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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실종사회…숨진 채 발견된 분당 예비군 실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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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실종사회…숨진 채 발견된 분당 예비군 실종자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는 인간의 몸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인류와의 전쟁 중 태양에너지의 공급을 차단당하자 인체에서 발생하는 열과 전류를 이용해 필요한 전력을 확보한다. 정신 활동을 할 때 인간으로부터 발생하는 에너지 양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 기계는 자궁에 감금된 인간들의 뇌를 매트릭스라는 가상 시스템에 연결한다.

시스템의 허구적 실체를 알아차린 인간들에 의해 매트릭스는 저항 받지만 그것조차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적 오류를 제거하고자 시스템 업그레이드 차원에서 기계가 짜놓은 상위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된다. 완벽한 것은 없는 법이어서 기계조차 예상치 못한 치명적 오류가 발생하고, 인간의 힘을 빌어 오류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기계는 인류와의 공존을 수용한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국가지표체계(index.go.kr)에 따르면 작년에만 1만9428명의 아이들이 실종되었고 그 가운데 210명의 아이가 돌아오지 못했다. 연령을 불문하고 8000여 명의 장애인과 9000여 명의 치매환자가 실종된 후 각각 88명과 21명이 아직 귀환하지 않았다. 성인 실종의 경우 지난해 신고건수가 5만9202건에 달했는데 관련 세부 수치는 어디에서도 찾아지지 않아 얘기할 수 없다.

작금의 세상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미래의 어느 날을 닮았다. 상상 속의 기계가 미래의 인간을 생존 수단으로 삼듯 현재의 인간은 인간을 자원으로 활용한다.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라는 용어는 목적의 자리에서 내려와 수단으로 전락한 인간의 현 지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용어는 사고를 반영한다. 사라진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있을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한 인간의 실종이 그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누군가의 선한 의도에 의해 실행된 적은 없다. 기계처럼 인간도 인간의 몸을 자원화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물화되었다. 기계가 인간의 몸 안에 내장된 정신 작용의 활성화를 통해 자원 활용도를 극대화한다면 인간은 오직 물화된 인간의 몸 자체에 천착한다. 온전한 인간의 몸은 생산 도구, 즉 노동력으로 이용되어 왔다. 인간의 노동력은 스스로를 매력적으로 상품화하는 데까지 투입되었으나 노동력의 과잉과 의술의 발달은 인간의 몸을 부품화하기에 이르렀다. 상품처럼 인간의 몸에 가격이 매겨지고 부품처럼 인간의 몸이 해체되는 끔직한 일상에서 한 인간의 실종은 매번 인류의 종말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타인의 몸 안에 스며 있는 영혼을 인정하지 않을 때 개인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인류의 현대사는 생생히 보여 준다. 그 장면들을 되뇌는 것은 고통스럽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댈 수 없고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은 참혹하지만 현실이다. 한적한 거리를 걷다가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유쾌한 느낌과 거리가 멀다. 경험보다 느낌이 우선한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치안이 잘 되어 있다는 나라에서,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해질 때마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소유하려고 애쓴다. 더 많은 돈이 보다 안전한 주거와 교육 환경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좌절을 전제하는 욕망은 야박하며, 야박한 사회에서 비정한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의 궁극이 '매트릭스'의 메타포다. 예비군 훈련을 마친 후 귀갓길에서 실종된 서른 살의 청년은 돌아왔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종의 개인적 사유가 아니라 사회적 이유다. 이 사회에서 실종은 곧 비극을 의미하며,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숫자의 확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