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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 찾아가는 작가 16명의 '나의 초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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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 찾아가는 작가 16명의 '나의 초상展'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이명세 한상호 감독 등 총 16명 참가

이명세_M+문신조각 '하늘을 나는 꽃'이미지 확대보기
이명세_M+문신조각 '하늘을 나는 꽃'
숙명여자대학교 창학 111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25일까지 문신미술관 문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나의 초상展'은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가는 열여섯 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는 나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스스로를 멀찌감치 바라보고자 한다. 주인공의 표정을 읽은 관객들이 곧이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시작할 때의 방향과 끝이 어딘지를 모를 물결 같은 영상미학의 공간이 펼쳐진다. 전시는 세 개의 기억에 대해 보여준다. 첫 번째 기억은 이명세 감독의 200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감독상 수상작 'M, 엠'의 영상으로부터 나온 36개의 스틸 컷, 문신의 조각 '하늘을 나는 꽃'에 비춰진 영상 등을 다룬 '기억의 퍼즐을 맞추다: 문득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두 번째 기억은 2006년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 상영되었던 한상호 감독의 'The puppet’s dream, 꼭두각시의 꿈'과 영상 속의 마리오네트를 설치한 '나의 섬: 나를 제한하고 있는 테두리'다. 세 번째 기억 '타인의 군상-14인의 작가 초상'은 14명의 작가가 '나의 초상'을 주제로 예술가의 각기 다른 자기표현을 한 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벽화 작업이다.

이명세, 영화M 설치, 전시풍경이미지 확대보기
이명세, 영화M 설치, 전시풍경
'기억의 퍼즐을 맞추다: 문득 깨닫게 되는 것들'; 이명세는 '영화의 빛은 그저 사물을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은 슬픔, 기쁨, 두려움 등의 모든 감정이 깃들어 있다.'라고 말한다. 나를 추적하기 위해 그가 찾아낸 기억의 장면들은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 어둠의 끝을 알리는 빛이 태동하는 순간이기를 바라고 있다. 무지개와 같은 자신의 초상이 바로 영화이다. 때때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스스로의 기억을 포착한다.

'나의 섬: 나를 제한하고 있는 테두리'; 한상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문명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모든 생물은 그들만의 시간이 있으며 긴 시간 속에서 사회와 문화 생명체들과의 관계 형성으로 역사를 만들어 간다. 전시 영상은 잊혀지거나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복원이며 함축된 내면의 반영이다.

'타인의 군상-14인의 작가 초상'; 14명의 작가들에게 전시장 벽에 자신을 표현하는 그림을 요청했다. 벽면 한 부분의 위치부터 색, 형태, 재료, 상징과 표현으로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매번 선택이 따른다. 14개의 각기 다른 이미지와 타인의 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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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영화M 설치, 전시풍경
손으로 그리는 붓의 흔적들은 작가의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가끔 선이 선을 따라가고 면과 면이 만나면서 작가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의도에 관계없이 그것은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나는 작업이며 또 다른 나의 내면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다. 두 영화감독의 영상과 열 네 작가의 군상으로 관람자와 함께 나를 찾는 여행이 시작된다.

전시작품은 1. 이명세(영화감독), 영화 'M'의 영상 1편, 문신 조각 + 'M'의 영상 1편, 영화 'M' 스틸 컷 36컷 2. 한상호(다큐멘터리 감독), 영상 'The puppet’s dream' 1편, 다큐멘터리 속 마리오네트 설치 3. 십사인(오화진, 홍샛별, 장민정, 홍경림, 유인선, 최휘환, 라 현, 허현숙, 유태욱, 이태경, 박보라, 정상수, 한순란, 류희정)의 벽화 타인의 군상이다.
한상호, 마리오네트 설치, 전시풍경이미지 확대보기
한상호, 마리오네트 설치, 전시풍경
이명세의 영화 '형사' 중, 소란하게 싸움이 일어난 장터를 아름답고 고요한 한 컷으로 담아낸 장면이 있다. 정지 시켜놓고 멀찍이 보고 있으면 마치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다. 어느 한 곳 빈틈이 없는 아름다운 장면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장 추악한 욕심이 부딪히는 난리북새통이다. 역설적 고요함으로 빠지다 보면 곧 내 속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게 된다. 이것이 영화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명세 감독의 말 걸기 수법이다.


이명세 감독에게 지금까지 만든 영화의 장면 중에서 '이게 나야! 나의 초상이야!'라고 생각되는 장면을 물었다. 이 감독은 망설임도 없이 "M"이라 답했다. 미술관 팀이 음소거 상태로 본 M, 그 안에 있는 색들을 분류해서 정지된 장면들로 정리되었다. 흑백이 주는 어지러운 추억, 너무나도 현실적인 장면 속 초록, 마음을 치료하는 만다라와 같은 노랑 등의 색들을 줄 세워 보니 모자이크처럼 각각의 장면이지만 동일한 감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사건이나 시기에 대한 기억은 매우 개인적이고 사소하다. 정지 화면에서 생각지 못한 조형성 또는 미적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처럼 어느 순간 포착되는 추억은 슬프고 아픈 것이라도 찬란하다.

한상호, The puppet's dream, 스틸컷
한상호, The puppet's dream, 스틸컷
감독에게 M은 '빛나는 어둠'에 대한 스스로의 추적이다. 시는 무한화서라고 말하는 시인처럼 시와 같은 추상과 백일몽과 같은 영상 형식으로 감독은 자신의 초상을 그려내었다. 초록이 빛나는 M의 한 장면은 현실적 대화와 감정이 오가는 일식집이다. 이 장면에서는 삼면화(세폭제단화)와 같은 화면의 구도를 볼 수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며 가운데 가장 핵심을 이루는 이야기를 담는 삼면화의 기법처럼 세 개의 초록 벽과 그 가운데 하이쿠 같은 한 떨기 꽃과 거울이 있다. 거울로 비쳐진 일상들은 자신의 다른 시간들이 반복되는 만화경 속의 추억들이며 그것은 어떤 이의 역사이고 초상이 된다.

한상호는 'The puppet’s dream, 꼭두각시의 꿈'의 영상에 등장하는 마리오네트를 설치한다.

(여성의 목소리) 나는 당신을 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맞아?
(남성의 목소리_이후 계속) 나는 타인의 섣부른 규정과 속박의 통속이 싫어 가면을 쓴다. 그러나 가면에도 본질의 진실함은 새어나오기 마련이어서 결국 가면은 또 다른 나의 얼굴이 된다. 나는 매일 나를 쓰고 벗는다. 일요일과 월요일을 지나는 깊은 잠 속에 묻어둔 일곱 개의 얼굴, 당신이 알고 있는 나는 나인가?

'A String-Puller, 줄을 당기는 사람'; 자기를 다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은 외롭다. 자기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은 꺼려진다. 소통은 어렵고 오해는 쉽다. 가면을 쓴 내가 가면을 쓴 인형을 조종한다. 줄에 매여 있는 가면 인형은 또 다른 자아가 되어 세상으로 나간다. 누군들 줄에 묶여있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줄을 조종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는 타인의 규정, 기준대로 나를 움직이지는 않는다. 나는 가족과 사회가 바라는 모습으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며, 나를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타인의 군상, 전시풍경이미지 확대보기
타인의 군상, 전시풍경
'My Island, My Boyhood, 나의 섬; 나의 소년시절'(파도소리) 나는 섬에서 나고 자랐다. 섬은 나의 보금자리이자 나의 감옥이었다. 나를 제한하고 있는 섬, 나의 테두리. 나는 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먼 곳을 응시하는 눈과 자유의 영혼을 가진 나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또 다른 섬이 되었다.

'My Destiny, 나의 운명'(오르골 소리); 내 손에 줄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인연의 줄로 세상에 매어져 있다. 그 줄을 끊고 먼 곳으로 떠나고자 하는 열망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언제나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현재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은 미래의 내가 떠날 곳이다. 불안이 나의 영혼의 쉼터이다. 나는 바람처럼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보고 담고 싶다. 삶은 어떤 것을 추구하고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결국 허무하게 끝날지라도 도전하는 자체가 의미 있다. 자유의 영혼을 가졌으나 줄에 묶여있는 마리오네트의 슬픔이 계속될지라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영상 속 나레이션은 파도와 같이 울렁인다.

한상호 감독의 작품은 초상에서 느낄 수 있는 외관의 이미지를 내면으로 끌어들여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든다. 영상 속의 꼭두각시와 이것을 조종하는 연기자는 자기 자신을 상징한다. 거울의 반영인 것처럼 줄에 묶여 있는 꼭두각시와 조종자는 모두 흰 가면을 쓰고 있다. 가리고 싶은 얼굴 때문에 그들의 손은 더욱 주목된다. 보금자리이자 감옥 이고 나를 제한하는 테두리인 섬은 물리적인 섬이면서 자신을 이루는 영혼의 섬이기도 하다. 꼭두각시의 줄이 팽팽하게 긴장을 할 때 그 움직임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부드럽고 설득력이 있다. 삶의 모순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은 조각가 문신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2004년 5월 10일에 개관하였다. 문신미술관은 작가 문신의 조각, 드로잉, 석고원형 등 총 2,3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문신을 비롯한 근현대 작가의 작품을 발굴, 연구,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문신미술관이 제1회 오프 앤 프리 영화제 개막식, 핀란드 영상작가의 영상전에 이은 영상과의 만남이다. 현대미술의 한 분야에 진입한 영상과 벽화와의 만남을 통해 소중한 나의 과거와 만나는 체험은 참신한 기획의도이며 바람직한 미술작업이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