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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가뭄의 거리에서 폐기물과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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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가뭄의 거리에서 폐기물과 잡생각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시간은 직선으로 공간 위를 흘러간다. 우리의 공간에서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끌고 앞으로만 달려간다. 일직선의 시간 위에서 공간은 주기적으로 모습을 바꾸며 물질을 만든다. 생명은 물질을 먹어 에너지를 얻으며 생왕쇠멸(生旺衰滅)한다.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변화를 만들고 변화하는 공간이 물질이자 생명인 우리의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을 이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던 영화 ‘매트릭스’ 속 대사처럼 자연의 법칙은 우리 모두의 끝을 예비한다. 시간은 우리를 공간에 던지고, 공간에 머물다 공간을 떠나 우리는 다시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한결 같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시간이 정해 놓은 순서에 순응하며 모습을 바꿔야 할 공간이 왜곡되는 현상을 보인다.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있다. 땅 위의 물기를 모조리 빨아가면서도 하늘은 비로 되돌려 주지 않고 있다. 태양은 연일 대지를 지져댄다. 시간과 공간, 물질의 흐름 어딘가에서 리듬이 깨어진 것이 아닐까. 바람이 선선해진 휴일 저녁, 하릴없이 거리를 튕기며 지나가는 시간을 따라 거닐며 부질없는 생각들을 이어갔다.
자연과 달리 인간이 만들어내는 많은 물질은 생명을 키우지 못한다. 실상은 그와 정반대다. 하루 중 우리가 소비하는 온갖 것들은 생명을 키우기는커녕 생명을 죽인다. 매일 공간 위에 던져지는 죽음의 물질들은 어디론가 실려가 재활용과 정화 과정을 거쳐 되돌아오지 못하면 폐기된다. 환경부 자료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폐기물은 ‘쓰레기, 연소재, 오니, 폐유, 폐산, 폐알칼리 및 동물의 사체 등으로서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 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자연도 필요로 하지 않을 이 물질은 자연 어딘가에서 매일 폐기될 것이 분명하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서 폐기물 발생량을 조회해 봤다. 전국에서 매일 발생되는 폐기물의 양은 지난 2015년 현재 기준으로 1t 트럭 41만8222대 분량이었다. 통계치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6년의 일 17만5334t 이후 매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세부적으로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일 발생 총 폐기물의 96.7%가 일반폐기물, 나머지가 지정폐기물이었다. 다시 일반폐기물의 87.3%를 사업장폐기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활폐기물이 적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실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매일 1t 트럭 5만1247대의 생활폐기물이 어딘가에 산처럼 쌓였다 땅 속에 묻히고 소각되어 대기 중에 사라진다는 뜻 아닌가.

자연의 순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인간 문명의 폐기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공간은 기존과 다른 방식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구의 역사는 생명체들이 환경에 보다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진화를 거듭한 사실을 증명한다.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공간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다. 환경은 생명체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폐기물의 양 앞에서 그 노력이 무한정 가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상호작용이 가능하지 않은 물질의 홍수 앞에서는 공간의 능력도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공간 자체가 유한하지 않은가. 땅과 바다에 퍼부어지는 가공할 파괴력의 대량살상무기들은 차라리 논외로 하자.

왜곡된 공간 위에서는 결국 시간도 뒤틀릴 것이다. 지구 위를 흐르던 시간이 어느 순간 지구를 다른 공간으로 인식함으로써 우주의 시간이 인간이 짜놓은 시간의 틀로부터 괴리하기 시작한 것이라면, 지금 우리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가뭄이 이해가 된다. 어쩌면 지구를 원래의 공간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시간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동식물들, 그리고 대지의 목이 타들어가는 6월의 가뭄 속에서 대기근이 온다고 단언한 어느 도시재난 생존전문가의 책이 떠올라 돈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이었다. 하지만 어떠랴. 잡생각들은 쓰레기처럼 길가에는 쌓이지 않을 것이니.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