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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의 말글산책]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에 떨고 있는 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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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의 말글산책]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에 떨고 있는 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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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이재경 기자] "지도부는 현역의원의 '생사여탈권'을 쥔 채 군림하고 있는 형국이다."
"들어온 '얼굴마담'에게 '생사여탈권'까지 내줄지 의문."

4·13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말들입니다.

여기에서 쓰인 '생사여탈권'은 이번 선거에 출마할 사람에게 후보공천을 해주거나 해주지 않을 권리를 말합니다. 이번 선거에 나서려면 우선 소속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므로 공천을 받으려는 후보에게는 생사를 걸어야 할 말큼 중요한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생사여탈권'이 아닌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으로 써야 맞습니다.

‘생사여탈권’은 말 그대로 살고 죽는 것과 주고 빼앗는 ‘생사여탈’에 권력’의 뜻인 ‘권’이 합한 말인데, 조어 구조상 매우 어색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됩니다.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에서 ‘생살(生殺)’은 살고 죽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죽을 사(死)자가 아닌 죽일 살(殺)자를 쓴 겁입니다. 죽일 수 있는(殺) 권리(權)라는 뜻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살’을 ‘사’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날 생, 죽일 살, 줄 여, 빼앗을 탈, 권세 권)이란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도 있고, 생명을 주고 빼앗을 수도 있는 권리, 즉 남의 목숨과 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뜻으로 아주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생살여탈권’이란 말이 나온 데는 유래가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사상가 한비자가 “신하를 감독하는 수고를 꺼려 신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기회나 관직을 주거나 빼앗는 권리 즉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중신에게 위임하는 군주는 결국 지배자의 지위를 빼앗기게 된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생살여탈권'이 들어간 예문을 들어보겠습니다.

"4년에 한번, 생살여탈권이 결정되는 지금, 국회의사당이 가장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그램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시청률에 대해 오해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은 부하들에 대한 생살여탈권이 있다.”

"특히 생살여탈권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던 절대군주에 대한 복종 여부를 기준하여 충역(忠逆)을 나눈 가치매김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무래도 중대한 잘못이다."
이재경 기자 bubmu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