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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이룰 수 없는 희망과 욕망 화폭에 맘껏 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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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이룰 수 없는 희망과 욕망 화폭에 맘껏 발산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51)] 욕망을 이루는 희망의 향연

평범한 사람들 상상과 공상 화려한 색채로 시각적 구성

어리석은 꿈인 줄 알지만 열정을 불 지필 달콤함 선사
‘희망고문’이란 말이 있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일에 될 것 같다는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서 포기라는 현실적 타협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이란 얼마나 가혹한가. 헛된 희망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따라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희망은 때때로 고문이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짐을 지운다. 그러나 때로는 거의 현실성이 없는 일들을 공상하면서 우리는 ‘희망고문’이 아닌 ‘희망당의정’을 맛본다. 현실의 고달픔과 쓴 맛을 이룰 수 없는 꿈의 달콤함으로 덧입혀 우리는 짧고 덧없는 잠깐 동안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이 달콤 쌉싸름한 희망이 ‘고문’이 될지 ‘당의정’이 될지는 희망을 마주하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의 적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제대로 조련하지 못하는 우리의 우둔함일 것이다.

신상우 작 Modern People-Vacation, 91x73cm, Mixed Media on Canvas, 2015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Vacation, 91x73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신상우 작 Modern People-Arabian Nights, 162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13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Arabian Nights, 162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13
신상우는 현대인의 희망을 그린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주변인들의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고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말 그대로 ‘주인공’이다. 신상우의 ‘모던 피플(Modern Peple)’은 인종과 국적이 없으며 작가와 같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 대중들이자 현대인들이다. 회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한 장 내지는 몇 장 밖에 만들 수 없는 모노타입(monotype) 혹은 판화적 느낌이 드는 회화를 창작하는 작가의 부단한 성실성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판타지의 세상을 화면 가득히 구현해 낸다. 미국 유학 시절 여가 시간에 주로 텔레비전 시청을 하며 보냈다는 작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의 모습과 욕망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일상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어쩌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먼 곳의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된 신상우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의 관심사에 접근하게 되고, 이들의 속마음을 재미있게 표현하기에 이른다. 현대인들이 마음 속에 항상 가지고 있으나 실행은 할 수 없는 것, 그러한 상상과 공상을 시각적으로 펼쳐 놓는 것. 그것이 신상우의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이다.

신상우 작 Modern People-Couple, 117x81cm, Mixed Media on Canvas, 2014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Couple, 117x81cm, Mixed Media on Canvas, 2014
신상우 작 Modern People-I want to be A Cinderella, 138x97cm, Collagraph, 2010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I want to be A Cinderella, 138x97cm, Collagraph, 2010
한국 내 아카데미의 분위기에 따라 다소 담백한 색의 작품을 하던 작가는 뉴욕 유학 시절의 색에 대한 자유로운 사용으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신상우가 펼쳐 놓는 희망과 욕망, 그 상상의 세계에서는 화려한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의무와 한계, 현실적 고민을 벗어내고 가장 원초적인 자신의 꿈의 모습으로 현재의 자신을 완전히 변모 시키는 것. 신상우가 그리는 우리의 꿈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주목받는 인기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슈퍼맨, 끝내주는 휴가를 보내는 젊은이,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결혼에 성공한 신데렐라, 전지전능한 신 등 원하는 것 모두를 바라는 대로 이룰 수 있는 가상 세계 속 아바타의 모습이다. 이 마법 같은 세계에 빽빽하게 그려진 이야기들은 공상 속 우리를 축하하고, 찬미하며, 함께 즐거워한다. 그러나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철없는 욕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충족되지 않으리란 걸 모두들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어리석음과 철없음, 허무함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잠시나마 즐겁다. 잠시나마 다른 존재가 된다.

신상우 작 Modern People-Artist, 91x65cm, Mixed Media on Canvas, 2015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Artist, 91x65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신상우 작 Modern People-Opera, 162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14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Opera, 162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14
“현대인들은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희망과 불안이라는 모호한 양면적 가치를 받아들이며 주어진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킨다. 그들이 더욱 고도화된 사회에 어울리는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의 진정성은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의해 강하게 통제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적인 삶과 영혼까지도 억류되어 주체적 자아를 상실한 채 다중인격이라는 거대한 망망대해 속에서 그들의 본질(本質)을 찾으려 힘쓰고 있다.” 작가의 설명처럼 현대인들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희망과 불안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며 겨우 자신을 적응시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신상우의 작품은 그런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유치하지만 솔직한 꿈을 발산시켜줌으로써 잠깐의 축제를 선사한다. 헛된 꿈의 어리석음과 그 꿈의 즐거움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손님들에게 막대한 음식과 선물을 제공했던 ‘포틀래치(potlatch)’라는 풍습이 있었다. 인디언 사회의 부를 분배하는 역할과 함께 친족 내에 강한 결속력과 통합력을 제공하고 또한 경쟁적 부의 과시를 통해 권력과 권위를 인정받는 포틀래치의 풍습은 빼곡한 이미지와 다채로운 색을 엄청나게 제공하는 신상우의 작품에서 ‘꿈과 희망의 포틀래치’로 다시 태어난다. 이 원시적인 향연에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충족되는 욕망의 원시상태, 공상의 아동 상태로 되돌아가 모든 근심과 걱정, 부족함을 뒤로 한 채, 한껏 고무되고 고양되어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을, 그 모든 모습을, 그 모든 색을 마음껏 받아 즐기는 것이다.

신상우 작 Modern People-Treasure, Hunting, 162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13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Treasure, Hunting, 162x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13
신상우 작 Modern People-Dream Forest, 117x81cm, Mixed Media on Canvas, 2015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Dream Forest, 117x81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에서 자기 안에 갇히지 말고 열정을 가질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썼다. 우리는 해적도, 보르네오의 왕도, 소련의 노동자도 될 수 없다. 그러나 행복할 수는 있다. 신상우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해적도, 보르네오의 왕도, 소련의 노동자도 될 수 있다. 주목받는 예술가, 영웅, 정글의 탐험가, 보물 사냥꾼…. 이 모든 것이 다 황당한 꿈일까. 덧없는 망상일까. 신상우의 작품에선 축제의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들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폭죽이 터지는 화려한 밤하늘, 꽃다발에는 활짝 핀 꽃이 가득하고, 과일은 풍성하고 탐스럽게 열렸다. 왕관이나 모자를 쓰고 있는 주인공인 ‘나’는, 어디에서나 주목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며 축하받는다. 잠깐 동안의 달콤한 백일몽에서 결국은 깨어나야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마음껏 꿈꾸고 그 즐거운 에너지로 열정을 불 지필 수 있다면 말이다. 희망이 고문이 될지 당의정이 될지는 조련하는 우리의 몫이다. 그 화려한 달콤함을 즐겨보자. 신상우의 작품 속 ‘모던 피플’이 되어서 말이다.

신상우 작 Modern People-Delight, 91x65cm, Mixed Media on Canvas, 2015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Delight, 91x65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신상우 작 Modern People-Champion, 91x65cm, Mixed Media on Canvas, 2012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우 작 Modern People-Champion, 91x65cm, Mixed Media on Canvas, 2012

● 작가 신상우는 누구?

서원대에서 서양화와 홍익대에서 판화를 전공한 신상우는 홍익대 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립대(SUNY at New Paltz, U.S.A) 대학원 판화과를 졸업(M.F.A)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Hunter Show Exhibition(U.S.A, New York, Manhattan, The Gallery of Hunter), 200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구상부문 ‘특선’, 200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 부분 ‘문화관광부장관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심사위원(구상-판화부문)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21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제전을 비롯한 약 150회의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현대인의 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향후 터부시되는 욕구 등 주제를 확장시키는 작업을 모색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