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바다와 갯벌에 관한 슬픈 명상

공유
7

바다와 갯벌에 관한 슬픈 명상

[전시리뷰] 최영진 사진전 『서해안』

최영진의 '만하'이미지 확대보기
최영진의 '만하'
아트세빈이 기획한 사진작가 최영진의 『서해안』전이 오는 31일까지 정릉 한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널찍한 전시장 입구 왼쪽 전시안내판에는 갯벌 위를 나는 갈매기가 이 전시회의 주제를 알리고 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과 인간의 공존을 강조하는 사진전은 울트라 크롬 프린트 200×70㎝ 5점, 90×60㎝ 15점으로 섣부른 바다에 관한 낭만적 시선과는 다른 인간의 환경파괴가 부각된다.

작가 최영진은 작가노트에서 “이 땅은 동고서저의 지형형태를 지니고 있고, 대부분의 강 하구는 바다와 만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지인 갯벌이 생성되어 드넓게 펼쳐지게 되었다. 생명을 만들고 키워내는 한없이 드넓고 풍요로운 바다는 아름다움을 끝없이 연출해내고, 죽지도 멈추지도 않는 신비한 물로 가득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파라다이스 같은 넉넉한 바다에 선을 긋고,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틀어막기 시작했다. 마치,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 배를 가르듯이 ........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갯벌은 메말라 갈라지고, 그 속에 감추어진 생명체들은 불속에 타들어 가듯이 최후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었다”라고 자신의 창작 배경을 밝히고 있다.
최영진의 '대천'이미지 확대보기
최영진의 '대천'
최영진의 '만리포'이미지 확대보기
최영진의 '만리포'

최영진의 수사는 직설법이다. 자신이 갯벌이 되어 아픔을 공유한다. 갯벌은 인간들이 즐거워한다면 자신의 몸을 도려내어 해수욕장이 되고, 휴양지가 되는 아픔을 감수한다. 작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점점 옥죄어 오는 인간들의 탐욕과 욕망의 현장을 포착하고 그 울분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갯벌과 바다를 온 몸으로 껴안는다.

곽세빈 한스 갤러리 대표는 “최영진 작가의 서해안 작업은 상반된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맑은 물이 넘실대고 생명의 빛으로 가득한 여름 해수욕장 사람들은 완전한 바다에 동화되어 있고 친환경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방조제가 건설되어 갯벌은 메말라 파괴되고 그곳에 깃들여 살던 무수한 생명들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
서해안이 처한 현실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20여년 작가가 서해안 지역에서 촬영한 작품들이다. 자연은 사람들의 탐욕에 의해 사라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도록 함으로써 사람, 갯벌, 새, 물고기.......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같이 영원히 누려야 한다. 이런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 이웃과 이웃을 분리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주의자들과 싸워야 하는 게 지성인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최영진의 사진에는 온몸을 모래에 파묻고 바다를 응시하는 두상(頭像)의 뒷모습 피사체가 보인다. 가까운 바다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남녀가 보이고, 옅은 파도가 치는 가운데 부표들이 떠있다. 바닷물의 색깔은 동해와는 다른 모래와 진청(眞靑)이 눈물과 섞여 뿌옇게 희석된 막걸리 빛이다. ‘지켜보리라’는 의지를 담은 이 두상은 생명의 바다, 생명의 새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바다의 슬픈 현실에 대한 지지와 동참의 상징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나는 청년교사 시절, 군산 근처의 갯벌과 만경강을 끼고 있는 김제, 부안군 앞바다를 다니면서 갯벌에서 나는 숱한 어패류와 풍부한 먹거리로 즐거워하던 바닷새들의 평화를 잊을 수가 없다. 갯벌의 상실, 살육처럼 다가온 거대한 둑이 신기루처럼 피어오르고, 상흔으로 남은 고군산열도 파괴된 모습들을 연상케 하는 널부러진 새들, 피서객과 죽임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새들의 양경(兩景)의 서해안, 서해안은 울고 있었다.

푸른 잎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있는 산 중턱, 한스 갤러리의 최영진 사진전 『서해안』은 약속의 땅이었던 ‘서해안의 눈물’의 실체를 명확한 대비로 차분히 보여주며 자진하여 서로가 서해안을 위한 자그마한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갠지스 강가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테지만 ‘관찰자’들은 언젠가는 문명의 떼가 벗겨지기를 바라면서 영원히 서해안을 응시할 것이다. 작가 최영진의 그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