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가가와현의 나오시마는 한때 구리 제련소가 있던 세토내해에 위치한 작은 섬이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낡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이 외딴 섬은 1989년부터 예술인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지금까지 주민들에 의해 꾸준히 가꾸어지며 한 해 수 십 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다. 나오시마 내에는 지중(地中)미술관, 베네세뮤지엄, 이우환 미술관이 있는데 이 세 미술관의 건축물은 모두 노출 콘크리트와 미니멀한 공간으로 유명한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설계했다.
섬 반대편의 혼무라 지구에서는 오래된 빈 집을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거나 집 자체를 작품으로 변화시킨 ‘이에(家)프로젝트’를 관람할 수 있다. 그 중 낡은 신사를 개조하여 만든 ‘미나미데라(南寺)’는 제임스 터렐이 빛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인데 관람객이 어둠과 빛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공간을 직접 체험하는 전시로 명상의 시간을 선사해준다. 티켓 한 장을 가지고 자유롭게 마을을 걸어 다니며 총 7개의 아트 하우스를 찾아 각기 다른 매력의 전시공간을 구경하고 담이 낮은 가정집을 기웃거리면서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오시마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이누지마에 가면 일본 현대미술가인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가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재생했던 이누지마 아트 프로젝트를 볼 수 있다. 이누지마는 구리 정련소가 있던 섬으로, 1920년대에 공장이 폐쇄되어 노동자들이 떠난 후 90년 가까이 폐허로 방치되었던 작은 섬이다. 야나기 유키노리는 우연히 이 섬을 발견하여 유적처럼 남아있던 공장과 굴뚝 등에 영감을 느끼고 이곳에 살면서 정련소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미술관을 짓고 마을 전체를 재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누지마를 둘러싼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을 만끽하면서 역사적인 유적과 현대 미술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이누지마까지 둘러보고 오사카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나오시마와 이누지마와 예술의 만남에 대해 생각하면서 예술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조금 깨달았다.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 베네세뮤지엄, 이우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 이에프로젝트의 아트하우스들과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 그리고 이누지마 곳곳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미술관과 예술작품들은 황폐했던 섬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해주었다는 점, 그리고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을을 꾸미고 집 앞 정원을 가꾸며 활력을 되찾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섬이 되었다는 점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건네는 미소, 그들이 열심히 가꾼 작은 꽃들, 함께 모여 꾸몄다는 공중 목욕탕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주는 숭고한 감동만큼이나 더 확실하게 ‘예술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활기를 잃었던 섬과 주민들은 예술을 통해 재생되고 치유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방문하는 사람들을 치유해준다. 나 역시 평화로운 나오시마의 분위기와 친절한 주민들 덕분에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사색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왔다. 어쩌면 섬과 주민, 우리 모두는 ‘예술’이라는 존재에게 값진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닐까.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