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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M' 출시첫날부터 '흥행가도'… 대박 행진의 마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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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M' 출시첫날부터 '흥행가도'… 대박 행진의 마력은?

[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XXXX XX겜.” “노 잼임. 하지마세요.” “중국형 양산게임.”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MMORPG ‘리니지M’에 달린 악플 중 극히 일부다. '리니지M'은 출시 당일부터 서버 불안정으로 인해 접속이 지연되는 등 악재를 안고 시작했다. 유저들의 불만은 하늘에 달했고 엔씨소프트를 향해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출시 첫날 가장 욕을 많이 먹은 게임이라고 불러도 심한 말은 아니다. 그런데 ‘리니지M'은 출시 첫날 게임 이용자수 210만명, 일 매출 107억원이라는 국내 모바일 최고 기록을 세웠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PC 플랫폼 ‘리니지’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게임 시스템, 여전한 2D 그래픽 등 분명 기술적으로 ‘리니지M’은 시대를 역행한 작품이다. PC게임 못지않은 화려한 그래픽을 뽐내는 모바일 게임이 즐비한 국내 게임 시장에서 이단아 ‘리니지M’은 생존을 넘어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욕하면서도 하게 되는 그 마력, 대체 어디서 나올까.

'리니지M' 시네마틱 무비.이미지 확대보기
'리니지M' 시네마틱 무비.


◇압도적 기대감


‘리니지M’은 출시 전부터 게임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4월 12일부터 6월 18일까지 사전예약자는 550만명을 넘었다. 국내 모바일 게임 역사상 최고 수치다. 게임 좀 안다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신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월 16일 시작된 캐릭터 사전 생성 이벤트는 불과 8일 만에 100개 서버가 마감됐고 20개 서버를 추가로 열었지만 이마저도 금세 꽉 찼다. ‘리니지M’에 거는 유저들의 기대를 방증하는 수치다.

출시되자마자 7시간 만에 애플 앱스토어 최고 매출 1위와 인기 게임 1위에 오르더니 2일 만에 구글 플레이 최고 매출과 인기 게임 1위까지가 가져갔다. 양대 오픈마켓 석권이다.

'리니지' 공성전 모습. 유저들이 공성전을 준비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추고 있다.
'리니지' 공성전 모습. 유저들이 공성전을 준비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추고 있다.

◇‘리니지M', 리니지를 스마트폰으로


출시 전부터 유저들이 ‘리니지M’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리니지가 스마트폰에서 돌아간다.’

‘리니지’는 여러 의미로 전설적인 게임이다. 공성전 등 대규모 전투 시스템, 혈맹을 통한 끈끈한 커뮤니티, 게임 내 경제시스템 등 이제는 MMORPG의 기본 문법이 된 시스템들이 리니지를 통해 완성됐다. 한 자루에 수천 만원 이상에 거래되는 ‘진명황의 집행검’으로 대표되는 아이템 현금거래는 ‘리니지’에서 새 지평을 열었고 게임 내 재화를 목적으로 공장화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작업장’ 문제는 9시 뉴스 단골손님이었다. 게임 내에서 쌓인 갈등을 현실로 끌고 오는 ‘현피(현실 피케이)’라는 단어도 리니지에서 비롯됐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직까지 한국 MMORPG에 리니지 만한 게임은 없었다. 2016년 ‘리니지’는 누적 매출 3조원을 달성했다. 게임 하나가 이룬 성과다.

‘리니지M’은 원작 리니지의 요소를 거의 동일하게 구현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 최초로 ‘오픈 월드’를 구현했다. 다른 이용자와 직접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오픈월드는 MMORPG의 핵심 요소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모바일 MMORPG 환경상 그동안 이를 구현해 낸 게임은 드물었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서는 축적된 기술력, 운영 노하우가 필요하다. MMORPG의 명가 엔씨소프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부인하긴 힘들다.

엔트는 요즘말로 '혜자'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
엔트는 요즘말로 '혜자'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

◇리니지라는 이름의 추억


기자가 초등학교 때 접한 ‘리니지’는 현재의 ‘리니지’M 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PC방은 스타크래프트파와 리니지파로 양분돼 있었다. ‘20분 러시’, ‘인구수 200’의 룰을 두고 학생들이 옥신각신 하던 그 때, PC방 어르신으로 분류되던 아저씨들은 담배로 탑을 쌓아가며 요상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소굴에서 뼈다귀들을 때려잡는(한참 후에야 글루디오 던전 1층에서 해골을 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저씨들의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겼다. 단조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중독성 있는 배경음에 이끌려 시작한 ‘리니지’는 배경음만큼 단조로운 게임이었다. 그저 걷고, 채팅하고, 단조로운 공격을 몬스터에게 반복적으로 가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밌었다. 거기엔 일상생활에 없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하는 섬’ 밖에 없던 그 시절, 본토가 열린다는 소식에 가슴이 하루 종일 쿵쾅거리던 그날을 기억한다. 요정마을이 열리고 엔트에게 주먹질을 하기 위해 하염없이 헤매던 내 ‘인트 18 요정’을 추억한다. 개경주와 슬라임 경기에 전 재산을 날리고 몇 시간 동안 망연자실했던 PC방 앞 운동장을 떠올린다. 엄마 몰래 거실 컴퓨터에서 밤새 주사위를 돌리다가 졸음에 정신이 살짝 나간 사이 ‘황금 스탯’을 놓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던 철없던 내가 그립다. ‘에볼’ 한 번 날려보자고 F3에 동전을 꼽고 ‘골밭’을 서성이던 마법사의 어딘지 모르게 허약한 그 움직임이 떠오른다. 혈맹에서 만났던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님과 형, 동생 하면서 지냈던 혈원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가끔씩 궁금하다.

리니지는 이런 게임이다. 리니지를 즐겼거나 어깨 너머로 지켜봤던 이들이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사전 예약자 550만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이번엔 잡을 수 있을까 바포메트.
이번엔 잡을 수 있을까 바포메트.

◇이제는 지갑이 두둑해진 ‘리니지’ 키드들


리니지를 경험해 본 ‘꼬꼬마’들은 시간이 흘러 사회인이 됐고 지갑도 두둑해졌다. ‘리니지M' 출시 전부터 ‘지를 준비가 됐다’던 유저들의 목소리는 돈 없이 게임했던, 6검 4셋이 없어서 쩔쩔매던 지난날 맺힌 한을 풀어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데스나이트, 바포메트, 안타라스 등 그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지던 몬스터들을 이제는 한 번 잡아보겠다는 의지다. 어쩌면 이번엔 성혈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다.

‘리니지’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게임이다. 자금이야 차치하더라도 직장인에게 게임에 하루 수 시간 이상을 투자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리니지M’은 모바일 게임에 맞게 자동사냥과 자동스킬 기능 등을 갖췄다.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리니지 세상, 상사나 아내의 눈을 피해 게임이 가능해졌다. ‘리니지M'의 다른 말은 ’직장인용 리니지’다.

공성전을 준비 중인 '성혈'의 모습.
공성전을 준비 중인 '성혈'의 모습.

◇현실적인, 지나치게 현실적인


‘직업: 성주.’ 이 짧은 문장을 이해한다면 리니지를 좀 아는 사람이다. 한 아이가 학교에 선생님에게 제출한 가족 정보에 아빠의 직업을 성주라고 적어놓았다고 한다. 물론 우스갯소리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리니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기에 그저 흘려넘길 수는 없다.

리니지에서 성을 차지한 군주는 ‘성주’로 불린다. 성주는 유럽의 봉건제처럼 세금을 결정하고 정기적으로 수입을 거둬들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강력한 혈맹들은 좋은 아이템이나 높은 경험치를 제공하는 사냥터를 통제해 독식한다. 싸움이 나면 1대 1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혈원들이 모두 몰려와 전면전이나 게릴라전을 펼친다.

철저한 약육강식, 승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 리니지는 현실과 닮았다. VR(가상현실) 기계가 뜨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리니지가 구축한 가상세계의 현실감은 VR 이상이다. 리니지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다.

왼쪽 위에 나뭇잎 모양이 '아인하사드의 축복'이다. '드래곤의 다이아몬드'를 이용하거나 마을에서 쉬면 충전된다.
왼쪽 위에 나뭇잎 모양이 '아인하사드의 축복'이다. '드래곤의 다이아몬드'를 이용하거나 마을에서 쉬면 충전된다.

◇현실 금수저=게임 금수저?


‘리니지’의 지나친 과금 요소는 누누이 지적돼 왔던 바다. 적보다 더 우위에 서야만 하는 MMORPG 특성상 버프 아이템이 현금으로 나오면 구입이 불가피하다. ‘리니지’는 3만원가량의 정액 요금제에 각종 버프와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해야 번듯한 ‘유저’로서 기능이 가능하다. ‘리니지M’도 ‘리니지’의 과금 요소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달라진 점이라면 ‘리니지’의 정액 요금제가 사라졌다는 정도다. “돈이 없으면 게임 하지 말라는 거냐”는 유저들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리니지’의 과금 요소는 역설적으로 19년 된 게임이 지금까지 게임 순위‧매출 상위권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게임 내 재화가 현실의 재화로 이어지므로 유저들은 투자개념으로 ‘리니지’에 돈을 지불한다. 더 좋은 버프와 더 높은 레벨은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게임이 망하지 않는 한 유저들은 매달 과금에 나설 것이고, 게임이 망하기엔 이미 리니지의 시장경제 규모가 너무 커져버렸다. 대마불사다.

‘리니지M’이 유저 간의 아이템 거래와 거래소 시스템이 제외된 상태로 출시된다는 소식에 엔씨소프트 주가가 급락한 이유도 리니지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가 ‘거래’에 있기 때문이다.

리니지M은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경험치와 아데나 획득률을 높여 주는 버프 아이템 ‘아인하사드 축복’에 손질을 가했다. ‘아인하사드 축복’ 소모량이 감소됐고 축복 없이 사냥에 나서도 가죽, 철, 천 등 아이템을 획득 할 수 있게 됐다. 수시로 푸쉬 메시지를 통해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충전시키는 드래곤의 다이아몬드도 지급한다. 저과금, 무과금 유저들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엔씨소프트의 행보다. 거래소 시스템도 다음달 5일 전후로 추가될 예정이다.

'리니지M' 군주 캐릭터.이미지 확대보기
'리니지M' 군주 캐릭터.

◇이번엔 어디까지 갈까


“리니지, 그 시작과 끝” 리니지M의 슬로건이다. 엔씨소프트의 김택헌 CPO는 ‘리니지M’ 쇼케이스에서 “리니지답게 만들고, 엔씨소프트답게 서비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리니지답다’라는 말, ‘엔씨소프트답게’라는 발언은 유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리니지M'이 물건은 물건이라는 거다. 벌써부터 ’국내 최대‘ 타이틀을 석권하고 있는 ’리니지M', 앞으로 또 어떤 족적을 게임사에 남기게 될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거인은 지금 막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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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