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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4)] 동예왕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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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4)] 동예왕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았다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횡성 강림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청동거울, 국립춘천박물관이미지 확대보기
횡성 강림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청동거울, 국립춘천박물관


동예가 고구려와 같은 고대국가 단계로 성장하지 못하고 주변 국가에 복속된 이유 중 하나는 동예 지배세력의 정치력이 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예전(濊傳)에 따르면 “대군장이 없었다. 정시(正始) 8년(247)에 위(魏) 조정에 와서 조공하므로 불내예왕(不耐濊王)으로 책봉하였다. 왕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았다.”

즉, 동예는 처음에 왕이 없고 대군장이 다스리는 사회였다. 비록 3세기에 와서 중국의 필요에 의해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왕은 일반 백성과 구분되지 않은 곳에 살았을 정도로 정치력이 미약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