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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58)] 함안의 도항리 말산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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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58)] 함안의 도항리 말산리 고분군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함안 말이산 고분군 발굴현장이미지 확대보기
함안 말이산 고분군 발굴현장


가야는 낙동강 하구의 김해를 중심으로 하는 금관가야, 낙동강 서안의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야, 낙동강 서안의 함안을 중심으로 하는 아라가야, 남해안의 고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가야 등으로 나누어진다.

가야는 대개 3000∼3500명 가량의 '소국(小國)'들이었으나, 김해의 구야국(狗邪國)과 함안의 안야국 (安邪國)은 2만∼2만5000명 정도의 '대국(大國)'이었다. 상호간의 규모와 서열에 따라 일정한 차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 구야국 신지와 안야국 축지가 가장 서열이 높았으며, 다른 소국들은 대외 관계에 있어서 그들의 결정을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안야국 동광의 산출지에는 황철광이 함께 산출되고 있어 동광의 개발과 함께 철광석도 채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안야국 당시에도 이러한 자원을 이용하여 주변지역과 교역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아라가야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전기가야연맹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낙랑·왜 등과의 교역이 활발하였다. 가야는 특히 뛰어난 철기문화를 한반도와 일본에 전파시켰으며 함안·진해·창원·칠원 중심의 아라가야권 세력을 형성하였다.

400년에 금관 가야가 고구려의 침략으로 힘을 잃은 뒤,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이후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안라국이 중심이 되어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대가야와 아라 가야도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561년(진흥왕 22년)에는 남쪽의 안라국을 흡수하고 신라의 영토임을 나타내는 창녕비를 세웠다.

가야의 여러 나라 중 삼한시대부터 6세기 중엽까기 지속적으로 그 위상을 유지한 나라 안라(安羅). 안야국(安邪國)이었던 현재 함안에 남아있는 도항리 말산리 고분군은 실제로는 1000기가 넘는 고분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아라가야의 고분문화는 전기, 중기, 후기의 3시기로 나눌 수 있고, 중기의 무덤 양식과 유물의 특징에 따라 다시 세분화 된다. 중기는 아라가야의 전성기로서 서기 5세기대의 약 100년 동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