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사람의 계절

공유
0

[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사람의 계절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지상의 물을 데려가 담아둔 거대한 물 풍선이 터진 듯 하늘은 밤새 비를 퍼부었다. 사람들을 그토록 애타게 하더니 움켜쥔 물을 되돌려주는 방식이 화끈하다. 천둥과 번개가 장단을 맞춘 굵은 빗소리로 도시의 밤은 간만에 시원했다. 폭우로 느닷없이 불어난 물에 다리가 끊기고 등산객들이 고립되었다가 구출되는 뉴스는 옛 것의 복사본인 양 되풀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화창해진 하늘에서 다시 뜨거운 빛이 쏟아졌다. 어느새 모여든 먹구름으로 빛이 점멸을 반복할 때마다 도시에도 그림자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빛은 빛대로 비는 비대로 세상에 온다. 우리도 우리대로 저마다 이 세상에 와 있다. 빛은 빛대로 비는 비대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세상을 매년 윤회시킨다. 우리가 사는 세상 위로 사계절은 변함없이 왔다 가고 되돌아온다. 사람의 계절은 자연의 것과 달라 윤회하지도 모두에게 일정하지도 않다. 나이에 따라 인생을 계절로 구분하는 것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시간의 흐름에는 맞을지언정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삶의 변화를 적절히 담아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봄과 여름만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랑받으며 원하는 분야의 공부를 마음껏 하여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면서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이 그런 부류일 것이다. 정반대로 어떤 사람은 겨울만을 살기도 하는 듯하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와 헤어져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수입이 변변치 않은 일을 하며 평생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 극단의 안에서 저마다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뒤늦게 찾아온 희망의 봄을 지나 성장의 여름을 웃으며 지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평화로운 가을날 생각지도 않았던 눈보라를 느닷없이 만나 시름에 잠겨 있을 것이다. 같은 여름이라도 누군가는 모래 너머의 오아시스를 믿고 사막 한가운데를 묵묵히 걷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오아시스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작은 오아시스에 답답함을 느끼고 비취색 바다를 향해 곧장 짐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같은 가을이라도 누군가는 충분한 수확에 감사하며 넉넉한 창고 앞에서 여유로운 겨울을 설계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수확량을 더 늘리기 위해 창고를 새로 지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썩어버린 열매와 씨앗들을 보며 무방비 상태의 혹독한 겨울 추위 염려에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가끔 다른 계절을 산다.

자연의 계절은 저절로 오지만 사람의 계절은 기다리기만 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계절을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일 것이다. 자연의 계절 중 누군가는 겨울을 좋아하듯 누군가는 남다른 방식으로 겨울을 자신의 계절로 삼기도 한다. 따사하고 풍요로운 계절을 기꺼이 벗어나 겨울에 갇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배곯으며 체온으로라도 몸을 데워 주려는 사람들은 겨울 안에서 봄을 만든다. 그들은 세상에 자신들의 힘만으로 계절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은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느니, 어른이 된 후의 가난은 자신의 책임이라느니 떠드는 사람들의 그럴듯한 충고를 거부한다. 사람마다 지능과 신체적 능력과 건강과 사회적 환경이 다르고, 그 다름이 사람의 삶을 피어나지 못하도록 억압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계절 안에서 타인의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영원히 변치 않을 아름다운 계절을 빚어 인류에게 선사하기도 한다. 그 계절은 자연은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의 계절이 된다.

이국 땅 기념비 앞에서 노병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통령이 역사 속에서 길어 올린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 이야기는 진저리나는 혹한의 겨울에 피어났던 따뜻한 봄볕으로 사람들 모두의 가슴을 적셨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계절은 제각각 다르게 흘러가지만 그 계절과 계절들이 만나 섞일 때 사람의 계절이 피어난다. 그 계절은 피고지어 사람의 세상에서 윤회한다.

다시 장맛비가 내려 사람의 계절로도 스며들었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