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전시를 보며 패션, 그리고 복식문화라는 것이 곧 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실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예술로서 미술적 요소로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이 곧 패션이다. 파리는 꾸뛰르이고 꾸뛰르가 곧 파리라는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의 말을 떠올리며 패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아름다운 드레스들을 보니 명화 속에서 그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옷자락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여인들이 떠올랐다.
2012년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L'impressionnisme et la Mode(인상주의와 패션)’라는 전시를 열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앙리 제르벡스(Henri Gervex) 등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속 의복문화를 들여다보고 실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입었던 옷들을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한 전시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는 과거 파리의 풍경이 드러나고 그들이 즐겼던 여가생활, 식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식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공간 속 여인들의 드레스 자락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그들의 작품은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다. 그 순간의 공기와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 속에서 가장 공들여 묘사되어 있는 것이 바로 패션이고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주의와 패션’ 전시는 그 시대를 기록한 미술로서의 인상파 그림들을 재조명했다.
복식문화를 반영하는 기록으로서 회화 작품과 함께 꼭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모드(Mode, 패션을 뜻하는 프랑스어) 판화’다. 패션 잡지의 시초인 19세기 모드 판화는 그 당시의 파리 모드를 그린 일러스트와 문화, 여가, 사교계 소식 등을 모두 넣어 석판화로 찍어 몇 장의 판화작품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화집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모드 판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화가들 역시 그림 속 모델의 포즈, 세련된 옷의 형태와 장식들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수준 높은 테크닉을 보유한 전문 화가들이 대거 제작에 투입되기도 했던 이 모드 판화는 한 장 한 장이 복식문화의 기록물이자 훌륭한 미술 작품인 것이다.
모네, 르누아르, 그리고 심지어 세잔까지 모두 모드 판화를 모티프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19세기 파리를 중심으로 한 미술의 중요한 주제는 모드, 그리고 모드를 즐길 줄 아는 세련된 여인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flower woman(꽃 같은 여성)을 디자인했다.” 크리스챤 디올이 남긴 말이다. 18, 19세기 프랑스 예술을 사랑하고 평생 여성을 우아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고민했던 디자이너…. 그에게 끝없는 영감을 준 것은 어쩌면 인상주의 회화 속 한 송이의 flower woman일지도 모른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