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유적에서는 마을 주위를 감싼 거대한 도랑(環濠)이 알려져 있는데, 이 도랑의 가장 큰 기능은 마을의 내부를 구획하거나 방어를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울산 검단리‧창원 남산유적 등이 그 기원에 해당한다. 그런데 도랑이 아닌 목책을 세워 마을을 방어한 유적은 송국리가 유일하다.
한편 이 목책을 파괴하고 만들어진 도랑(溝)의 일부도 확인되는데, 원형 집자리가 군집을 이룬 마을을 둘러싼 시설로 알려졌다. 이로써 송국리유적은 방형 집자리가 중심을 이룬 마을일 때는 목책, 원형 집자리가 중심이었을 때는 도랑(環濠)으로 방어시설을 구축하였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이 가설은 송국리유적의 변화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의 근간을 이루었다.
김경상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