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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 '이보람의 피-빨강-피2展'…테러 재난 희생자 이미지 부각시며 무관심과 방관에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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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 '이보람의 피-빨강-피2展'…테러 재난 희생자 이미지 부각시며 무관심과 방관에 경종

1100, 2016. A total of 1100ml of paint made from pigment safflower oil turpentine etc on linen, 112x145cm이미지 확대보기
1100, 2016. A total of 1100ml of paint made from pigment safflower oil turpentine etc on linen, 112x145cm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서양화가 이보람의 화폭은 온통 붉은색이다. 그 붉은색은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 테러와 살육의 현장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재난과 사고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붉은 피다.

세계의 작동 원리를 '붉은 피' 키워드로 읽어내는 이보람은 붉은 피를 통해 무수히 희생되는 희생자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우리의 무관심과 방종에 경종을 울린다.
경기도 파주시 파주출판단지 내에 위치한 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는 STUDIO M17 5기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으로 오는 2월 25일까지 '이보람의 피-빨강-피2展'을 개최한다.

작가는 지난해 세움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최한 '피-빨강-피'에 이은 연작을 선보인다.

지난 전시에서 선보였던 붉은 그림 '1100'은 리넨 천에 총 1100㎖의 '물감을 섞은 의사 혈액'을 가득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평면 작품인 '시체들'에 그려진 희생자들의 키를 근거로, '소아발육표준치' 도표를 참고하여 나이와 몸무게를 추정한 다음, 6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체중의 8~9%로 추산되는 혈액의 양을 '피그먼트 홍화씨유와 테레핀 그리고 기타 보조제'를 섞어 만들어 천에 적신 결과물이다.

시체들 3, 182x227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16 이미지 확대보기
시체들 3, 182x227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16
이보람은 작가노트에서 "붉은 그림들의 붉은 색은 '피—>빨강—>피'를 순차적으로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가장 마지막 단계의 '피'다. 그림의 빨강은 단순한 빨간 물감이 아니라 누군가가 실제로 흘린 피임을 암시한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의 '피'의 거리가 좁혀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보람은 비판적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회화 속 희생자의 이미지와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방관자적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한다. 형식적으로는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방식과 내용적으로는 심적인 거리를 좁히는 방식을 취하며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전쟁, 테러, 재난 속 희생자의 이미지를 검색해서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맥락을 없애고 익명화·불특정화시키면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사실'로부터 떼어 온 이미지를 담고 있는 작가의 '희생자' '시체들' 연작에서 희생자나 시체처럼 보이는 명확한 '사진적 진술(photographic statement)'은 국적, 상황 모두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 장치를 통해서 특수성, 구체성이 제거되면서 익명화, 불특정화 되는 것이다.
시체들1, 140x140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14이미지 확대보기
시체들1, 140x140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14
작가는 클로즈업된 희생자의 이미지만을 배경으로부터 캡처해 온 뒤 인물을 하얀 석고상처럼 탈색하여 표현한다. 하얀색은 모든 사건들을 중성화(neutralization)시킴으로써 사건의 특수성을 탈각하고 불특정시키면서 희생자를 익명화시킨다. 더러는 히잡(Hijab)을 두르고 있는 여성을 통해서 민족과 인종을 가늠해볼 수 있기도 하나, 흰색의 천으로 싸여 있는 흰색의 주검들에게서, 또한 얼굴과 의복이 모두 흰색으로 탈색된 군상의 모습에서, 더 이상의 정보들은 사라진다.

미술비평가 김성호는 "최근에 작가 이보람이 천착하고 있는 '붉은 그림'은 형식적으로는 우리의 '하얀 망각'을 지우고 그 위에 '기억의 흔적'을 중첩시켜 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방관자나 공모자가 아닌 입장에서 처연한 사건의 진실 앞에 직면하게 만든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이것은 이전 회화가 천착했던 탈색을 통한 사실에 대한 '중성화' 혹은 '거리 두기'의 전략보다 여러 사실들이 함유하고 있는 본질에 대한 '개념화' 전략에 가깝다"고 평했다.

이보람의 붉은 그림은 너무나 선명해 '붉은 기억'처럼 보다 선명하고 보다 더 강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테러와 재난에 더 이상 희생되는 사람이 없기를 기원한다.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