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기업경영자의 갑질과 진정성 없는 사과

기사입력 : 2017-08-0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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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다. 3년만의 일이다. 몸살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두꺼운 이불을 덮은 채 온몸에 땀을 흘리며 길게 하룻밤만 자면 돌아왔던 컨디션이 3일이 지나도록 심해지기만 했다. 예기치 않은 밤샘으로 몸이 무력해진 틈을 비집고 들어온 여름 감기는 땀을 좇아 몸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했다. 감기를 몰아내기 위해 몸은 계속 열을 올렸다.

감기에 걸려서 좋은 점은 잊고 지냈던 감기의 고통을 재 경험 하는 데 있다. 감기에 걸려 봐야 “그러니까 이불 잘 덥고 자랬지?”라고 아이에게 훈계했던 것을 반성할 수 있다. 아무리 이불을 걷어차고 자도 걸리지 않을 수 있고, 잘 덮고 자도 걸릴 수 있는 것이 감기임을 안다면 감기 걸린 아이에게 이불 얘기를 먼저 꺼낼 수는 없다. “많이 아프지? 아빠가 약 사다줄게. 약 먹고 푹 자면 금방 나을 거야.”라는 말이 먼저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감기를 앓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감기는 흐느적거리는 몸속에 단단한 둥지를 틀고 자꾸 지난 말들을 모아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하자 기업 총수들의 갑질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땅에서라면 전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들이다. 언론 보도 후 이어진 진정성 없는 사과들 역시 시든 야채들처럼 무미건조했다. 장사와 사업을 매개로 돈을 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한껏 부각시켜 왔다. 성취를 이루기까지의 자신들의 삶을 책과 매스컴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미화하면서 책과 강연 등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그렇게 형성된 개인 이미지를 연계해 사업의 확장과 회사의 성장에 활용했다. 고생 끝에 크게 성공한 사람 이미지가 잘 소비되는 세상 풍토도 그들의 승승장구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결코 영화 속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상식적으로는 혼자 이룰 수 없는 업적을 마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룬 것처럼 부각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 뒤의 음습한 땅에 감춰진 진실의 실체를 감지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돈이 최고의 가치로 남는 한, 세상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언론이 사업가들의 극적인 성취 배경과 성취 규모에 집착하는 한, 교언영색에 능한 자들이 스타로 조명되기는 쉬울 테니 말이다.

물질적 욕망이 정신을 지배할수록 세상을 점령하는 용어들도 천박해진다. ‘착한 가격’이 처음 등장하고 활발히 유통되는 동안 ‘착한 사람’의 가치는 세상에서 희미해졌다. 대신 ‘착한 얼굴’, ‘착한 몸매’ 등으로 사람의 몸에 등급이 매겨졌다. ‘장사꾼’이라는 단어가 소설 <상도>의 구절을 빙자하며 젊고 열정적인 사업가의 대리어인 양 쓰이는 동안 ‘장사꾼’이라는 말 자체가 함유하고 있는 상스러움이 세상에 넘쳤다. 용어의 해악은 가치를 전도시킨다. 인간의 안이 아니라 겉만을 비춘다.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사람들이 드러나는 이유다. 고생을 하긴 했지만 빠른 기간에 압축적으로 끝내고 곧바로 성공 가도에 오른 비범함과 고생을 성공으로 변환시킨 탁월한 경영철학 등은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인 양 치장된다. 사람과 기업에 대한 모든 이미지는 드러내서 좋을 것 없는 진실을 반드시 품고 있다. 드러내서 좋을 것들만 모아 가장 좋게 버무려 내보이는 광고의 속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세상의 모든 지갑들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말과 글, 그리고 그것이 구축하는 이미지가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그 안은 빈곤하기 쉽다. ‘내빈’을 감추기 위한 ‘외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 안에서 사람들을 핍박해 온 훌륭한 사업가들께서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지독한 감기에 걸리길 기대한다. 감기에 걸려 좋은 점 또 하나는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감기가 낫기까지 감춰졌던 자신의 본 모습을 거울 속에서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거울 안에서 자신의 성취가 여전히 위대해 보인다면 아마도 그의 영혼은, 감기 정도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불치의 상태에 있을 것이다.

이 여름, 감기에 걸린 모든 이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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