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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소한단상(小寒斷想); 신화, 현실, 그리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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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소한단상(小寒斷想); 신화, 현실, 그리고 현장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새해가 밝았다. 모든 이들이 두 손 가득 간절한 기원을 담아 바라보았을 붉은 해다. 하늘에 드리운 어둠을 붉은 입김으로 몰아내고 난 뒤 해는 계란 노른자처럼 물컹거리며 떠올랐다. 바다에서 산에서 저마다 솟은 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환호했다. 다시, 앞에 펼쳐진 새로운 날들을 축복하듯 해는 사람들 머리 위로 맑은 빛을 부었다.

어제는 소한(小寒)이었다. 소한에 얼어 죽는 사람은 있어도 대한(大寒)에 얼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우리나라의 소한 추위는 매서웠지만 올해는 새해 첫날부터 이어진 따뜻한 날씨로 포근했다. 강추위에 몸과 마음을 움츠리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때 아니게 포근한 날씨가 절로 반가웠다. 한낮의 햇볕 속에서 새해의 풍경은 생기를 발했다.
1월 1일을 기준으로 겨울은 절반으로 나뉜다. 11월과 2월이 각각 초겨울과 늦겨울을, 12월과 1월이 한겨울을 담당한다. 한겨울의 중심에 서서 새해 첫날은 하나의 겨울을 둘로 쪼갠다. 절반의 겨울에 묵은해의 아쉬움이 담기고 또 다른 절반의 겨울에 새해의 소망이 어린다. 달랠 수 있을지언정 부질없는 위로이기에 사람들은 아쉬움과 작별하고 가슴 속에 밝은 소망의 씨를 뿌린다.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해는 그 씨앗에 격려의 온기를 더한다. 남모르는 저마다의 싹을 틔웠을 사람들의 표정에 넘치는 생기에서 옛사람들이 시간을 열두 조각으로 나눈 이유가 읽힌다. 열두 달마다 다시 새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삶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는 고 신영복 선생의 말에는 시간 위에 세로로 무수한 선들을 내리그어서라도 혹독한 세상과 삭막한 인생살이 속에서 매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찾아낸 희망을 동력 삼아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지혜가 담겨 있다. 새해 첫날의 첫 태양만큼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을 선사하는 처음은 없다. 겨울날은 계속되지만 큰 처음을 만난 사람들에게 남은 겨울은 이미 지난겨울과는 다르다. 소한, 대한의 추위가 아니라 그 너머 입춘(立春)의 봄바람을 사람들은 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인간의 긴 유년기와 늙고 병들어 외로운 노년기는 한해의 처음과 마지막을 닮았다. 그러나 계절이 춥고 메마를지라도 사람의 시절까지 그럴 수는 없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알고 키워 갈 수 있는 사회, 최선을 다한 한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를 우리는 만들어가야 한다. 세상 속 겨울과 겨울 사이의 계절들을 계절답게 회복할 때 우리 사회의 겨울은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 올해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계절과 거리가 멀었던 우리 사회의 길고 차가운 겨울을 과거로 떠나보내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불공정한 사회, 불평등한 사회에서 성공은 소수의 신화가 된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신화가 된 성공은 신격화된 개인을 낳는다. 신격화된 개인은 그 자체로 우상이다. 우상은 다만 허상일 뿐이다. 허상의 실체는 초라할 때가 많다. 우리의 삶은 신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 있다. 신화가 발붙일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신화가 사라진 시대의 현실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은 저절로 돌아오지만 새로운 처음을 끊임없이 시작하지 않는 한 현실은 다시 신화로 오염된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싹튼 사람들의 소망 가운데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에 대한 갈망이 공통적으로 들어있었으리라 믿는다. 개인적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노력에 있듯,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은 오직 참여의 실천으로 실현된다. 올해가 특별한 해인 것은 첫 태양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저절로 자란 것이 아니다. 신화의 이면에서 우리가 뿌리박고 사는 현실의 참모습을 인식한 사람들이 현장으로 달려간 덕분이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운명도 다만 현장에 설 때 변한다. 그것이 현실의 정직함이다.

새해는 떠올랐지만 아직 정유년(丁酉年)은 오지 않았다. 병신년(丙申年)은 입춘 전날까지 계속된다. 정유년의 봄소식은 각별히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