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배장은의 재즈다이어리(8)] 보이후드, 텍사스 그리고 재즈

공유
0

[배장은의 재즈다이어리(8)] 보이후드, 텍사스 그리고 재즈

졸업, 입학, 새학기 시즌에 우연하게 보이후드(Boyhood)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한 소년, 소녀의 성장기를 12년에 걸쳐 만든 놀라운 작품이었다. 아,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고 우리가 이렇게 자라온 것이구나. 나도 이렇게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 영화였다.

내성적인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안에 나오는 아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장(?) 혹은 발전 과정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철모르는 어린 시절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아 길렀으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음악을 좋아하고 철없고 생활력 없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결국은 헤어지게 되었고 두 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의 새로운 가정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자라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아버지는 변함없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지켜보게 되고 그것이 아이들이 자라는데 큰 힘이 된다.

어머니는 참 엄청난 고생을 한다. 두 아이를 양육하고 공부를 하며 보다 나은 직장을 얻으려 노력를 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아이들의 아버지는 점점 아이들의 어머니가 바라는 그런 안정적인 가장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만약 그 두 사람이 이혼을 하지 않고 참고 살았다면 여자는 세 번의 이혼을 거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었을까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의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한 텍사스(나는 텍사스에서 거의 10여년을 보냈다)의 낯잊은 집들과 거리, 텍사스만의 분위기와 가정들이 보여서 반가웠다.

배장은의 '모짜르트 빅밴드'이미지 확대보기
배장은의 '모짜르트 빅밴드'
8여년을 피아노주자이자 음악감독으로 일했던 게인스빌(Gainsville)에 위치한 침례교회(Baptist Church)와 명절이면 따뜻한 선물과 저녁 식사 초대를 해주셨던 정겨운 할아버지 할머니들. 처음엔 텍사스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하시는 것을 70~80%는 알아듣지 못하였는데, 동양에서 온 꼬마 피아니스트를 참으로 아껴주셨다. 내가 사는 덴톤 (Denton)에서 40~50여분 하이웨이를 질주해야 가는 곳인데 주일마다 8년 동안 열심히 다녔다. 가다가 한번은 하이웨이에서 엔진이 정지했다. 와! 사건이었다. 차를 바꾼 지 몇달 안에 생긴 일이라 너무도 황당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치지는 않았지만 외관이 좋은 선루프 달린 차에 홀려서 겁도 없이 혼자서 중고차 매장에 가서 멍청하게 역시 즉흥적으로 직감에 의해 산 게 말썽이었다.

엔진이 썩었는지 엔진 벨트가 고장났는지도 모르고 샀으니 보기좋게 벌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가끔은 스컹크나 퍼슴이라 불리는 야생동물들이 차에 치어서 터져있는 하이웨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엄마를 목놓아 불렀다. 스컹크는 정말 냄새가 고약하다. 역시 외국에 있어도 부를 사람은 어머니인가 보다. 전화를 걸었더니 당장 "경찰 불러~~~~"를 외치셨는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내가 살아 있는 게 실감이 났다.

그 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삭막한 오지의 텍사스 하이웨이에서 엔진이 터진 걸 생각하면 하하 이 정도 쯤은 괜찮은 거야, 라고 스스로 토닥거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꽃피는 사월을 달려보자!
배장은 재즈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