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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원전으로 가는 길③] 고준위방폐장, '제2의 경주방폐장'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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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원전으로 가는 길③] 고준위방폐장, '제2의 경주방폐장' 안 되려면?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위치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이미지 확대보기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위치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글로벌이코노믹 오소영 기자]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문을 닫으면서 핵폐기물 처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고준위인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쓰고 남은 방사성 폐기물로 플루토늄과 세슘 등 맹독성 물질을 포함해 철저히 격리 보관돼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관리를 위해 12년간 용지 선정을 완료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성급한 용지 선정으로 안전성 논란을 낳은 '제2의 경주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12년간 용지 선정? 사실상 '불가능'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발표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일정. 이미지 확대보기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발표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일정.

17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방사성 폐기물 누적 발생량은 사용후핵연료가 44만4535다발이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5월 기준 9만1811드럼에 이른다.

원전에서 사용된 작업복, 장갑 등이 포함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지난해 8월 지어진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고준위인 사용후핵연료는 각 시설에 임시 보관하고 있으나 시설의 저장용량이 2019년부터 초과된다.

이에 따라 과거 정부는 안전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열었다. 위원회는 1년 8개월간의 논의 결과 2015년 6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최종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은 유일한 중수로형인 월성원전이 2019년에 초과한다. 경수로인 한빛원전은 2024년, 한울은 2026년, 고리는 2028년, 신고리는 2036년, 신월성은 2038년에 초과하게 된다.

위원회는 권고안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해 보관시설과 최종처분시설 등을 모아 건설하도록 권고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용지를 선정하고 2051년까지 시설을 짓는다. 월성원전에 있는 건식저장시설의 설계수명이 연장돼도 2051년에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권고안을 토대로 정부는 지난해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처리장이 들어설 지역은 향후 12년간 조사와 공모 등을 통해 정하고 2035년께 중간저장시설을, 2053년에 영구처분시설을 가동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지나치게 성급한 계획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하 300~500m 내에 들어가 지하수 유속이 빠르지 않은지, 암반이 단단한지 등을 살펴야 한다”며 “안전한 지역을 찾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지적했다.

위원회의 권고안에 나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용지에 관한 기술규준'을 보면 처분장은 안정된 기반암에 위치해야 해고 지하수의 유량과 유속이 가능한 한 작아야 한다. 까다로운 입지 조건을 고려한다면 12년의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주민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2002년 네바다주 유카 산을 영구처분시설 후보지로 정했으나 지역 주민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0년 오바마 정부가 재검토에 착수한 끝에 2048년까지 심지층 처분장을 짓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으며 입법 과정에서 용지 선정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 안정성 최우선 원칙으로 사용후핵연료 재검토해야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공약으로 냈다. 전문가들은 재검토 시 안전성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삼고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 교수는 “안전한 지역을 찾아 주민들을 설득하며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천천히 돌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성공 사례로 꼽히는 스웨덴은 1984년 원자력 사업을 제정했다. 지질이 안전하지 않으면 처분장을 짓지 않는 조건을 달아 조사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4년간 예비조사를 거쳐 1990년대부터 8개 지역을 대상으로 처분 용지 타당성 조사를 시행했다. 영구 처분 용지는 2009년에야 선정됐다.

반면 지난해 준공된 경주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은 2005년 3월 용지선정위원회를 출범시켜 그해 11월 용지를 선정했다.

용지 안정성 평가결과는 일주일 만에 끝났으며 조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 결과 활성단층과 하루 1000t의 지하수 유출 등으로 안정성 논란이 일며 경주 방폐장에 대한 지역 주민의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처장은 ‘가역성의 원칙’을 강조한다. 양 처장은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문제가 생기면 전 단계로 돌아가는 가역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양 처장은 “독일은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던 중 드럼통 개수가 늘어나 암반이 약해지자 폐기물을 들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