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선비들에게 음악은 또 다른 공부이자 수양이었다. 소위 사대부들의 필수 교양인 ‘육예(六藝)’는 ≪주례(周禮)≫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기예, 예의범절․음악․활쏘기․말타기․서예․수학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사대부들을 위한 기예나 기술이 아니라 유교적 인간을 완성하는 일종의 심신단련을 위한 방편이었다.
영산회상은 여덟 곡 또는 아홉 곡이 모여 한 바탕을 이루는 장대한 곡이다. 현악영산회상은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덜이,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 타령, 군악의 아홉 곡으로 이루어지는데 한 바탕을 연주하는 데 장장 50여 분의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길어서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하지만 탄탄한 구성과 맺음을 가진 영산회상은 수십 분의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입이 되는 상령산부터 마지막이 되는 군악에 이르기까지 박자는 미세하게 빨라진다. 템포(빠르기)를 국악에서는 ‘한배’라고 하는데, 이 과정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가장 느린 상령산은 그 우직함과 견고함으로 여유롭다. 그러다 중반부인 가락덜이쯤 되면 나도 모르게 신바람이 난다. 말미를 향해 달려가는 타령에 이르면 어깻짓이 절로 나고, 마침내 군악에 다다르면 힘찬 결말에 흥이 폭발한다. 강한 몰입도와 흡입력을 보여주면서도 정악이 갖고 있는 절제의 미를 잃지 않는 곡이다.
최근 봄을 맞아 풍류음악을 소재로 한 공연들이 찾아볼 수 있다. 3/13일 KOUS에서 열리는‘이수은의 영산회상’, 3월간 야간개장하는 고궁에서 이루어지는 ‘고궁 음악회’등 풍류음악감상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수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건 어떨까?
이주항 '국악은 젊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