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을 찾아 웅크리고 있던 함박눈의 찌꺼기는 부지런한 태양을 피하지 못하고 풀어져 흙 위에서 번질거렸다. 그 자리를 건너다닐 때마다 햇빛은 튕겨 올라 겨우내 찬바람에 시렸던 눈동자를 긁어댔다. 불어난 햇빛의 무게를 바람은 이겨내지 못한 채 주저앉았고, 쪼그라들었던 땅은 바람과 섞여 흐물거리며 신발을 붙잡고 늘어졌다. 다시 봄은 왔다.
아침마다 물처럼 떼 지어 몰려가 햇빛처럼 학교에 들끓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곧 어른들의 행복이다. 아이들의 행복은 곧 이 나라의 가능성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시골 풍경에서 내일의 희망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가의 그것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클 수 없기에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봄이 다시 와서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아이들의 수다가 들리지 않는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지만 비현실적이지 않다. 3월의 아침 햇살에 물든 교복 입은 아이들의 행렬에서 봄기운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너무도 싱싱해 세상에는 봄이 하나가 아님을 일깨워 주었다. 봄은 다시 왔고 아이들은 먼저 푸르렀다. 우리는 매년 조금씩 또 하나의 봄을 잃어가고 있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