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몬 시대에 시베리아, 한반도, 폴리네시아로부터 일본으로 들어온 도래인들은 기원전 3세기 경부터 일본 열도 각지, 특히 유래지에서 가까운 규슈 지역에 씨족 단위의 촌락을 형성하고 중국을 비롯한 대륙 지역의 문화를 일본으로 전래시켰다.
기원전 5세기 중반에 대륙에서 큐슈 북부로 수도경작 기술을 중심으로 한 생활 체계가 전해지고, 큐슈, 시코쿠, 혼슈로 전해졌다. 초기의 논은 후쿠오카 시 하카타 구에 있는 이타즈케 유적과 사가 현 가라쓰 시의 나바타케 유적과 같이 큐슈 북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야요이 시대의 시작이다. 조몬 시대 시대후기부터, 대규모 관개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밭에 심는 벼의 재배(陸稻耕作)는 있었지만, 야요이(彌生)시대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관개 시설을 사용하는 경작이 도입되었다(水稻耕作).
야요이 시대에는 특히 수도경작이 도입되어 곡물의 비축이 가능해지면서 잉여작물의 생산과 축적이 발달하여, 이것이 부(富)에 연결되어 가지는 것과 가지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서 빈부의 차와 상하관계가 생겨났다.
또한 벼농사 기술의 도입에 의해 개간과 농업용수의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어 집단의 대형화가 진행되었다. 대형화된 집단 사이에서는 부와 경작지, 수리권(水利権) 등을 둘러싸고 싸움이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싸움을 통한 집단의 통합, 상하관계가 진전된 결과 각지의 조그만 나라가 생기고, 1세기 중반에 한위노국왕의 금인(漢委奴國王印)을 후한으로부터 하사받고, 3세기 중엽에 야마타이코쿠의 여왕 히미코가 위에 조공을 바치고 야마토의 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금인을 받게 되었다.
글/사진 김경상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