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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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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봄의 아이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2월의 고개를 넘자 해는 일찍 깼다. 그림자처럼 서 있던 거리의 나무들도 이른 새벽부터 해에 이끌려 나왔다. 나무들의 옆으로 차들은 차곡차곡 늘어섰고, 나무와 차들이 채우지 못한 공간으로 아이들은 쏟아져 나왔다. 제자리를 떠난 적 없는 나무와 정해진 길을 벗어날 수 없는 차들 틈에서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물처럼 이리저리 흘렀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한데 뭉쳐 강물처럼 콸콸거렸다가 부딪히고 흩어지면서 개울처럼 졸졸거렸다. 겨울이 시들어 갈 무렵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문을 걸어 잠갔던 학교마다 아이들은 다시 북적거렸다.

응달을 찾아 웅크리고 있던 함박눈의 찌꺼기는 부지런한 태양을 피하지 못하고 풀어져 흙 위에서 번질거렸다. 그 자리를 건너다닐 때마다 햇빛은 튕겨 올라 겨우내 찬바람에 시렸던 눈동자를 긁어댔다. 불어난 햇빛의 무게를 바람은 이겨내지 못한 채 주저앉았고, 쪼그라들었던 땅은 바람과 섞여 흐물거리며 신발을 붙잡고 늘어졌다. 다시 봄은 왔다.
봄 햇살은 산천의 머리 위에 고루 뿌려져 풀과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워낼 것이지만 사람까지 자라게 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다만 사람의 먹이로 길러지고 사람의 교육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의 웃음은 봄풀처럼 싱그럽지만 아이들의 심신이 봄풀처럼 저절로 생장하는 것은 아니다. 봄이 매번 다시 왔어도 세상은 봄의 방식으로 제풀에 부풀어 오르는 것은 아니어서 안전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경쟁력 있는 아이로 키우는 일을 학교는 보듬지 못했다. 그 일은 학교 밖에서 행해졌고 봄볕 대신 돈을 필요로 했다.

아침마다 물처럼 떼 지어 몰려가 햇빛처럼 학교에 들끓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곧 어른들의 행복이다. 아이들의 행복은 곧 이 나라의 가능성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시골 풍경에서 내일의 희망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가의 그것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클 수 없기에 아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봄이 다시 와서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아이들의 수다가 들리지 않는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지만 비현실적이지 않다. 3월의 아침 햇살에 물든 교복 입은 아이들의 행렬에서 봄기운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너무도 싱싱해 세상에는 봄이 하나가 아님을 일깨워 주었다. 봄은 다시 왔고 아이들은 먼저 푸르렀다. 우리는 매년 조금씩 또 하나의 봄을 잃어가고 있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