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식품칼럼] 완벽의 역설

공유
7

[식품칼럼] 완벽의 역설

김석신 가톨릭대 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교수
세상은 요지경, 갈수록 편해진다. 택배 드론이 가져온 건 몇 시간 전에 주문한 3D푸드 프린터. 전자레인지를 치우고 그 자리에 설치한다. 스위치만 켜면 스스로 프로그램을 내려 받고 인터넷에 접속해 준비 완료. “내일 아침 메뉴?” 하고 물으니 “몇 가지 옵션?”하고 되묻는다. “한 가지!”하고 말하자 “유기농 통밀 블루베리 머핀!”이라고 말한다. “왜?”라고 묻자 유기농의 안전성, 통밀의 영양가, 특히 식이섬유의 중요성, 블루베리의 효능, 머핀의 맛과 소화성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시간은?”하고 묻는다. “7시.”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말이 많군.”

다음날 아침. 꿈결에 잔잔한 음악이 들린다. 눈을 뜨자 음악은 점점 경쾌해진다. 머핀 냄새에 이끌려 주방에 가자 3D푸드 프린터가 머핀을 프린트하는 중. 씻고 오자 7시 정각에 머핀 완성. 요구르트와 과일을 곁들여 아침을 먹고 커피로 입가심한다. 마침 오늘은 재택 근무하는 날. 소파에 기분 좋게 드러누워 3D푸드 프린터를 보니 입이 귀에 걸린다. “쟤 덕분에 매일 편하게 아침을 먹다니. 아, 정말 편해. 잘 샀어. 탁월한 선택이야.”
세월 따라 세상도 변한다. 이젠 집집마다 로봇을 들인단다. TV에선 어느 채널이나 로봇 광고. 나도 모르게 광고에 빨려 들어간다. “그래, 말을 해야 알아듣는 3D푸드 프린터는 답답해. 굳이 말을 안 해도 몸과 마음을 읽는 로봇이 좋겠어. 알아서 음식을 만들어 식탁에 차려주고, 다 먹으면 식탁 정리와 설거지도 해주고, 밥 먹을 때 대화도 하면 좋겠지. 그래 로봇이야. 로봇을 사는 거야.” 돌발구매! 지름신이 내려 로봇을 주문한다.

다음 날 집에 온 로봇은 모습도 멋있고 말이나 행동도 부드럽다. 가라앉은 기분을 “업”시켜주려고 최적의 음악도 선택해준다. 장엄한 심포니부터 씩씩한 서곡, 감미로운 샹송, 정갈한 가곡, 익숙한 가요, 멋진 시낭송까지. 음식도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알아서 만들어준다. 사람은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깨어나 씻은 다음 준비해준 음식을 먹고 출근만 하면 된다. 로봇은 우렁이각시처럼 설거지는 물론 집안 청소와 환기까지 깔끔하게 해놓는다.

지상천국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정체 모를 뭔가가 아쉽고 그립다는 것이다. 로봇은 완벽하게 일한다. 맛과 영양과 안전성을 고려한 맞춤음식. 온습도와 미세먼지, 그리고 냄새 제거까지 고려한 집안 청소. 사람의 기분을 존중하는 상큼하고 발랄한 언행과 태도. 그런데 뭣이 부족해서 아쉽고 그리울까? 그렇다. 사람에겐 완벽하다는 것 또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약간 덜 익거나 더 익은 고기, 약간 짜거나 싱거운 국물. 이런 엉성함이 아쉽고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휴일 아침이면 스스로 음악도 켜고 청소도 하고 밥도 해먹고 싶은가 보다. 월•화•수•목•금 쌓여온 느낌의 찌꺼기도 치우고 싶겠지. 어떤 느낌이냐고? 마치 3D푸드 프린터가 사람인 나의 일상을 프린트하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 마치 사람인 내가 로봇의 로봇이 된 것 같은 괴상한 느낌. 이런 느낌이 사람의 내면에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저항감은 생명체인 사람이 스스로 억제한 자율성 때문에, 또는 구석기 시대부터 익숙해진 불편함이 오히려 편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 아무튼 사람은 휴일이면 스스로 구은 약간 탄 식빵을 커피에 곁들여 먹으면서 소리치는 이상한 존재다. “아, 이 맛이야!” 이것이 바로 완벽의 역설이다.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