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요시미즈 츠네오(由水常雄·66)라는 일본 제1의 유리 공예가가 쓴 「로마 문화 왕국-신라」(新潮社)란 책은 317쪽 분량의 원색 사진이 많은데, 띠에 써놓은 선전문이 이러하다.
"고대사(古代史)가 바뀐다! 동아시아에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로마 문화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신라(新羅)다! 출토유물과 신발견의 고대 기록사료 등 실재(實在)자료에 의하여 신라의 수수께끼를 해명한다."
이 책에서 주로 인용하고 있는 자료는 1973년과 이듬해 경주에서 발굴한 천마총(天馬塚·발굴 당시는 155호 고분)과 황남대총(皇南大塚·발굴 당시는 98호 雙墳) 출토 유물이었다. 저자 요시미즈씨는, 신라가 중국으로부터 한자, 불교 등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6세기 전까지는 북방 초원(草原)의 길을 통하여 중앙아시아 및 중동, 그리고 흑해·지중해 연안의 로마 식민지와 물적·인적 교류가 왕성했고 이런 흐름을 타고 로마의 문화(유리 공예품, 황금칼, 장신구 등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까지)가 신라에 들어왔다는 대담한 주장을 했다.
고구려, 백제는 중국 문물을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유독 신라만은 6세기 중반까지 중국의 선진문물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신라는 초원의 길을 통하여 서쪽 세계와 교류하고 있었고 이 길을 통하여 중국에 못지 않은 선진 문물을 수입하였으므로 굳이 중국에 기댈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 문화를 수입하고 있던 신라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문물이 선진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라는 이웃 백제, 고구려가 중국의 정치·경제제도를 도입하고 중국문화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여도 이에 동조할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자국의 정치제도나 경제시스템, 또는 문화 전반에 걸쳐서 자신을 갖고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내용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고분의 출토유물을 분석하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우리 고고학자들이 스키타이-흉노 초원 문화의 결정체라고 보는 신라금관이 기본적으로는 그리스-로마계통의 왕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라 적석목곽분에서 나오는 수많은 금팔찌, 금귀걸이, 보금, 유리공예품 등을 분석하여 로마에서 온 것이든지,
로마적인 것이 중앙아시아-초원 루트를 통해서 신라에 들어온 로마문화 원류의 유물이란 의견을 내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