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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산업 무조건 막기보다 '절제의 힘' 길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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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산업 무조건 막기보다 '절제의 힘' 길러줘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98회)] 금지와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현대는 놀기 위해 일하는 시대
놀이에는 여가·도박요소 공존
지나치게 몰두 안하는 게 중요
재미있게 살려면 잘 놀 줄 알아야
오락·도박 이분법적 잣대 버리고
학교에서 '놀이 과목' 가르쳐야


사람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지에 따라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결정된다. 20세기 산업사회는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노동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만약 노동이 인간의 본질적 활동이라면 당연히 열심히 일하고 잘 일하는 것이 제일 인간답게 사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고 당연히 지양(止揚)해야 한다.

우리 문화는 전통적으로 일을 중시한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논다’고 생각한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대개 ‘놀고 있다’고 대답한다. ‘놀다’의 사전적 정의는 “재미있는일이나 놀이를하며즐겁게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취업을 하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사람은 사실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일’이 없고 당연히 ‘즐겁게 지내지’ 못한다. 하지만 직업이 없이 지내는 것을 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 우리 문화에서는 노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것이 된다. 그리고 보기 따라서는 놀지 않고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은 오히려 잘 못 사는 것이다. 어느 여가학자의 표현대로, “20세기에는 ‘일하기 위해’ 놀고 21세기에는 ‘놀기 위해’ 일한다.” 이런 의미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재미있게 일하고 열심히 놀아라(Work playfully, play seriously)”고 조언하는 유명한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융(Carl Jung, 1875~1961)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이다.

요즘 주위에서 “사는 재미가 없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36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의 질 수준을 ‘행복지수’로 환산한 결과, 우리나라는 하위권인 27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노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을 강조한 우리 문화에서는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최장시간(2193시간)을 기록하여 여전히 일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가 우리 삶에 즐거움과 활력을 준다는 것은 새삼 논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면 놀이는 장려해야 할 활동이지 억제하거나 금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놀이는 또한 지나치면 우리 삶 자체에 큰 해를 끼치는 활동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놀이에는 여가(餘暇)적 요소와 도박(賭博)적 요소가 함께 있다. 놀이의 이와 같은 이중성 때문에 조상들이 놀이의 해악을 막기 위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놀이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카지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하는 사람에 따라 오락이 될 수도 있고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우리 사회는 놀이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카지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하는 사람에 따라 오락이 될 수도 있고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새만금 지역에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 설치를 허용할지 여부에 대해 찬반 양론이 격하게 맞서고 있다. 설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새만금 지역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가 들어설 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이득을 강조한다. 이들은 향후 5년간 23조5000억 원의 경제생산이 유발되고, 8조9000억 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일자리가 23만 개 생기고 상시 고용되는 사람만 3만5000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반대하는 측의 주장에 따르면 카지노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카지노로 얻을 경제적 효과보다 크다. 이들이 인용한 한 연구에 따르면, 2009년 카지노, 경마, 복권 등 전체 사행산업의 매출 규모는 16조5337억 원이지만 도박 중독자들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78조2358억 원으로 추정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도박 중독 유병률(해당 지역 인구 대비 도박 중독자 수)은 5.4%로 주요 국가의 2배 이상이었다.

재미있게 살려면 잘 놀아야 한다. 그런데 놀이를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내기를 하게 된다. 그냥 노는 것보다 내기를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예를 들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심심풀이로 화투를 할 경우에도 내기를 하면 더 재미있고 몰두하게 된다. 화투뿐만 아니라 로또, 경마, 경륜, 게임 등 모든 재미로 하는 놀이에는 내기가 수반된다. 하지만 내기가 개입되면 놀이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즉, 놀이가 오락이 될 수도 있고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오락으로 본다면 여가활동으로 조장해야 하지만, 도박으로 본다면 억제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떤 활동을 무슨 기준으로 오락과 도박으로 분류하느냐 하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발생한다.

카지노와 같은 사행성 산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의견에는 다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성급하게 편들 수는 없다. 다만 이 논쟁에서는 더욱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이 논쟁에서는 어느 특정 놀이가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이익이 많은지 해악이 많은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특정 놀이가 오락인지 도박인지에 대해서만 논쟁을 하고 있다. 또한 그 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칠 이익과 손해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요소, 즉 놀이를 하는 주체인 사람에 대한 고려가 빠져있다. 하지만 동일한 행동도 하는 사람에 따라 오락이 될 수도 있고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카지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하는 사람에 따라 오락이 될 수도 있고 도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카지노뿐만 아니라 경마, 로또, 심지어는 음주와 주식단기매매 같은 활동조차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특정 활동 자체를 오락이나 도박으로 규정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활동을 건전한 오락으로 즐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여건을 개선하는 쪽으로 논의를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놀이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잘 노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지 않는다. 잘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놀이의 도박적 요인에 쉽게 빠진다. 다시 말하면, 놀이를 적당히 즐길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키우지를 못한 사람들이 중독이 된다. 옛말에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운다”라는 말씀이 있듯이, 술을 적당히 마시고 즐길 줄 아는 능력과 예절을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못한 사람이 알코올중독에 쉽게 빠진다. 술을 잘 마시는 방법에 대해서도 교육을 해야 하는 것처럼 놀이를 잘 하는 방법도 가르쳐야 한다. 당연히 학교나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잘 노는 방법과 놀이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르쳐야 한다.

노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본성을 법이나 물리적 수단으로 강제로 금하려고 시도한 모든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는 역사의 교훈에서 크게 배워야 한다. 효과적인 교육과 적절한 대안 없이 단지 법으로 금하면 불법적으로 한다는 것이 미국에서 한때 시행한 금주령이 실패한 이유이다. 연예인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해외에 가서 불법 도박을 하다 적발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최영(崔瑩, 1316~1388) 장군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유명한 말처럼, 황금이 모든 악(惡)의 근원일지라도 그것을 모두 없애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황금 자체는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한 황금은 돌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아무리 사방에 황금이 넘쳐나도 적당한 선에서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카지노가 있는 호텔에서 몇 날을 묵어도 카지노장에 발도 들여놓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해외까지 나가서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 해결은 마음의 힘을 키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학교에 ‘놀이’를 가르치는 교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카지노 등의 사행성 산업의 유치 여부를 논하는 것이 순서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