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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문명권과 산동 대문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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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문명권과 산동 대문구문화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89)]

중국 대문구문화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뚜껑있는 삼족솥, 산동박물관
중국 대문구문화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뚜껑있는 삼족솥, 산동박물관
산동 지방의 소국들은 고조선 건국 무렵 선진적인 문화를 가지고 이 지역에 정착하였으며 사회학적 용어를 빌자면 하위 문화(sub-culture)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세분히 알아보면 양동신은 대문구문화 초기는 '태호(복희씨)'족, 주기는 '소호(금천씨)'족, 우기는 '전욱'족의 문화라고 보았으며 당란은 대문구문화는 '소호'족이 창조했으며 '태호'족의 도읍은 진(陳)이고 '소호'족의 도읍은 산동성 곡부이므로 '태호', '소호'가 모두 동이계지만 대문구문화는 '소호'족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고문헌들은 산동·산서·하북 지방에 동이계 문명권이 자리잡고 있었고 주(周)가 건국되면서 화하(華夏) 문명권과 충돌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갈등은 춘추시대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B.C 7세기에 제나라 환공이 관중을 등용하면서 제는 북으로 산융, 영지, 고죽등을 세압하고 산동 지역의 소국들인 수, 서, 래 등을 정벌하면서 이들 '고조선문명권'의 소국들은 중국 문명권에 동화되어 가게 된다. 제나라에 쫒긴 고조선 사람들은 만주와 한반도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전의 고조선 소국은 대단히 강성했다. B.C 1000년경 산동 지역의 서국은 전성기에 동이족 제후 36국의 조공을 받으며 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현재 중국학계는 종래의 '앙소문화'와 '산동문화'가 대체로 평준했는데 산동반도에 동이족의 '대문구문화'가 일어남으로써 산동 지역이 중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고대 문명을 창조했다고 설명하면서도 그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다.

B.C 700년 이전까지 산동·산서·강북 지역에 고조선문명권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화하문명권과 어울리어 살면서 중국 고대 문명의 형성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