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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수많은 존재들과 교감하며 진정한 자아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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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수많은 존재들과 교감하며 진정한 자아 회복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52)] 그 산에 내가 있다

산이 주는 고독에서 태고의 소리 들으며 내면 성찰

아름다운 풍경처럼 함께 모여 어우러지는 삶 표현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영하의 묵언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 세운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 문현미 ‘겨울산’


조인호, 俗離 속리-150326, 30x130cm, 순지에 수묵, 2015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俗離 속리-150326, 30x130cm, 순지에 수묵, 2015
우리는 왜 산을 오르는가. 번잡한 도시의 삶에서 항상 자기를 표현하고 주장을 내세우는데 지치면 우리는 아무 말이 필요 없는 산에 오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산 속에 묻어버린다. 그러면 아무 말도 없는 산은 우리를 감싼다. 비가와도 눈이 내려도 언제나처럼 거기 그 자리에 서 있는 삶. 우리는 조용히 말을 비우고 나를 비우기 위해 산을 오른다. 그리고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는 다시 내려와 번잡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을 비우는 것은 또한 살아갈 힘을 채우는 것이다.

조인호, 俗離 속리-150521, 50x162cm, 순지에 수묵, 2015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俗離 속리-150521, 50x162cm, 순지에 수묵, 2015
조인호는 산을 그린다. 현실의 삶과 예술의 삶 가운데에서 방황하던 시절, 산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았다는 작가는 주로 다니던 산을 화폭에 담았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산에 올라가다보면 처음에는 모두들 비슷비슷한 현실적인 이야기와 세상사는 고민들을 나눈다. 그러다가 점점 높이 올라감에 따라 말수도 적어지고 주변의 풍경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산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 산행이 계속되면 모두들 입을 다물어 아무 말이 없게 되고 산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들과 자신들의 발자국 소리만 느껴진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오르막길에 따라 고조되었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모두들 자신을 풀어 헤친다. 정상에서의 바람은 땀과 함께 나를 씻어준다. 하산하여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똑같은 매일 매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조금 전 산을 오르던 그 사람과는 조금 달라져 있다. 나는 좀 더 ‘내’가 되어 있다.

조인호, 0616북한산, 33x55cm, 순지에 수묵, 2006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0616북한산, 33x55cm, 순지에 수묵, 2006
조인호, 見性 - 구름다리에서 천황봉, 190x130cm, 순지에 수묵, 2010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見性 - 구름다리에서 천황봉, 190x130cm, 순지에 수묵, 2010
조인호의 산은 내가 산에 올라갈 때의 눈앞의 풍경과 느낌을 화폭에 그대로 되살리고 있다. 눈앞의 풍경은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달라진다.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조인호의 산은 하나의 산이지만 보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산의 공간은 시간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중첩된다. 또한 같은 위치에서도 눈을 돌릴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들을 그린다. 그의 산에는 그를 닮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정교한 산의 모습과 달리 흰 구멍, 빈 공간으로 남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 모습을 닮아있기도 하다. 우리의 세상도 서로 각자 다른 곳에 있고, 같은 일을 바라보더라도 서로 다른 시각과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기 전에 여러 시각과 위치가 다양하게 모여서 어우러지는 것이 삶이란 것을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우리의 시선들이 한 곳에 모여, 항상 거기에 있을 것 같은 산은 역동적인 모습을 구현한다. 이 산은 휘어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내가 가는 휘어진 길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는 그런 산의 모습이 한 화면에 쏟아질 듯, 춤을 출 듯 움직이고 있다. 나의 인생이 항상 같은 직선 길이 아니듯, 영원할 것 같은 산수도 영원히 같은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휘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조인호, 해후-불암산과 수락산, 190x520cm, 순지에 수묵, 2008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해후-불암산과 수락산, 190x520cm, 순지에 수묵, 2008
조인호, 해후-성산일출봉, 190x650cm, 순지에 수묵, 2008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해후-성산일출봉, 190x650cm, 순지에 수묵, 2008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와 물질로 구조화된 사회에 함몰되어 ‘진정한 자아’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수 혹은 자연에서 수많은 존재들과 교감하고 상호 교류할 때, 사회에 의해 강요된 존재에서 벗어나 본연의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여, 강요된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산수화는 존재에 대한 사유이자 삶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 나를 성찰하기 위해 산에 간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복잡한 이 사회에서 고독하기 위한 한 방법이기도 하다.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좋은 본성과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라고 노래했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체포되어 오랫동안 독방에 갇혔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아서 케스틀러(Arthur Keostler)는 그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내면이 자유로워지는 느낌, 홀로 있으면서 입출금 내역서 대신 궁극적 실재와 직면하는 느낌이다. 입출금 내역서와 그 밖의 사소한 것들은 또다시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다. 세상의 공간이 아닌 영적 공간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삶과 대화를 그리고 죽음과 대화를.”

조인호, 휘어진 산수-울릉도, 성하신당, 65 x 130cm, 순지에 수묵, 2009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휘어진 산수-울릉도, 성하신당, 65 x 130cm, 순지에 수묵, 2009
조인호, 휘어진 산수-울릉도01, 65 x 130cm, 순지에 수묵, 2009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휘어진 산수-울릉도01, 65 x 130cm, 순지에 수묵, 2009
일평생을 살면서 감옥과 같은 극적인 고독의 순간에 자신을 둘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산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산에 들어가면 멀리서 산을 보는 사람은 ‘저기 산이 있다.’라고 표현하지 ‘저기 누구누구가 있다’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산에 들어가면 산의 일부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작가의 설명처럼 우리는 산에서 우리 존재와 대화를 나누고 산이 된다. 고독 속에서 삶과 대화하고 죽음과 대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산이 된다.

조인호, 해후-처갓집 가는 길, 190x1300cm, 순지에 수묵담채, 2008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해후-처갓집 가는 길, 190x1300cm, 순지에 수묵담채, 2008
조인호, 바람결에, 2011이미지 확대보기
조인호, 바람결에, 2011

● 작가 조인호는 누구?

서울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석주문화재단 선정작가상, 송은미술대상전 선정작가상, 서울미술대상전 장려상 등을 수상했으며, 신화갤러리(홍콩), 한전아트센터(서울) 등에서 약 10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아트페어(홍콩) 및 경기도미술관, 조선일보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관에서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현실과 관념의 경계에 있는 산의 풍경을 담백한 색조로 그려내며,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