰되어 그 해에 팔린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으며 2014년 한 해 동안 작가별 미술품 거래액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하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100점 중 그의 작품 6점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나 미술시장에서 매겨지는 가치에 대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언제나 늘 순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감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회화를 미학적으로 평가할 때 ‘숭고미(sublime)’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하곤 한다.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주장하는 숭고한 아름다움이란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것’, ‘감동을 주는 것’, 그리고 ‘말할 수는 없고 오로지 보여 지는 것’으로, 인간의 범위를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덮치듯이 다가와 주체가 압도당하는 경험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에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가진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그의 그림이 가진 숭고한 힘에 의해, 그 그림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이 색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색과 저 색이 왜 같이 배치되었으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하는 문제들은 감상자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작품의 내재적인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겨를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덮쳐오는 무엇인가를 영적으로 느끼고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나는 추상 표현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색과 형태의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비극, 황홀경, 운명….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내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주저앉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근본적인 감정들을 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은 나에게 그림을 그리게 만든 영적인 경험을 같이 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작품의 간의 관계를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다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 것이 아니다.”
마크 로스코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남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한다. 특히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추상 작품을 보면 더욱 난감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이해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으로 느껴지기를 바라고 있다. 큰 덩어리의 색면은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난해한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표현이자 마음의 울림인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작품이 가진 특유의 숭고한 아름다움은 신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주는 안도감이나 위로와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고요하면서도 압도적인 그의 작품 앞에서 마음껏 나약해지고 눈물을 흘리고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때로 불안하고 외롭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위로 받을 일들도 많다. 미술 작품이 우리를 어루만지고 잠시나마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미술에 대한 두려움은 접어두고 한번쯤 마크 로스코의 캔버스 앞에 서보자. 고요하게 두 눈을 감게 할 마음의 색이 덮쳐올 것이다. 마치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